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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에세이

수백당기 (守白堂記) - 4 (머나먼 항해)

 

 

 

 

 

       수백당기 (守白堂記) - 4 (머나먼 항해)

 

 

 

수백당의 예정공사기간은 2개월 반이다.

준공시점은 개략적으로 내년 1월 하순에 해당되는데, 공사 후반부에 동절기가 끼어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하고, 1월 31일, 설날 이전에 차질 없이 입주하려면 공기연장도 어렵다.

 

11월 8일 기공식을 마치고 사흘 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현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건축주는 감리자를 선정하여야한다.

주택처럼 건축신고로 가능한 소규모 건축물은 공사감리가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므로

건축주가 판단하여 설계자 혹은 제3의 건축사에게 의뢰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비용 때문에 감리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사무실은 무보수로라도

공사감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물론 건축주가 설계대로 집을 짓겠다는 의지가 확고할 때만

서비스가 가능한 일이다.

 ‘감리는 설계의 연장이다’라는 말이 있다. 설계과정에서 놓쳤던 점을 보완하고,

현장여건에 따라 순발력 있게 대처하고 최종적으로 방점을 찍게 되는 감리의 중요성은,

결코 생략될 수 없는 마무리설계라고도 할 수 있다.

 

 

 

 

 

 

벽체및 지붕 거푸집작업 ( 2013.11.30.) 

 

 

 

 

 

 

 

수백당의 공사감리를 위하여 매주 토요일, 주 1회 정기모임을 가지고

현장 콘크리트 타설 시에는 그때마다 추가로 현장회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11월 13일, 건물 줄기초의 콘크리트 타설을 시작으로 11월 19일, 1층 바닥스라브의

콘크리트 타설이 있었고, 12월 5일 벽체 및 지붕의 콘크리트 타설이 완료되었다.

약 한달 동안의 철근콘크리트공사 기간 동안,

시공자로부터 세 차례의 설계변경 요구가 있었지만 설계의도와는 크게 어긋나는 사안이라

거부하고, 설계변경을 수용하지 않았는데 결국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12월 5일, 지붕의 콘크리트 타설을 지켜보기 위해 아침 일찍 현장으로 나갔는데

지붕의 처마형태와 일부가 설계와 달랐다. 공사의 편의를 위하여 지붕처마를 꺾어버렸고

높이도 맞지 않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당연히 수정한 후에야 공사를 진행시키겠지만, 펌프카와 레미콘 트럭이

이미 현장에 도착해 있는 상황에서 공사를 중단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믿고 방심한 탓이다! 하루 이틀전에만 알았더라면 조처할 수 있었던 사항이다.

다른 부위도 아닌 집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지붕의 처마에 연고불명의 유치한 장난을

쳐 놓았으니 그동안의 공든탑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그런 참담한 와중에 내가 지붕에 올라갔다가 핸드폰을 레미콘에 빠뜨려서 공사를 잠시

지연시키는 불상사마저 일어났다.

콘크리트 타설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착잡한 심정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벽체및 지붕 콘크리트 타설 ( 2013.12.05.) 

 

 

 

 

 

 

시공자 최사장은 중학교 동기로서 내가 추천한 사람이다.

시공자와 감리자는 얼핏 보면 대립적인 관계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협력해야 할 조력자이자 파트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관계가 협조적이지 못하여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하는 현실이 항상 안타까워서 내가 직접 선택한 파트너가 최사장이다.

나는 최사장의 경력을 믿고 ‘설계대로, 친구집 짓듯이’라는 조건 외에는

그 어떤 조건도 없이 공사를 맡겼다.

좋은 건축주와 내가 선택한 시공자만 있으면 완벽한 공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 희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기대를 저버린 최사장에 대한 실망감보다는 나를 믿고 모든 일을 위임해준 건축주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컸다.

 

이번 사태를 잘 수습하고 남은 공정을 원활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대략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방법은 시공자의 교체이다. 차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지금까지의 공사비를 정산해야하는 복잡한 과정과

공기의 지연을 피해갈 수가 없다.

건축주는 설날에 입주가 불가능하더라도 감수하겠다고 양해해주었지만

공기와 입주시기의 준수는 공사의 기본이자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두 번째 방법은 자명해진다.

‘모든 것이 감리자 탓’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시공자의 재발방지 다짐을 받고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감리업무를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벽체및 지붕 거푸집 해체 ( 2013.12.14.) 

 

 

 

 

 

 

 

 

12월 7일 현장회의는 취소되었고, 12월 14일 현장회의가 지난 주말에 있었다.

외장 적벽돌과 지붕 기와의 컬러와 자재 선정이 있었고,

문제가 되었던 지붕 처마선의 보완은 마감재료를 통하여 최대한 수정에 협조하기로

합의가 있었다.

 

 

지금의 공정은 35% 수준이다. 아직 65%가 남았다.

큰 암초 하나가 스쳐지나갔지만

새로운 암초가 나타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13.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