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로받고 싶다
갑자기 미테랑 대통령이 생각났다. 내가 아는 한, 금세기에서 가장 문화적인 대통령이었다. 우파 정권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그는 도시 재생과 관련한 ‘그랑프로제’라는 정책을 바로 추진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그냥 지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예컨대 루브르박물관의 신관 설계를 중국계 미국 건축가 이오 밍 페이에게 맡겨 놀라게 하더니, 이 동양인이 바로크 형식의 기존 박물관과 대비되는 유리 피라미드의 설계안을 내놓아 많은 이들이 주저하자 대통령은 그 파격적 디자인을 적극 옹호하고 짓게 했다. 물론 그 결과로 루브르박물관은 현대적 아름다움도 같이 가지게 된다.
이뿐만인가. 가운데를 텅 비운 ‘그랑아르세’를 쇠락해가던 라데팡스 지역 끝에 지어 파리의 도시 중심축을 한껏 넓히게도 했고, 파리 외곽의 소시장을 특별한 공원으로 바꾸며 해체주의라는 새로운 건축 개념도 실현케 했다.
또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장소였던 바스티유 감옥을 정명훈이 활약한 오페라극장으로 바꾸어 세계적 명성을 얻게 했다. 한때 문학도여서 그랬을까, 지적 감수성이 풍부한 그를 통한 프랑스 건축과 문화는 눈부시도록 빛났다.
1989년, 그랑프로제의 하나인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현상공모에서 심사위원단이 두 개의 안을 뽑아 그 최종 결정을 대통령에게 미루는 유례없는 일이 발생했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도 포함된 심사단이었지만 대통령의 식견을 더욱 신뢰하고 경외해 위임한 것이다. 과연, 그는 특별한 형태를 가진 설계안보다는 정제되고 내면적인 안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지적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 도서관의 준공식에서 미테랑은 설계자 도미니크 페로를 옆에 세우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디자인은 대칭 속에서 명료하며 선들은 절제되고 그 속의 공간들은 참으로 기능적입니다. 마치 침묵과 평화의 요구인 것처럼 이 건축은 지면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네 개의 타워는 이 도시의 심장부인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땅과 하늘 사이에 생겨난 이 도서관의 산책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 현대도시의 새로운 거처인 이 넓은 공공의 공간에서 우리는 만나고 섞이게 됩니다. 페로의 이 작업은 일개 건축이 아니라 미래를 예시하는 하나의 도시계획입니다. 바로 그는 인류가 갈망하는 지식과 아름다움을 위한 위대한 성취를 이룩한 것입니다.”
어떤 건축평론가가 이보다도 더 명료하고 지적이며 감동적인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으로 인해 위로받고 행복했던 프랑스는 이 도서관을 급기야 미테랑도서관이라고 이름 지으며 그를 영구히 기리기로 한다.
그가 대통령직을 마친 후, 예전에 저지른 불륜으로 인한 혼외자식 문제가 드러났을 때, 그 사건은 불륜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회자되었을 정도로 프랑스는 그를 보호하고 사랑했다. 그가 1996년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온 세계가 연민의 정을 쏟았으며 정적인 시라크마저 눈물로 그를 추모했다.
1997년 미테랑의 문화적 업적을 이은 프랑스 정부는 2000년까지 무려 3년 동안 ‘2000년 포럼’을 운영하며 21세기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논의한다고 했다. 아마도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우리 한국은 2000년을 6개월인가 앞두고 ‘새천년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오랜 기간 준비한 프랑스는 2000년이 시작되기 전 21세기 맞이 행사계획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발표한다.
“2000년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모든 지식의 대학’이라는 주제로 어떻게 우리가 사는 게 좋은지를 매일 토론한다. 과학기술을 주제로 200여회, 인문과학 100여회 그리고 21세기의 장점에 대해 60여회로 구성되는 이 토론회는 미테랑도서관과 퐁피두센터, 과학의 집에서 개최되며 매일 TV로 생중계되고 기록되어 모든 일정을 마치면 책으로 발간되어 보존될 것이다.”
나는 이 계획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시는가? 한국의 대표적 지성이며 문화부 장관을 지낸 분이 당시 준비위원장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21세기 맞이 행사로 비무장지대(DMZ)에서 레이저를 쏘아대며 불꽃놀이쇼를 진행한다고 했다. 모멸이었다. 국가 간 품위와 문화의 격차를 확연히 보여주는 순간이었고, 그 어쩔 수 없는 간극의 크기에 나는 절망했다.
그러나 이를 한동안 잊고 있었다. 하도 한류 붐이 인다고 하고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하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심지어 한국의 표준이 세계의 표준이 된다고 하는 터라, 이 나라 국격의 실체를 잊고 있었다. 심지어 나도 밖에 나가 거들먹거리기까지 했으니….
생각해보면 미국 가서 성추행을 저질러 공인의식 부재를 증명한 청와대 대변인의 행태가 신호였다. 온갖 잡음과 물의가 끊이지 않더니 마침내 세월호 앞에 국가의 최고 직무인 국민 안전과 행복이 실종되고 말았다. 그때라도 그 실종의 진실을 철저히 밝힐 수 있었으면 이 나라는 다시 새롭게 될 수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수상한 조치들이 연이어지면서 국가가 조폭과 다름없다는 말을 다시 상기하고 만다. 급기야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이르러 국가가 민간병원을 비호하느라 공공의 이익을 배반해 위험을 증폭시킨 현장을 똑똑히 본 것이다.
노부부가 죽고 직무에 충실하던 의사가 위험에 처했다. 이웃 나라 중국은 환자를 관리 못한 우리 국가의 조치를 비난하고 거리를 채우던 중국인들은 떠났다. 회의에 참석하기로 한 외국 건축가는 약속을 미뤘고 해외의 친지들은 연일 안부를 물어왔다.
헬싱키에 간 동료 건축가는 호텔 숙박을 거절당했다고 알려왔다. 안 그래도 가난해서 죽고 외로워서 죽는 일이 일상이다. 의기소침해지고 자격지심으로 울컥한 우리 국민에게 위로와 격려가 절실한데, 공공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줘야 할 정치권은 그저 그들 조폭적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이도 저도 못마땅한 대통령은 저의, 배신, 심판 같은 언어로 상처 입은 국민들의 가슴을 또 후비고 판다. 이게 나란가?
지금 정부의 관심은 경제살리기라는 것인데, 어느 경제학자는 지금은 불황이 아니라 저성장의 시대라고 했다. 호황은 앞으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의 말이 맞는다면 이 정부 정책은 빗나간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 이야기는 지난 수십년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따르며 살았지만 우리 삶이 지난 시대보다 행복한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행복지수가 월등히 높은 걸 보면 경제는 행복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경제가 아니라 행복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돈 문제는 말할수록 공허하지만 행복은 나눌수록 더욱 커진다고 했다. 1년 365일 내내가 아니더라도, 며칠만이라도 오로지 행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안될까? 우리는 정말 위로받고 싶다.
출처 - [승효상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우리는 위로받고 싶다 - 경향신문 (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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