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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강원도

원주 흥법사지 (2013.07.)

 

 

 

 

            원주 흥법사지

 

흥법사는 『고려사』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신라 때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는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 진공대사탑 및 석관(보물 제365호)이 있었는데,

1931년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현재는 흥법사지삼층석탑(보물 제464호), 진공대사탑비(보물 제463호)만이 남아있다.

(이하 글 : 문화재청)

 

 

 

 

 

 

 

 

 

 

 

 

 

 

 

 

 

 

 

       흥법사지삼층석탑(보물 제464호)

 

흥법사터라고 전하는 밭 가운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흥법사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지던 거대한 사찰로, 원래 탑 외에도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보물 제365호) 등이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기단(基壇)을 2단으로 두고, 그 위로 기와집 모습을 본뜬 듯한 탑신(塔身)을 3층으로

쌓아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3개씩 새겨져 있는데,

꽃모양처럼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위층 기단의 윗면은 경사져 있고, 보기 드물게 중앙에는 1층 몸돌을 괴기 위한 받침을

3단으로 조각하였다.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시고 있는 탑신은 기단에 비해 너무

작은 모습이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겨놓았으며,

1층 몸돌에는 네모난 문비가 새겨져 있고 문비 안에는 마멸이 심한 문고리 장식이 남아있다.

지붕돌은 두꺼워 보이고 경사가 가파르며, 아래받침은 얇게 4단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파손된 부분이 많다.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가에서 살짝 위로 들려있어

고려시대 석탑임을 잘 드러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머리장식을 받치기 위한 노반(露盤)만

남아 있으나 그 마저도 많이 손상되어 있는 상태이다.

 

기단과 탑신의 불균형이 눈에 띄며, 돌의 구성이나 조각수법이 소박한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진공대사탑비(보물 제463호)

 

 

흥법사터에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진공대사(869∼940)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깨어진 채 경복궁으로 옮겨놓아 이 곳에는

비의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진공대사는 장순선사(長純禪師)밑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당나라에서 수도하고 공양왕 때

귀국한 후 왕의 스승이 되었다. 고려 건국 후에도 태조가 그의 설법에 감화하여 스승으로

머물기를 원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

태조 23년에 입적하니 태조가 손수 비문을 짓고, 최광윤이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모아 비를 세웠다.

 

비를 이고 있었던 돌거북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에 가까운 머리를 하고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네 발로 바닥을 힘차게 딛고 있다. 목은 짧고 등껍질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운데 그 안에는 만(卍)자 무늬와 연꽃이 새겨져 있다.

 

머릿돌은 앞면 중앙에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그 주위에는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을

조각하였다. 용 두 마리가 서로 무섭게 노려보고 다른 두 마리는 양 귀퉁이에서 옆을 쳐다보고 있다.

뒷면에도 네 마리의 용이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데, 웅장한 기운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되어

당시의 높은 예술수준이 엿보인다.

 

경복궁에 있는 비의 몸돌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깨져있어 부분적으로 비문을 알아보기가

힘든 상태이나, 대체로 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