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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남강서원 향례 (2018.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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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남강서원 향례 (2018. 04.20.)





함안 남강서원은

구국공신 충열공(忠烈公) 이방실(李方實)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방실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1842(헌종 8) 후손들이 남강사(南岡祠)를 건립하여

 매년 제를 지냈으나, 고종 때 훼철되어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후손들이

 1944년 옛 터에 복원하였다.

그 후 1998년 정부보조금으로 충렬사와 남강서원을 중건하여

현재까지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제6'咸安人物學問'

- 충열공(忠烈公) 이방실(李芳實)의 학문과 사상, 생애 -





2016.11.4() 10 : 30~17 : 00 함안문화원 대공연장에서

2016년 제6'咸安人物學問' - 충열공(忠烈公) 이방실(李芳實)의 학문과 사상, 생애 - 학술대회가 12 : 00~13 : 20 사이에 중식 시간을 포함하여 오후 17 : 00까지 대강당을 꽉 메운 참여자 열기 속에 진행되었다.

 

고려 충혜왕~공민왕 시기의 이방실 장군은 1298(충렬왕 24)~ 1362(공민왕 11)의 생애로 고려의 위인이자 함안이 낳은 큰 인물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1587(선조 20)~1591(선조 24) 4년간 함안 군수로 부임하여 1587년 음 8월에 발간한 함주지(咸州誌)의 인물지 수면(首面 ; 첫장, 첫 페이지)3(한글 번역문으론 5)으로 함안의 인물고 중 가장 비중있게 할애하고 있다.

 

국난극복 전란사의 위인은 역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한다. 이방실 장군은 홍건적이 고려의 국토를 유린한 1359(공민왕 9) 1차 침입 4만과 1362(공민왕 12) 2차 침입 20여 만의 대군을 2회에 걸쳐 물리친 고려 국난 극복의 명장이다.

 

홍건적의 난을 물리치고 공을 세운 장군은 총병관(摠兵官) 정세운(鄭世雲)과 삼원수(三元帥)인 이방실(李芳實), 안우(安祐), 김득배(金得培)이다. 총병관의 지휘로 홍건적의 실전 격퇴의 전공은 삼원수의 공로가 지대하였다. 그럼에도 김용(金鏞)의 권력욕과 시기심, 간계로 정세운과 삼(3)원수가 갑옷의 피가 마르기 전에 모두 희생되었다.

 

원간섭기의 반원운동과 홍건족 및 왜구 침입의 외환기에 1362(공민왕 11) 홍건족을 격퇴한 국난극복 대공의 총병관 정세운의 제거와 훈공의 '안우, 이방실, 김득배 3원수 살해사건'은 권력욕의 김용이 일으켰지만, 1351년 약관 22세에 즉위하여 재위 11년 째로 접어든 1362년 당시의 젊은 나이 33세인 공민왕의 재위 전반기의 측근정치의 난맥상을 보여준 사건이다. 왕의 총애 시기심과 권력욕, 위계의 주모자인 김용도 공민왕을 살해하려는 흥왕사 변란을 일으켜 이듬해인 1363(공민왕 12)에 사형되었다.

 

홍건적 격퇴의 삼원수의 전공 전란사는 수나라와의 살수대첩의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 당과의 안시성싸움 양만춘(梁萬春 또는 楊滿春), 고려조에 들어와서 거란의 침입 귀주대첩의 강감찬(姜邯贊), 강민첨(姜民瞻), 합단적 격퇴의 정수기(鄭守琪), 박지량(朴之亮), 왜구의 침탈을 무찌른 최영(崔瑩), 이성계(李成桂) 등은 조선조 이전의 전란사에서 후세들에 꼭 기억해야 할 극난극복의 명장들이다.

 

이방실 장군은 고려시대 지명인 파산(巴山)에서 태어났다. 이방실 장군이 태어난 파산은 함안의 고지명 별칭이기도 하다. 함안에서는 함안이씨를 이칭 '파산이씨(巴山李氏)'라 부르기도 한다. 함안에는 지금도 파산이씨를 호적부의 본관(관향) 명으로 전통을 이어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파산은 조선시대의 병곡(竝谷, 함주지에 의하면 竝火에서 1586년 선조 19년에 병곡으로 개칭)으로 현 지명으로는 함안군 여항면이다. 고지명 이칭인 파산, 병곡, 여항은 동에서 서쪽로 광려산 투구봉(匡慮山, 704m, 창원 내서에서는 이칭 ; 광려산 상투봉), 광려산(匡慮山, 720m, 이칭 ; 生童山), 봉화산(烽火山, 650m), 서북산(西北山, 739m), 여항산(餘航山, 770m, 속칭 다양 ; 곽더미산, 곽데미산, 각디미산, 角大眉山), 미산(眉山, 650m ; 현 여항산 제2봉으로 의상대 원효암 뒷산으로 미산령으로 표기함)로 삥 둘러져 있는 남고북저(南高北底)의 지형이다.

