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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강원도

울진 구산항 및 대풍헌 (2013.08.05.)

 

 

대풍헌은 조선시대 구산포에서 울릉도로 가던 수토사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건물이다. 이 건물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구산동사 중수기에 의하면 1851년(철종 2년) 중수하고 대풍헌이란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 측면 3칸의 일자형 팔작집으로 동해안 해변의 작은 포구 구산리

마을 중심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마을 주민들의 집회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평면구성이나 일부 가구수법에서 특색을 보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건물의 여러 부분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조, 변형되어 있어 2010년 해체복원하였다.

조선시대 울릉도를 관리하던 수토사들의 출발지라는 점에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이번에 문화재로 신청된 유물은 이 대풍헌의 안팎에 걸려있는 현판 가운데

1910년 이전에 만들어진 12점이다. 목록은「箕城龜山洞舍」1점(1851년),

「待風軒」1점(1851년),「邱山洞舍重修記」1점(1851년),

「永世不忘之板」6점(1870∼1878년),「邱山洞舍記」1점(1888년),「洞稧完文」1점(1904년),

「重修記」1점(1906년)이다.

 

이 유물들은 조선 정부가 19세기에도 지속하여 울릉도·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울릉도·독도의 수토와 관련된 사료를 찾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이 현판들이 갖는

자료적인 가치와 독도문제의 중요성 등을 감안하여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글자료 : 문화재청)

 

 

 

 

 

 

 

 

 

 

 

 

 

 

 

 

 

 

 

 

 

 

 

 

 

 

 

 

 

 

 

 

 

 

 

구산리 마을은 본래 평해군 근북면의 지역으로 굴비산(구미산) 아래 있어

구미 또는 구산이라 하였다. 1916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구산리라 바뀌고 울진군 기성면에

편입되었다.

구산항의 역사는 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대풍헌이 말해준다.

대풍헌은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기 위해 수토사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다.

구산항은 짙은 안개와 해류가 이상할 때 긴급 대피소 역할을 하고 있다.

구산항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주민도 많다.1991년에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후

2007년 어항시설이 완공되었다. 남쪽방파제는 항구를 감싸기 위해 'ㄱ'로 꺾여 있다.

남쪽으로 보석같은 구산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