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8코스- 백운동계곡
글 : 경향신문 윤대헌 기자
명의(名醫) 허준은 ‘약보다 음식이 낫고 음식보다는 걷는 게 낫다’고 했다.
걷는 게 그만큼 건강에 좋다는 얘기다.
한데 좋은 약과 음식을 먹고 걷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약초의 고장’으로 유명한 경남 산청에 새 길이 났다.
백두산·금강산과 더불어 한반도 3대 명산으로 꼽히는 지리산 자락을 돌아가는 길이다.
일명 지리산 둘레길(지리산길).
산청에 뚫린 지리산 둘레길 5개의 코스 중 8코스는
백운동계곡을 끼고 있어 풍광이 남다르다.
숲의 청량함에 계류의 시원함이 더해져 걷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지리산 둘레길은 사단법인 ‘숲길’에 의해 만들어졌다.
말 그대로 지리산 둘레 800리(300㎞)를 삥 둘러가는 길이다.
3개 도(전북·전남·경남)와 5개 시군(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
100여개 마을을 거쳐 간다.
지리산 옛길과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마을길 등을 번갈아 타고 가는
이 길에는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스며있다.
속도의 문화를 느림과 성찰의 문화로,
수직의 문화를 수평의 문화로 바꿔주는 길이다.
‘약초의 고장’으로 불리는 경남 산청에는 총 5개의 지리산 둘레길이 뚫려 있다.
금서면 방곡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에서 시천면 갈티재까지 56.7㎞.
이중 단성면 운리에서 시천면 사리를 잇는 8코스는
백운동계곡을 끼고 있어 풍광이 남다르다. 총 거리는 13.1㎞.
5시간쯤 걸린다.
임도와 호젓한 숲길로 이어진 이 길은 제주의 올레처럼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산길이다.
정상에 올라 ‘발도장’을 찍어야 하는 부담감도 없다.
논길과 고갯길, 산길을 여유롭게 걷는 동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눈과 가슴에 담고 가면 그만이다.
8코스 들머리인 운리마을은 7코스 끄트머리와 이어졌다.
7코스에 속한 단속사지를 둘러본 뒤 길을 나선다
.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뜻의 단속사는 8세기께 세워진 사찰이다.
절집을 둘러보는데 미투리(삼·모시 등으로 꼬아 만든 신) 한 켤레가 다 닳을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던 단속사는 지금 드넓은 절터에 당간지주와 동·서삼층석탑, 금당지만
덩그러니 남아 옛 영화를 증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630년생 매화나무(정당매)도 이곳에 있다.
......
운리마을에서 시작한 지리산 둘레길 8코스의 백미는 백운동계곡이다.
너럭바위를 거느린 계곡은 조선중기 성리학의 대가 남명 조식 선생이 즐겨 찾았던 곳.
남명 선생이 지팡이를 놓고 쉬었다는 남명선생장구지소가 지금껏 남아 있다.
웅석산 자락에 길게 놓인 계곡은 덕천강으로 계류를 힘차게 쏟아낸다.
반석을 타고 굽이치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그 사이에 만들어 놓은 다지소와 백운폭포, 오담폭포, 등천대가 절경이다.
......
백운동계곡에서 2㎞ 떨어진 마근담(痲根淡)에 이르면
산길이 끝나고 임도를 만난다
마근담에서 사리마을까지는 시멘트포장길.
오른쪽 옆구리에 계곡을 바짝 끼고 간다.
마근담은 감투봉(768m)이 담처럼 막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본래 이름은 ‘막은담’이지만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마근담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다.
계곡길은 종착지점인 시천면 사리마을까지 줄곧 내리막이다.
시천면은 곶감 생산지로 유명하다.
밤낮의 기온차가 심해 당도가 높은 곶감은 고종황제에게 진상했을 정도.
사리마을로 내려서면 남명 선생이 제자들에게 학문을 전수했던
산천재(山天齋)를 만난다.
산천재 앞뜰에는 남명 선생이 손수 심었다는 매화(남명매) 한 그루가 자태를 뽐낸다.
450년 수령의 매화나무는 해마다 잊지 않고 새하얀 꽃을 피운다.
매화나무 옆에서 웅석산을 되돌아본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산에 겨울이 내리는 추색이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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