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들
스마트 시대라 불리는 요즘,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점점 옅어져 도농복합체인 “러번(Rurban)”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까지 등장했다고 해도, 이 둘은 태생적으로 다르다. 농촌은 어디까지나 혈연으로 형성된 공동체이며, 도시는 이익을 구하기 위해 익명의 개인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농촌의 운영은 천륜이나 인륜으로도 가능하지만, 도시는 조화로운 운영을 위해 모두가 동의하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그 법과 제도가 공간으로 나타난 것이 도시의 공공영역인데, 길이나 빈터, 공원과 광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 도시의 제도적 장치로서 도시공동체의 삶을 담아내는 이 비어진 곳, 그중에서도 길은 마치 우리 몸의 핏줄처럼 도시민의 삶을 흐르게 하고 지탱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시공간이다.
그래서 어떤 도시에서든 길의 구조를 파악하면 그 도시의 성격과 이념을 이내 알 수 있다. 예컨대 영주의 성채를 중심으로 중앙과 대각선의 길이 뻗어 있는 곳은 단일 중심의 봉건도시이며, 교회나 기념비를 가운데 놓고 도로를 겹겹으로 싼 도시는 배타적인 종교도시거나 이념의 도시다. 근대의 도시는 기능의 효율적 분배가 우선되어 길을 계급별로 분류하고 그 폭과 속도까지 규정하고 제한하며, 상업도시의 도로는 상품의 진열장처럼 화려하게 꾸며진다. 민주주의의 도시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도록 바둑판처럼 길을 구성하지만, 전제적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통제되도록 계급적 길을 만든다. 그러니 길에는 그 도시의 진실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쿠바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는 책은 마르코 폴로가 여행 중에 들렀던 도시들을 쿠빌라이 칸에게 묘사하며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이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도시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하게 한다. 책의 소제목 구성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체를 아홉 장으로 나누어 첫째 장과 마지막 장에 각각 열 개의 도시, 나머지 일곱 장에는 각기 다섯 도시를 넣어 전체 쉰다섯의 도시를 설명하는데, 도시, 기억, 욕망, 사인, 이름, 망자, 하늘 같은 단어들을 반복시키고 숫자마저 거꾸로 붙여 목록 자체를 치밀한 조직으로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자이라’라는 도시를 설명하는 대목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이 도시에 있는 높은 탑이나 형태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했다.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단호히 얘기하며, 도시의 가치가 위대한 건축물 몇몇에 있는 게 아니라 “거리의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라고 황제에게 설명한다. 우리가 도시의 인상을 이야기할 때 거들떠보지 않는 작은 일상이나 평범한 길가에 그 도시의 가장 큰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도시를 소개하는 책자에는 그 도시의 상징적 시설물이 등장하게 마련이지만, 사실 이것들은 그 도시에 사는 이들의 일상과 괴리가 있다. 실제로 나는 서울의 남산타워에 올라간 적이 없고, 고궁을 찾는 일은 몇 년에 한 번쯤일 뿐이고, 시내에 즐비한 고층빌딩에서도 살아본 적이 없다. 서울을 안내하는 책자마다 그려져 있는 이런 풍경은, 이탈로 칼비노의 말을 빌리면 허무한 환영일 뿐이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사용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빈터나 길가에 도시의 본질이 있다는 것, 그는 이를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도시를 만들거나 설계할 때 중요한 것은 비움의 공간을 설정하는 것인데도 현대의 도시계획도에 비어져 있는 공간은 표현되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모든 부분은 현란한 색깔로 채워져야 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도로는 계급에 따른 일정한 폭의 붉은 선이어야 하며, 전체는 20년 혹은 50년 후 목표연도의 환상적 미래상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것을 도시의 청사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목표가 실제로 완성된 도시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 다 허황된 가정이었고 거짓이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그 목표의 달성을 핑계 삼아, 심지어는 오래된 길들도 죄다 없애고 직선의 도로로 만들며 골목길 풍경을 지워댔으니, 그 길에 새겨진 오랜 이야기도 기억도 역사도 그리고 결국은 우리도 사라지고 만 것이다.
역사적 도시의 풍경을 보전하기 위해 1987년 워싱턴에서 개최된 ICOMOS 총회는 필지와 도로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의 패턴을 우선적으로 보전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유럽의회는 건축유산에 관한 유럽헌장을 1975년에 제정하면서 그 첫번째 항에, “건축유산은 기념비적 구조물로만 구성되지 않으며 우리 도시 속에 있는 작은 건물군과 특징적 마을의 패턴도 포함된다”고 적어 놓고 있다. 그러니 도시의 길은, 그 길이 아무리 좁고 구부러졌다고 해도 오랜 시간을 지탱해온 이상, 우리 공동체의 역사를 기록한 기억의 보물창고이며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전국에서 골목길들이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민간에서 주도하는 현상이다. 금싸라기 땅인 강남의 대로변은 주말에도 찾는 이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후진 동네로 알려진 강북의 마을들, 북촌과 서촌 그리고 낙산 아래 마을의 길은 평일에도 북적거린다. 한국인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로도 늘 가득하여, 구부러진 길가에서, 보잘것없는 창틀에서, 초라한 담벼락에서 마치 보물 만난 듯 그 발견을 기뻐하며 사진으로 기록한다. 길가에도 이들을 맞기 위해 작은 가게들이 단장하여 문을 연다. 보이지 않던 도시들이 이제 보이게 된 것일까? 가히 골목의 시대가 왔다.
우려할 일은, 골목의 시대라 하여 억지 주제를 골목에 붙이며 관이 덤벼들 조짐을 보이는 것인데, 그렇게 과잉 반응을 보여 낭패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관은 부디 가만히 있으라. 보이지 않는 도시의 아름다움이니 보이게 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고 이탈로 칼비노는 누누이 강조했다.
출처 - [승효상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보이지 않는 도시들 - 경향신문 (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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