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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영화 이야기

영화이야기 - 008. <헤어질 결심>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이하, 사진 출처 : DAUM 영화)

 

 

 

 

 

 

 

 

첫 만남은 악연이었다!

 

강력계 형사 해준(박해일 분)과 조선족 여인 서래(탕웨이 분)

수사관과 남편 살인용의 피의자로 처음 대면한다

미망인답지 않은 서래의 태도 때문에 의심을 사기도 했지만

이내 서래의 완벽한 알리바이로 결백함이 밝혀지자

두사람은 서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된다

 

그리고 누구도 쉽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는 않지만

간단한 만남과 짧은 데이트로도 둘만의 추억을 쌓아나간다

 

 

그러나 이 가난하고 애틋한 관계도 오래 가지 못한다

해준은 서래가 알리바이를 철저하게 꾸며냈다는 사실을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었고,

서래의 배신도 배신이지만,

'형사가 사랑에 눈이 멀어서 수사를 그르쳤다'는 자괴감으로

자신의 붕괴를 선언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래는 <헤어질 결심>으로

다른 남자를 만나서 재혼도 했지만,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이포의 어시장에서

서래는 해준 앞에 다시 나타난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고 내용도 복잡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극의 전개가 너무 빠른 반면에 대사가 난해하고, 

오늘 한 번 관람으로 제대로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하마터면 살짝 피곤할 뻔도 했었다

 

그러나 서래의 <헤어질 결심>의 이유를 듣고 나서 부터,

 영화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감독이 이렇게까지 뜸을 들인 의도가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 - 아주 지독하고도 불쌍한 사랑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저절로 한없이 영화에 빠져들게 되었고

극장을 빠져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맺혔었다

 

하지만 같이 갔던 일행의 반응은 싸늘했다

가정이 있는 남자의 불륜과 일반적이지 않는 지독한 사랑에 거부반응이 심했다

그 불륜 이라는 것이 마음에만 숨겨둔 짝사랑 수준의 순수한 사랑이었고,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 무슨 죄가 있겠냐?’

내가 감독을 대신해서 설명해보았지만

일행을 납득시키지는 못 했다

 

 

돌아와서 감상후기를 살펴보았는데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애초에 관객마다

극장을 찾는 목적과 도덕 기준이 다를  것이므로, 

영화를 통하여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다면 범죄도시2’를 선택하고, 

답답하지만 진지하게 타인의 사랑을 이해하고,

인간의 삶에 대하여 성찰하고 싶다면 

헤어질 결심을 선택하면 맞을 듯싶다

 

75회 깐느국제영화제 대극장 뤼미에르에서

 '헤어질 결심'이 처음 상영된 후 8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으며, 

박찬욱 감독은 이런 인사말을 남겼다고 한다

"길고 지루하고 구식의 영화를 환영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깐느 박이라는 애칭을 가진 박찬욱 감독은

올해 깐느국제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인터뷰에서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감독의 주장, 정치적 메시지, 영화적 기교 등이 없는

순수한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다"

 

"제목에 대해서도 많이 묻더라고요. 

보통 결심을 하면 성공하는 일이 드물어요. 

실패로 연결되는 단어로 느껴집니다.

'헤어질 결심'도 관객이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것 같아 마음에 들었어요. 

관객이 능동적으로 고민할 테니 바람직하다고 느꼈습니다."라고

작가의 의도를 밝혔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노래 안개’에도

이런 숱한 사연이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어려서부터 좋아한 노래였는데,

정훈희 버전만 알다가 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 버전을 뒤늦게 알게 됐다

 

영화 중반에 먼저 정훈희 버전 안개를 넣었다

그러고는 영화 마지막 안개 자욱한 곳에서 해준이 서래를 찾는 장면에

트윈폴리오 버전 안개를 넣어봤더니 관객을 너무 울리는분위기가 됐다

 게다가 남자 목소리의 노래는 관객이 해준에게만 감정이입 하게 만들었다

결국 트윈폴리오 버전을 뺐다

 

대신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 자막이 올라갈 때

정훈희와 송창식이 함께 부른 듀엣 버전이 흐르도록 했다

박 감독은 듀엣 녹음을 성사하기까지 엄청나게 공들였다

녹음 현장에서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났다

회상하기도 했다

 

아울러, 개그맨 강신영을 형사로 기용한 것은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깐느 박의 저력과 넉넉한 인품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할리우드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깐느 박’의 건투를 빈다

 

 

 

 

 

 

 

 

 

 

 

 

 

코로나 19 이후로

노래방 갔던 기억이 까마득하지만

한때,  18번이,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었었다

 

내가 김광석의 이 노래를 처음 듣게 된 것은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였다

김영애와 유지태의 사랑은 <헤어질 결심>

해준과 서래와의 사랑과는 색깔이 많이 다르다

 

라면 먹고 갈래요?’로 시작된 김영애의 사랑은

쿨 하지만 이기적이고 냉정하다

서래의 사랑은 헤어질 결심을 한 순간 사랑이 시작되었고

사랑이 시작된 순간 이미 파국으로 치닫는

맹목적이고도 희생적인 사랑이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요즘 세대들은

 30~40년 전의 신파영화에나 나올 법한 서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리한 박 감독은, 

이젠 우리 주위에서 찾기 힘들어진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이야기를 소환하기 위해서

그 여주인공을, 우리의 옛 자화상같은 중국 동포의 모습에서

찾았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세상에 아직도 사랑은 있다!’라는 희망을

말 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닐까?’

아프니까 사랑이다!’라고 말하면 명쾌한 해답은 못 되겠지만

사랑이 가진 숙명을 잘 간파한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사랑의 위대한 힘은

행복할 때보다 불행하거나 어려울 때

그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는 경우를 우리는 더 많이 볼 수 있다

 

아무튼, <헤어질 결심>

‘진정한 사랑과 아픈 사랑의 그 쉽지 않는 숙제를 푸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