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운가?
지난 7개월간 주말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던 SBS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지난 주말(11월7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4대에 걸친 가족의 사소한 일상들을 통해서, 인생에 대한 의미를 뒤돌아 보게 하고, 63회를 마지막 방송으로 종영되었다. 역시 김수현다운 잔잔하고 깔끔한 마무리였다. 마지막 회에서 극적반전과 모든 결론이 나는 요즘의 막장 드라마와는 격이 달랐다.
나는 전체 드라마 중 채 절반도 시청을 못했지만, '인생은 아름다워'가 있어서 주말이 즐거웠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TV채널선택권이 내손을 떠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집사람을 거쳐서 애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집사람과 애들은 공감대가 비슷해서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항상 내가 문제였다. 시간 죽이기 식의 억지 코메디와 인과관계도 없이 꼬고 꼬는 드라마를 함께 보다가도 결국, 나는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한소리 하고 혼자 일어나고 만다. 가족들의 반응은 채널선택권을 빼앗긴 힘없는 가장의 심술쯤으로 여겼겠지만, 유행과 시청률에만 급급해 작품의 짜임새와 완성도가 결여된 채, 쏟아지는 프로그램들에 대한 실망을 넘어선 분노였다.
어릴 때 집에 텔레비전이 생기고 난 이후로, 애국가 끝나고 “치이이......”소리 나기 전에는 결코 잠든 적이 없었던, TV마니아인 나로서는, 심술이 아니라 반전문가적인 예리한 견해라고 감히 말하고 싶고, 남들보다 기대와 애정이 더 크기에 실망과 분노도 더 크다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김수현의 ‘인생은 아름다워’ 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김수현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여태껏 김수현은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히트 제조기’, ‘역시! 김수현!’ 이다. 한때는 내 놓는 작품마다 시청율 4-50%를 넘나들었고, 방송국에서 모셔가기 경쟁은 스파이작전을 방불케 했고, 김수현 드라마에 캐스팅된다는 것은 임금님의 낙점을 받는 것처럼 어렵고도 영광스럽게 여겨졌었다.
그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반전문가적인 견해로 볼 때, 정확한 캐릭터 창조와 완벽한 대사에 있지 않나 싶다. 극중 등장인물의 수많은 개성들을, 본인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부분까지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고, 함축적이면서도 톡톡 튀는 대사는 극의 이해와 재미를 고조시켜서, 김수현 신드롬에 빠져 버리게 만들었다. 물론, 다음 회의 스토리를 예측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안티팬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고, 사회의 낙오자, 소외자 등과 같은 이상하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을 많이 등장시켜, 드라마를 너무 심각하게, 무겁게 만든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덮어두고, 외면한다고 해서 사회의 문제들이 줄어들거나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픈하고 공론화시켜서 사회의 약자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방송의 역할이고, 작가의 능력이지 않나 싶다.
이번에도 김수현이 꺼낸 카드는 동성애였다. 천하의 김수현이라도 쉽지 않은 카드였다. 종교단체의 반발이 있었고, 교도소에서는 방영이 중단되었고, 보수단체들이 일간지에 항의 광고를 게재하는 등 공식적인 이의 제기에다가 성당에서의 두 사람의 언약식 장면은, 촬영도중 쫒겨 나는 수난을 겪었고, 방영도 되지 못했다.
이미, 동성애 문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우리사회는 쉬쉬하고 자꾸 덮어두려고만 한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타고난 선천적인 기질이라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일 것이다. 드라마 중에서, 가족 중 제일 길길이 날뛰며 벌레 취급했던 막내 삼촌이, 바람부는 언덕에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가 의미심장했다. “가족들이 동성애자 조카를 끝내 이해해 주지 않았다면 조카는 결국 자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던.
'인생은 아름다워’가 김수현의 예전 작품들에 비해서 시청률 면에서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시청률 30%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은 동성애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고, 갈등 보다는 화합과 가족애에 초점을 맞춘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소재가 자극적이지 못했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시청률에 연연해하지 않고 동성애문제를 정면돌파한 작가정신이 돋보이고, 인생에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막장드라마에 익숙해져버린 시청자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안겼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드라마의 홍수들 속에서 모처럼 건진 보석같은 작품이었지 않나 싶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우리 모두에게 숙제를 남겼다.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인가?
작가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집안의 정신적 지주인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평생 잘 보살펴 줄테니 다음 생에는 자신의 각시 하라”는 말로 인생의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나 현실은 각박하다. 금전만능의 사회이고,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경쟁사회이고, 개그맨의 말처럼 1등만이 대접받는 야박한 세상이다.
가진 자만이 행복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불행한 것이 인생일까? 구지 ‘무소유의 행복’까지 언급이지 않더라도 그건 아닐 것이다. 돈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은, 그 돈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질 수 있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재벌가의 가족들 중에서 자살률이 높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누군가가 나에게 ‘인생은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인생이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고 반면에,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되는 것도 인생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과유불급',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하고, '전화위복', 모든 일이 계속 꼬이더라도 결코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너와 나의 인생사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새옹지마'와도 통한다.
인생이 아름답고, 행복한가의 객관적인 판단기준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항상 남과 비교하는 어리석음과 탐욕을 버리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노력하고 가꾸어 나가기에 따라서 인생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남에게 베풀고 봉사하는 인생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고......
'인생은 아름다워'의 매 회 끝부분마다 극중 인물들이 어설프게 넘어지는 장면(꽈당 엔딩)들이 꼭 나온다. 나는 김수현 드라마답지 않는 '옥의 티'라고 여긴 적이 있었는데, 작가의 깊은 뜻이 있었다 한다.
‘예기치 않게 넘어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메시지를 담기위한 극적장치였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실패와 눈물이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김수현 선생은 하고 싶었을까?
2010. 11. 17.
.
'■ 사는 이야기 ■ >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이야기 - 004 <군도>에서 <명량>까지 (0) | 2014.08.04 |
---|---|
영화이야기 -003. <설국열차> - ‘나, 우리 그리고 미래’ (0) | 2013.08.02 |
무자식 상팔자 ( JTBC ) (0) | 2013.03.04 |
영화이야기 -002. < 미드나잇 인 파리 > - 파리는 밤마다 마법에 걸린다 (0) | 2013.01.24 |
영화이야기 - 001 < 밀양 > - 인생 (0) | 2010.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