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세가(世家)」 제 5편 ㅡ 관채세가(管蔡世家)
Ⅰ. 들어가며
앞선 「노주공세가」에서 이미 그 이름이 잠깐 스쳐 지나간 두 사람, 관숙과 채숙이 이번에는 정면으로 다루어진다. 오태백과 여상과 주공과 소공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라를 세우거나 어진 정치를 편 시조들이었다면, 관숙과 채숙은 「세가」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실패한 시조들이다.
이들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목숨을 잃거나 내쫓겼으니, 사마천이 이 편을 세가 다섯 번째 자리에 놓은 것은 성공의 이야기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주나라 건국사의 이면을 함께 보여주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편은 관숙과 채숙의 다른 형제들, 곧 곽숙과 성숙을 비롯한 여러 소국의 시조들까지 한데 묶어 다루고 있어, 무왕이 자신의 형제들을 사방에 봉하여 왕실의 울타리로 삼으려 했던 초기 봉건의 구상 자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Ⅱ. 관숙과 채숙의 반란과 몰락
관숙 선과 채숙 도는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과 주공의 형제였다. 무왕은 은나라를 무너뜨린 뒤 그 유민들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은나라 마지막 왕 주의 아들 무경을 그대로 봉하되, 관숙과 채숙을 각각 그 곁에 두어 무경을 감시하도록 하였다. 두 사람의 봉지가 은나라 옛 도읍을 동서로 둘러싼 요충지에 자리했던 것도, 오로지 무경의 동태를 살피려는 무왕의 치밀한 안배였다. 그러나 무왕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린 성왕을 대신해 주공이 섭정으로 나서자, 관숙과 채숙은 형제 서열로 보면 자신들이 주공보다 앞섬에도 정작 실권은 주공에게 돌아간 데 불만을 품었고, 급기야 주공이 조카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는 의심을 퍼뜨리며 도리어 무경과 손을 잡아 반란을 일으켰다.
이는 은나라 유민의 감시자로 세워진 이들이 거꾸로 그 감시 대상과 결탁하는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주공은 성왕의 명을 받들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삼 년에 걸쳐 이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그 결과 관숙은 처형되고 무경 또한 죽임을 당하였다. 채숙은 죽음은 면하였으나 수레와 말 몇 필만을 딸려 먼 곳으로 유배되는 처지가 되었으니, 왕실의 최측근이었던 두 형제가 나란히 몰락한 셈이다.
Ⅲ. 채중의 회복과 채나라의 재건
그러나 사마천은 이 이야기를 완전한 파멸로 끝맺지 않는다.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채숙에게는 호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와 달리 몸가짐을 삼가고 덕을 닦는 데 힘써 주공의 눈에 들었다. 주공은 그를 자신의 재상으로 삼아 곁에 두고 지켜보았고, 그 처신이 흠잡을 데 없이 신중함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성왕에게 아뢰어 채 땅에 다시 봉함으로써 끊어질 뻔했던 채나라의 제사를 잇게 하였다니, 이가 곧 채중이다.
아버지의 죄가 자식의 앞길을 영영 가로막지 않았다는 이 대목은, 관숙의 혈통이 처형과 함께 완전히 끊긴 것과 대비되어 더욱 도드라진다. 한 형제는 죄를 지어 후사가 끊겼고, 다른 형제는 자식의 덕으로 겨우 다시 일어섰으니, 같은 반란에 가담하고도 그 후대의 운명은 이렇듯 갈리고 말았다.
Ⅳ. 채나라의 오랜 부침
이렇게 재건된 채나라는 이후로도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지리적으로 초나라와 중원 강국들 사이에 끼어 있었던 탓에, 채나라는 춘추시대 내내 강대국들의 압력에 시달리며 도읍을 몇 차례나 옮겨야 했다. 특히 남쪽의 초나라가 세력을 넓혀 오면서 채나라는 그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처지에 놓였고, 한때는 초나라에 의해 아예 나라가 없어졌다가 제후들의 개입으로 다시 세워지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오나라와 손을 잡고 초나라에 맞서 보기도 하였으나 근본적인 국력의 격차를 뒤집지는 못하였고, 도읍을 남쪽으로 옮기는 하채로의 천도를 거치면서도 국세는 갈수록 위축되었다. 결국 전국시대에 접어들 무렵 초나라에 완전히 병합되면서 채나라의 사직은 영영 끊어지고 말았다.
Ⅴ. 맺음말
관채세가는 앞선 네 편과 달리 성공보다 실패를, 창업보다 몰락을 먼저 이야기한다. 관숙은 의심과 성급함으로 무너졌고, 채숙 또한 그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였으나, 아들 채중의 덕행이 끊어질 뻔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럼에도 재건된 채나라는 끝내 큰 나라들 틈바구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흥망을 거듭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니, 한 사람의 허물이 후손에게 그대로 대물림되지는 않되, 작은 나라가 처한 지리적 숙명까지 개인의 덕으로 뒤집을 수는 없었던 셈이다.
앞서 살핀 연나라가 변방이라는 위치 덕분에 오랜 세월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채나라는 요충지에 자리한 탓에 끊임없이 강대국들의 다툼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으니,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시조의 그릇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두 편은 나란히 증언하고 있다. 사마천은 이 편을 통해 시조의 허물과 후손의 회복, 그리고 국력이라는 냉정한 현실이 저마다 다른 층위에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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