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가야읍의 아라가야 왕릉에서 산인면 방향으로 보면, 나즈막한 검암산과 은빛
검암천이 눈에 들어 온다.
임청당은 그 아스라한 검암산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상검, 중검, 하검 전통마을의
가운데 마을, 20여호 남짓한 중검부락의 뒷쪽에 둥지를 틀었다.
대지가 속한 마을 풍경은, 슬레이트 지붕과 유신시대의 잔재인 새마을주택들이
무질서하게 뒤엉켜 있고, 진입로마저 좁아서 주변환경은 열악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보석을 발견하였다. 뒷뜰의 바위와 대나무숲이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연
-바위와 대나무숲이 병풍처럼 남아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대숲에 이는 푸른 바람소리를 상상하며 설계에 들어갔다.
건축주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고, 부인은 공무원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마산에서의 아파트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의 물 맑은 곳에 새로이 터를 잡았다.
두 분 모두 전문가의 말을 경청해 줄줄 아는양식있는 분들이라, 주택설계의 진행도
기본적인 요구사항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설계자를 신뢰하고 전적으로 맡겨 주었다.
그래서 나는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그동안 쭉 고민해 오던, 우리 '한옥의 공간
조영방식'을, 대나무숲 정원을 가진 이번 임청당 설계에 접목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최근에 웰빙 바람을 타고 한옥 열풍이 불었었는데, 껍데기(형태)에만 집착하여
알멩이(철학)가 없는 소위, 개량한옥들을 잔뜩 쏟아 놓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황토벽과 기와지붕'이 우리 한옥의 본질은 결코 아니다.
이천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의 전통주거양식인 한옥의 진면목은, 공간구성 수법에서
찾는 것이 옳다 할 것이다. 그 공간구성의 중심에는 '마당'이 있다.
그 '마당'은, 변화하는 사계절의 자연을 담고, 그 자체는 비어있지만 무엇이던지
채울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이고, 지붕없는 제3의 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앞마당과 뒷마당, 안마당(안방마당)과 부엌마당, 그리고 본채마당과
사랑채마당 등으로 다양한 마당들을 집어넣었다. 부엌마당은 좀 협소했지만,
대나무숲 후원까지 공간을 확장하면 멋진 장독대가 나왔고, 본채마당과
사랑채마당의 영역구분은 1m정도의 높이 차이로 해결하였다.
마당뿐만 아니라, 임청당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사랑방'에 있다.
우리 한옥에는 손님을 접대하고 집안의 가장이 기거하던 풍류공간 -사랑채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집도, 대문간 옆에 사랑방이 있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황토벽과 기와지붕'으로 어설픈 한옥 흉내를 내기보다는,
선조들의 지혜와 멋이 배여 있는 '생활양식(철학)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주출입구 옆에 사랑채를 만들고 복도로 연결하였다. 연면적 30평 이내에서
해결해야 하다보니, 사랑채는 불가능하고 '사랑방' 규모로 흉내만 내는 수준에서
정리되었지만,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본다.
아울러, 현장에 처음 갔을 때 보석이라고 느꼈던 바위와 대숲이, 시공자의 몰이해로
인해, 콘크리트로 훼손된 것은 답답함과 아쉬움으로 남는다.
푸른 검암산과 맑은 검암천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임청당 臨淸堂은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 중
( 登東 而舒嘯 臨淸流而賦詩 - 동쪽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읊조린다 ) 에서 따온 말로,
경북 안동에 가면, 일제시대 때 애국지사 이상용 선생의 집으로 유명한
임청각( 安東 臨淸閣 : 보물 제182호 ) 이라는 고성이씨종가댁이 있다.
임청당을 설계하는 동안 나는,
안동의 임청각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대문에서 본 전경
대문에서 본 사랑채
본채와 사랑채를 연결하는 주출입구
주 현관과 사랑채
주 현관 내부. 뒤로 뒷뜰이 보인다
]
사랑채마루에서 본채마당을 보다
사랑채와 본채(안채) 사이로 보이는 뒷뜰의 대나무숲
사랑채 천정과 내부
사랑채를 연결하는 주현관 내부
안채 복도
부 엌
드레스 룸
안방 출입구
거 실
작은방과 복도
화장실
식 당
안 방
식당과 부엌
거 실
검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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