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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국토기행] <1> 호반의 도시 춘천

[新 국토기행] <1> 호반의 도시 춘천

 
입력 :2014-09-27 
 

 

물이 모여서 詩가 되었다

 

지방도시들이 급변하고 있다.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한다. 우리 모두의 고향인 지방도시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 볼 때이다.
 
 

 

▲ 의암호 물레길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서울·수도권을 지척에 두고도 60년이 넘도록 군사지역, 수도권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개발의 손길에서 밀려났던 강원도 춘천이 변화하고 있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일제 강점기 때 건설된 낡은 경춘선과 구불구불한 경춘국도로
서울을 오가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동해안의 중심 강릉까지는 무려 5~6시간씩 버스를 타야 했다. 도청 소재지라는 명분이 무색했다. 하지만 2001년 중앙고속도로 개통을 시작으로 2009년 서울~춘천을 잇는 경춘고속도로(61.4㎞)가 뚫리고 2년 뒤 경춘선 복선전철(170㎞)이 개통되면서 도시가 급변하고 있다. 연간 1000만명 이상의 유동인구가 생겨나고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정주 인구도 현재 28만명에서 2020년쯤에는 35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춘천은 1960년대 중반 이후 각종 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북한강과 소양강, 신영강 등 소규모 강이 흐르던 평범한 소도시였다. 3대째 춘천에 살고 있는 토박이 박정호(83) 할아버지는 “1922년에 만들어진 신작로 수준의 경춘국도와 1939년에 개통된 경춘선 단선 열차길이 수도권과의 유일한 소통길이었다”며 “댐들이 만들어지면서 호수가 생겨났고 도시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춘천에 댐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65년이다. 순수 우리 기술만으로 완공한 춘천댐으로 인근의 화천 시가지 입구까지 물이 차올라 오늘의 춘천호가 만들어졌다. 1967년에는 삼악산과 드름산의 암반지형을 이용해 건설된 높이 23m의 의암댐이 만들어지면서 춘천 시가지의 문화와 환경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의암댐이 물을 담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춘천 시가지 서쪽 대부분이 물 속에 잠겨 17㎢에 이르는 도심 속의 의암호가 생겨났다.
호수 안에서 지대가 높았던 곳은 자연스레 섬으로 남아 지금의 위도와 중도, 붕어섬으로 자리 잡았다. 흙을 쌓아 올려 만든 동양 최대 사력댐인 소양강댐은 6년 7개월의 긴 공사 기간을 거쳐 1973년 건설됐다. 높이만 123m에 이르고 총저수량이 29억t에 이르는 댐이다.

이처럼 도시의 상당 부분을 댐과 호수가 차지하면서 주민들의 생활상도 변했다. 외곽의 주민들은 배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해야 했고 농사꾼들은 어부로 생업을 바꿔야 했다. 무엇보다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생겨난 수도권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이면서 도시는 산업단지 등 이렇다 할 개발이 불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춘천은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발전 방향은 문화가 접목된 청정산업으로 물꼬를 틀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멀티미디어와 바이오산업, 애니메이션산업이 태동하면서 가능성을 열었다.

2000년대 들어 고속도로가 뚫리기 시작하면서 변화의 속도가 크게 빨라졌다. 2001년 춘천~대구를 잇는 중앙고속도로가 뚫리며 영동고속도로와 연계해 영동권으로의 소통이 원활해지기 시작했다. 낙후된 강원중북부와 경북 북부지역 등 중부내륙지역의 자원과 지역개발이 목적이었지만 강원도 내 지역 간 소통의 물꼬까지 터준 고마운 도로가 됐다. 이전에는 열악한 교통 여건으로 강릉지역에 별도의 출장소를 두고 도청 업무를 보게 할 만큼 불편했다.

