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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영화 이야기

영화이야기 - 001 < 밀양 > - 인생

 

 

 

 

 

   

   

     밀양

  

 - 인생 -

 

 

 

 

 나는 고등학교 다닐 무렵,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영화 만드는 일이라면

설사 밤을 새워 작업을 하더라도 행복할 거라는 열정이 그 때는 있었었다.

 

 그래서 학교 단체관람은 결코 빠진 적이 없고

타 학교 단체관람도 웬만하면 놓치지 않았다.

그 당시 단체관람료가 80원이었고

타 학교 단체관람에 슬쩍 묻어 들어가면 100원을 받았었다.

 

 

 내가 최고의 영화로 꼽는 " 대부 1 "을

그 때 중앙극장에서 4시간동안 서서 보았는데

자막이 올라가고 불이 켜졌는데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꼭 내 이야기 같아서 ......^ㅇ^

 

 

 그러나 비겁하게도 진로는

춥고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버리고

돈 버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약간의 예술적 냄새도 나는

공대 건축과로 진학했다.

나중에 돈 벌면 예술영화 한편 제작하기로 변명하면서.

 

 

 

 주말 깐느에서 낭보가 날아 들었다.

" 밀양 "의 전도연이 세계 최고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이다.

아랑드롱의 축하 키스와 함께.

넉살 좋은 송강호가, 과부가 되어 낙향한 전도연을 꼬시는 사랑이야기 쯤으로 짐작했었는데

불란서와 전 세계를 감동시킨 메시지와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

 

 

 보통 때는 비디오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중학교 다니는 딸내미를 꼬셔서 근처 멀티플렉스 개봉관을 찾았다.

" 카리브해의 해적 3 "을 보는 줄 알고 따라왔던 딸애는,

뜬금없이 " 밀양 "이라고 하자

사기라며, 사생할 침해라며 거칠게 항의하다가

내가 쥐약 (용돈)을 제시하자 바로 꼬리를 흔든다.

 

 

 

 그러나 2시간 반 동안의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날카로운 공격이 시작되었다.

 

 

 " 아빠 !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는 하지만

   감독이 말 하고자하는 심오한 내용을

   관객들이 이해를 못하고 지루하기까지 한다면 어떻게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나요 ?"

 

 

 "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몇 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우리가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두 시간 반 만에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무리가 있을 것이고, 지금은 이해가 잘 안되더라도

   너가 여자주인공의 나이쯤 되었을 때나, 감독의 연륜이 되었을 때

   그때 다시 " 밀양 "을 본다면, 그 때는 지금과 다른 인생의 의미를 발견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

 

 

 " 그러면 간단하게 말해서

   아빠는 영화가 재미있었나요 ?"

 

 

 " 사랑하는 딸내미야 !

   원래 인생은 재미없는 것이란다.

   영화속 주인공은, 사람이 살아가야할 모든 이유를 잃었을 때도 삶을 포 기하지 못하고

  "한줄기 은밀한 햇살" ( 밀양密陽, Secret Sunshine )에 의지해서

   끈질기게 살아가야 하는게 우리의 인생인데

   너 같이 짹짹거리는 참새가 곁에 있으니

   이 아빠는 살아가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겠니? "

 

 

 

 평소에 세대차이로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던 딸애와

영화 한편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으니

영화감독은 못 되었지만 영화 매니아로서의 보상은 충분히 받은 셈이다.

 

 

 이번 주말에, 햇살 화사한 날에

아끼는 사람 손잡고 " 밀양 "으로 떠나서

인생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봄이 어떨런지?!

 

 

 

                                      2007.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