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 인생 -
나는 고등학교 다닐 무렵,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영화 만드는 일이라면
설사 밤을 새워 작업을 하더라도 행복할 거라는 열정이 그 때는 있었었다.
그래서 학교 단체관람은 결코 빠진 적이 없고
타 학교 단체관람도 웬만하면 놓치지 않았다.
그 당시 단체관람료가 80원이었고
타 학교 단체관람에 슬쩍 묻어 들어가면 100원을 받았었다.
내가 최고의 영화로 꼽는 " 대부 1 "을
그 때 중앙극장에서 4시간동안 서서 보았는데
자막이 올라가고 불이 켜졌는데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꼭 내 이야기 같아서 ......^ㅇ^
그러나 비겁하게도 진로는
춥고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버리고
돈 버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약간의 예술적 냄새도 나는
공대 건축과로 진학했다.
나중에 돈 벌면 예술영화 한편 제작하기로 변명하면서.
주말 깐느에서 낭보가 날아 들었다.
" 밀양 "의 전도연이 세계 최고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이다.
아랑드롱의 축하 키스와 함께.
넉살 좋은 송강호가, 과부가 되어 낙향한 전도연을 꼬시는 사랑이야기 쯤으로 짐작했었는데
불란서와 전 세계를 감동시킨 메시지와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
보통 때는 비디오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중학교 다니는 딸내미를 꼬셔서 근처 멀티플렉스 개봉관을 찾았다.
" 카리브해의 해적 3 "을 보는 줄 알고 따라왔던 딸애는,
뜬금없이 " 밀양 "이라고 하자
사기라며, 사생할 침해라며 거칠게 항의하다가
내가 쥐약 (용돈)을 제시하자 바로 꼬리를 흔든다.
그러나 2시간 반 동안의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날카로운 공격이 시작되었다.
" 아빠 !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는 하지만
감독이 말 하고자하는 심오한 내용을
관객들이 이해를 못하고 지루하기까지 한다면 어떻게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나요 ?"
"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몇 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우리가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두 시간 반 만에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무리가 있을 것이고, 지금은 이해가 잘 안되더라도
너가 여자주인공의 나이쯤 되었을 때나, 감독의 연륜이 되었을 때
그때 다시 " 밀양 "을 본다면, 그 때는 지금과 다른 인생의 의미를 발견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
" 그러면 간단하게 말해서
아빠는 영화가 재미있었나요 ?"
" 사랑하는 딸내미야 !
원래 인생은 재미없는 것이란다.
영화속 주인공은, 사람이 살아가야할 모든 이유를 잃었을 때도 삶을 포 기하지 못하고
"한줄기 은밀한 햇살" ( 밀양密陽, Secret Sunshine )에 의지해서
끈질기게 살아가야 하는게 우리의 인생인데
너 같이 짹짹거리는 참새가 곁에 있으니
이 아빠는 살아가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겠니? "
평소에 세대차이로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던 딸애와
영화 한편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으니
영화감독은 못 되었지만 영화 매니아로서의 보상은 충분히 받은 셈이다.
이번 주말에, 햇살 화사한 날에
아끼는 사람 손잡고 " 밀양 "으로 떠나서
인생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봄이 어떨런지?!
20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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