 

함안천의 물은 이곳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서 법수 악양에서 남강으로 유입된다. 함안의 병곡(현 여항)에서는 광려산 투구봉을 광려산 주봉으로 불렀고(알았고), 광려산 주봉을 바꿔서 다르게 생동산(生童山)이라 전해진 것은 고려 이방실 장군의 탄생지의 설화(장군 아이의 탄생)에 근원하는 산 지명이다.

 

파산이자 병곡은 4개 리 중에서 이방실 장군의 태생지는 하내동(下內洞)으로 현 내곡리(內谷里)이다. 파산은 파산봉수(巴山烽燧)라 하여 봉화산을 지칭했으나 옛날에는 산의 표고(해발)를 눈대중으로 하였기에 같은 지맥(줄기)인 현재의 서북산을 말한다.

 

함주지에는 병곡의 현 내곡리는 진해(鎭海 ; 현 진동의 고명임)로 통하는데 남쪽의 관문으로 대현(大峴 ; 현 한치, 한티를 지칭)를 넘는다고 지리지 산천(山川)을 열거하고, 예부터 문무(文武)의 출신자가 대대로 끊기지 않았고, 고려 말에 원수 이방실의 옛터가 내동(內洞 ; 현 내곡마을, 양촌 일대 지칭함)에 있다고 기록으로 전한다.

 

함안이씨 종중에서도 이방실 장군의 생가지와 우물 등 복원이 요청된다 하겠다. 최근의 신문 보도에 의하면, 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 국도변에 태역비(胎域碑), 사우, 강당, 주차장이 있다고 한다. 군북면 소포리에는 1842(헌종 8)에 건립한 이방실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추모하는 남강사(南岡祠), 남강서원(南岡書院)이 있다.

 

남해고속도로 함안 IC에서 나와 남쪽 방향의 함안군청으로 가는 공설운동장 입구의 함주공원 좌측 도로변에는 20022월에 건립된 이방실 장군의 기마상 동상이 있다.

 

본 학술행사에는 식전행사와 함안문화원 원장(김동균)의 개회사 및 내빈소개, 함안군수(차정섭), 함안군의회 의장(김주석), 함안이씨 대종회장(이갑영)의 축사가 있었다.

 

이어서 기조강연에는 '고려후기의 정치, 사회 그리고 함안' 장동익 교수(경북대)

 

1주제발표 '고려 공민왕대 홍건군의 침입' 윤용혁 교수(공주대)

 

2주제발표 '고려 공민왕대 정국의 추이와 이방실 장군' 이익주 교수(서울시립대)

 

3주제발표 '이방실 장군의 생애와 군사활동' 홍영의 교수(국민대)

 

4주제발표 '이방실 장군의 현창과 지역사회의 역할' 이종봉 교수(부산대)

 

종합토론 및 질의 응답에는 좌장 김기수 교수(부산대 전 총장), 1, 2, 3, 4주제 토론자에는 김호동 교수(영남대), 채웅석 교수(카톨릭대), 구산우 교수(창원대), 최연주 교수(동의대)가 있었다.

 

현장감 있는 관중석 토론 질의에는 함안 군북면 출신으로 김해에 거주하는 경남향토사연구회 자문인 민초 정봉영과 함안이씨 대종회 종인으로 베트남 참전시 전투 중대장을 하였다는 자기 소개와 '오늘 여러 교수님의 학술대회 강의를 듣고서 국난극복의 이방실 선조님에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는 이연찬님(79)의 우국지심 위국충렬정신(채명신 정신)에 대한 소견 외 2분의 질의가 이어지는 등 함안문화원 개최 2016년 제6회 학술대회를 성황리에 마치게 되었다.

 

행사일시 ; 2016.11.4()

장소 ; 함안문화원 대강당

주최, 주관 ; 함안문화원

후원 ; 함안군, 함안군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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