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건축 - 양동 마을 관가정| 철학 논평
(글 출처 : cafe.daum.net/ 앙데팡당 철학회)
얼마전부터 건축에 관심을 가져,
학생들에게 전공과목으로서 건축의 철학을 가르쳐왔다.
그런 가운데 우리 전통 건축에 주목하면서, 자주 경주 양동 마을에 들러보았다.
왜냐하면 양동마을의 건축물들은 전통건축을 이해하는데 마치 교과서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통 건축의 기초가 되는 풍수지리 이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풍수지리 이론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아직 배우는 중이라 그 이론을 양동마을에 전개되어 있는 구체적인 예들과 비교하면서
지금 열심히 학습하고 있는 중에 있다.
아직까지는 그저 풍월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상당히 많은 잠재적 가능성이 이 풍수지리 이론에 깔려 있지 않을까 한다.
우선 풍수지리 이론의 기초가 되는 음양오행설이 그렇다.
음양론과 오행론의 결합이라든가, 상생상극론 들은 서양철학의 구조주의나
변증법의 개념과 비교된다.
그렇게 보면 무언가 가능성이 음양오행설에서 엿보인다.
아직은 명료하게 붙잡아 낼 수 없으니 안타깝다.
건축에서 풍수지리 이론은 서양의 생태 건축의 개념과 비교해 보아도,
탁월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더구나 풍수지리 이론은 건축이 생태계를 넘어서 정신계에까지 연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미 서양 건축은 장소의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풍수지리 이론은 그 이상으로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에 건축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양동 마을에 가면 이런 건축의 영혼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가 있다.
남쪽으로 난 마을 입구에 세워진 관가정이라는 건물로 가 보자.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북쪽에 마주 보이는 양동마을의 주산(설창산)의 지맥이 흘러 설봉에 이르고,
이 설봉이 다시 여러 어깨를 흘러 뜨리고 그 가운데 산에서 볼 때 가장 왼쪽 어깨 자락(서쪽)에
관가정이 있다. 이 관가정은 중종 때 선비 손중돈이 지은 집이며,
곡식을 바라본다는 뜻을 지녔는데, 과연 이 집의 사랑채에 서면 서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안강 평야가 보인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마을의 입구에 서면 이 관가정이 은행나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건축에서는 마을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좌우의 팔에 안겨있듯이 안으로 감싸여 있어서
밖에서 보아 가려져 보이지 않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란 듯이 화려함과 장중함을 뽐내는 것을
선비들이 싫어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관가정은 남쪽을 마주 향해 있는데,
은행나무 밑으로 난 길을 따라 서쪽에서 언덕을 오르면 드디어 집의 대문이 나온다.
문은 남쪽으로 나있지만 동쪽 끝에 있다.
그냥 서쪽 입구에 길을 낼 것인지, 굳이 왜 이렇게 가로지르도록 했을까?
생각하면서 문에 들어서 뒤를 돌아보면, 대문을 통해 아주 작고 아름다운 산이 하나 떠 오른다.
비로서 왜 문이 여기에 나야 했는지 이해된다. 바로 이 산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산의 이름은 노적봉이다. 이름 그대로 정말 풍요하게 보인다.
관가정 대문에 들어서면 우선 보이는 건물은 사랑채이다.
건물의 왼쪽(서쪽)에 사랑채의 핵심인 누마루가 있고,
오른쪽(동쪽)으로는 손님들이 머물수 있도록 작은 방들이 있다.
누마루 형식으로 되어 있는 사랑채의 아름다움이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작은 방들이 있는 오른쪽 동쪽에 보면 의외로 작은 쪽문이 있다.
가까이 가서 살피면, 그 밑이 상당히 가파른 언덕이라 굳이 이쪽으로 문을 낼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의외로 왜 문을 냈는지 쉽게 수긍이 갔다.
바로 그 쪽문으로 양동마을의 안산에 해당되는 성주산의 단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하, 선비들이 저 성주산의 단아한 모습을 배우려 했구나.
오른편을 보았으니 마땅히 왼편도 둘러 보아야 하리라.
왼편은 사랑채 마루가 있어, 이 집의 가장 요추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랑채 누마루에서 남쪽 노적봉을 바라보는 쪽은 확 틔여 있는데,
안강평야를 바라보는 쪽의 벽은 나무판으로 꽉 막아 놓았다는 것이다.
막아놓은 나무판 벽을 피해 쳐다보면 오래된 매화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끌고,
그 너머는 괴이하게 생긴 향나무가 시선을 틀어막는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그쪽을 아예 쳐다보지 못하게 하려는 듯 뒷간을 지어놓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서쪽 구릉 위에 나지막 하게 담을 쌓아놓았다.
아니 대체 탁트인 안강평야를 바라보지 못하게 이렇게 겹겹이 막아놓은 이유가 무엇일까?
집의 대문과 동쪽 문이 노적봉과 성주산을 바라보도록 일부로 열어놓은 것이라면,
서쪽은 일부로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해 놓았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서쪽을 보아서는 안되는가? 서쪽은 해가 지는 쪽이고 너무나도 광활한 곳이다.
그렇기에 그쪽을 바라보면 탁트여 시원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서글프고 허전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심정은 선비들이 싫어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풍수지리 이론에 좌 청룡 우 백호라 했다.
청룡이란 생명이 꿈틀 거리는 것을 말하면 백호란 생명이 다음의 날을 기다리기 위해
조용히 엎드린 모습을 말한다. 그런데 이 관가정이 위치한 곳을 잘 보면,
우백호에 해당되는 부분이 없다. 그쪽이 오히려 탁 트여 있으니, 문제가 있다.
생태학적으로 보아도 문제다. 서쪽은 차갑고 메마른 바람이 몰아치는 곳이다.
집의 온기를 보존하는데 그것은 문제이다. 그러므로 막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정신적으로도 문제다. 서글프고, 허전한 느낌이 인간을 끝내 병적으로 만들지 않을까?
그러므로 아예 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서쪽으로 담을 쌓았고, 시선을 막는 장치들을 배치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서쪽에 백호를 만들어 놓고,
조용히 업드려 때를 기다리는 정신을 길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결국 관가정은 곡식을 바라보듯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의 정신의 성장에 해로운 것들을 피하게 하고,
정신이 도움이 되는 것들을 촉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에는 형태가 있어서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여기에 기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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