본격적인 도시 변화는 2009년 8월 민자도로 경춘고속도로가 뚫리고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전철이 생겨나면서부터다. 경춘고속도로는 그동안 유일하게 서울과 이어지던 경춘국도를 대신하며 서울 등 수도권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단선으로 이어지던 경춘선 기찻길이 복선전철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이동이 한층 활발해졌다.
전철 개통 이전까지 춘천을 찾는 외지인은 연간 500만명선에 불과했지만 전철시대 이후 불과 4년 만에 춘천을 오가는 유동인구는 1000만명까지 늘었다. 순수 외국 관광객들도 연간 70만명 이상이 찾고 있다. 1939년 사설 철도로 개통된 지 70여년 만에 경춘선은 준고속열차인 ‘IT-청춘’과 일반 전철로 수도권 출퇴근이 가능해졌다.

당연히 기업들도 앞다퉈 춘천으로 몰려들고 있다. 국내 굴지의 닷컴회사인 네이버연구소를 비롯해 KD파워를 중심으로 한 IT전력 생산단지, 더존그룹, 커피생산단지 등이 아예 산업단지를 꾸려 입주했다. 애니메이션산업은 세계적인 히트작 ‘구름빵’을 계기로 국내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지로 자리 잡았다. 주변에 애니메이션 전문 고등학교까지 생겨났다.

문화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종전 강촌을 중심으로 한 북한강 주변의 청춘문화와 미군부대인 캠프페이지 등 주변 군부대의 영향으로 군인들을 위한 문화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도로 여건이 좋아지면서 신레저문화가 붐을 타는 등 다양한 문화가 접목되고 있다. 호수와 주변 산악지역을 이용해 자전거도로가 놓이고 행글라이더와 요트, 카약 등 레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로 변하고 있다.

춘천을 대표하던 마임축제와 인형극제, 애니메이션축제, 닭갈비·막국수축제 등 다양한 지역축제가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0년 이전까지는 덜컹대는 경춘선 기차를 타고 통기타를 메고 찾던 강촌시대를 가수 김현철의 낭만적인 ‘춘천 가는 기차’가 대신했다면 2000년 이후에는 전철을 타고 춘천에 생겨난 상상마당에서 펼쳐지는 K팝 공연을 찾아 전국에서 청소년들이 몰려들고 있다.

변화의 바람은 춘천 시민들의 소비패턴에서도 나타난다. 편리해진 교통의 영향으로 서울 등 수도권으로 올라가 소비하면서 지역 상권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탓에 지역 의류상가들이 많이 사라졌다. 음식문화도 기존 닭갈비, 막국수 위주에서 외지인들의 입맛에 맛는 다양한 먹거리 문화로 바뀌고 있다. 전동경 시 관광기획계장은 “전철이 개통되면서 춘천의 문화가 서울 등 수도권 중심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면서 “춘천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문화를 살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춘천시는 현재 의암호 내 중도 일대에 레고랜드를 추진하고 있다. 이곳과 연계해서 삼악산과 삼천유원지를 잇는 삼각관광벨트를 조성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겠다는 복안이다. 중도 129만 1000㎡에 들어서게 될 레고랜드에는 테마파크와 호텔, 아웃렛, 워터파크 등 관광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영국 멀린사가 1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모두 5011억원을 들여 만들어진다. 2012년부터 추진 중인 레고랜드는 2017년 3월 개장해 일반 관람객을 맞게 될 예정이다.

레고랜드가 완공되면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이 춘천을 찾을 것으로 점쳐진다. 춘천시민들에게도 1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식자재 공급, 각종 지역 축제가 이어져 해마다 5조원 이상의 생산효과가 기대된다. 케이블카로 레고랜드~삼악산~삼천유원지를 잇는 삼각관광벨트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1280억원을 들여 레고랜드~삼천유원지 간 1.2㎞와 레고랜드~삼악산 간 5.2㎞에 케이블카를 건설해 의암호 일대를 체류형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서면 애니메이션박물관과 로봇체험관 일대는 레고랜드 배후지역으로 2017년까지 ‘미래콘텐츠 체험공원’을 조성해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3D·4D 영상 콘텐츠 체험 스튜디오와 애니·로봇 원리 체험교실, 교육장을 갖춘 체험공원으로 꾸며져 해마다 50만명 이상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준우 시 행정국장은 “교통 여건이 좋아지면서 춘천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면서 “옛 미군부대 터인 캠프페이지 일대를 시민의 숲으로 조성하고 낙후된 시청사도 단장해 도시면모를 새롭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서울신문  2014-09-27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