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회연서원 (檜淵書院)
한강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수륜면 신정리에 세운 서원이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제자들이 세운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짓고 회연서원이라 이름하였다.
그 후 숙종 16년(1690)에 임금으로부터 ‘회연(檜淵)’이라는 이름과
토지·노비를 하사 받았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서원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서원 중의 하나로
선생의 문집판 『심경발휘』가 보관되어 있고
현판은 한석봉이 쓴 것이다.
대경재·명의재·양현청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양현청은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고,
해마다 2차례 제사를 지내고 있다.
(글출처 : 문화재청)
[ 성주 회연서원의건축적 의의 ]
한국 서원 건축의 공간 구성과 배치는 교육 시설로서의 강학공간과 선현의 제향을 위한 제향공간, 그리고 제향과 강학 기능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지원공간으로 크게 나뉘며, 건물의 배치 형태는 일반적으로 강학공간을 앞쪽에 두고, 제향공간을 뒤쪽에 두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회연서원은 이러한 전형적인 배치에서 벗어나 강당을 중심공간에 배치하고 동북쪽 뒤로 사당을 배치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으며, 근래에 들어 서원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 새로운 건물을 건립하는 과정에 현재의 배치를 갖게 되었다.
특히 회연서원의 강당은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건물이자 중심건물로서, 2015년 해체 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종도리 상량문에서 1622년 건립하고 1896년에 중건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부재의 치목이나 결구수법 등에서 고식의 기법을 확인할 수 있어 건축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그 규모가 크다. 강당의 구조는 조선 중기의 건축수법과 구조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강당 배면 창호의 구성에 있어 중간설주가 사용된 영쌍창과 창호의 문얼굴에 사용된 연귀맞춤 등은 18세기 이전의 건물에서 확인 되는 고식의 기법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회연서원의 강당은 창건과 상량문의 기록적 근거가 정확하고 건물에 사용된 고식의 건축수법과 구조, 양식 등으로 볼 때 조선 중기 건축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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