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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서 울

창덕궁 연경당 - 3 (2006.06.)

 

 

 조선의 주택 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사랑채의 효용과 그 평면의 묘에 있다.

이 연경당이야말로 서재 풍으로 된 가장 전형적인 큰 사랑채 하나의 부분으로서는 절묘한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동쪽 뜰 기슭으로 선향재라는 나지막한 서고를 거느렸고, 또 이 선향재의 뒤 언덕 위에는 난간을 두른 아기자기한 단칸 정자 농수정을 둔 것은, 담담하기만 한 이 연경당의 분위기에 한가닥의 풍류를 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까. 어쨌든 설계자는 이 연경당 한 채가 주위의 자연 속에서 어떻게 멋지게 바라보일까를 먼저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 연경당을 설계하고 감역한 건축가의 이름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19세기에 있어서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뛰어난 건축가의 심미안에도 뒤설 수 없는, 멋진 눈의 주인공 들을 적지 않게 가졌던 것을 자랑해야겠다.

 

 한국미의 증징, 그리고 한국미의 주체, 이것은 에누리 없이 우리 조선 주택 속에 너무나 뚜렷하게 너무나 멋있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비록 목조 주택의 전통이 이천 년 전 한족의 중국 문화에서 받아들여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주택은 벌써 제 발걸음을 한 지 오래인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한국 사람들의 꿈이 자라나고 노래가 자라나고 미술이 자라나고 또 아름다운 아들 딸 들이 자라났다. 연경당 이것은 우리 주택문화의 영원한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비원의 깊숙한 숲 속에 자리 잡았지만 어느 왕자의 절절한 염원, 인간에의 향수를 사무치게 품은 채 너는 오늘도 담담하고 값진 미소를 오 월의 하늘 아래 말없이 풍기고 있다. (출처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