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4 구례 매천사 매화 ( 2013.03.24.)

728x90

 

 

 

     매천사(梅泉祠)

 

                                 김 영 래

 

 

대문이 잠겨 있다. 문틈으로 마당을 본다.

매화 한 그루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재를 뒤집어쓴 기와 아래

나뭇결 다 삭아 없어진 얇은 마룻널.


 

산수유 네 그루 담장 너머로 꽃등 내걸었다.

아지랑이 타고 찌르레기 떼 흩어지는 보리밭 길.

담벼락 따라 돌며 집안을 본다.

사당 안쪽으로 또 한 그루의 매화,

볕에 초점 풀린 얼음 동공을 열고 있다.

(녹는 얼음, 추워서 떠는 빛--흰빛, 소름의 빛!…)


 

저, 빼려야 뺄 것 없는 무삭(無削)의 뜰에

절명의 시어(詩語)처럼 떨고 있는 싸늘한 향기.

훌쩍 솟은 벽오동 위에서 봉황 대신 까치가 운다.


 

지리산 시암재에서, 남으로

백운산 도솔봉에서 쉬러 내려온 바람이

한낮에도 어슬어슬 뼈를 시리게 하는 구례 들판.

녹는 땅에 뜨는 뿌리 꽉꽉 밟아주기 위해

그가 오는 들녘은 어디인가.


 

사당 뒤 대숲의 산비둘기 떼, 대숲 뒤 송림의 맵짠 한숨.

몹시 추웠던 겨울, 되게 앓았던 세한(歲寒) 다 보내고

다시금 꽃샘추위에 몽우리를 맡긴

저 한빈(寒貧)한 이의 새벽, 그의 죽음.

빙혼(氷魂)과 설산의 흰빛이 봄꿈에 어우러진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