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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에세이

수백당기 (守白堂記) - 2 (설계자와 시공자)

 

 

 

 

       

      수백당기 (守白堂記) - 2 (설계자와 시공자)

 

 

수백당을 비롯하여 건축물을 지을 때 건축주가 가장 신경을 써고

신중하게 선택해야할 일은 설계자와 시공자의 선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선택하면 평생 동지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 선택하면 축제를 망치고

건물 준공 후의 하자보수와 A/S는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규모 건축물의 신축과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건축주는 설계자(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 건축사)를 선정하고

설계도면을 완성한 후 관할 행정관청에 건축허가(혹은 건축신고)를 신청한다.

그사이에 공사를 맡아서 해 줄 시공자를 선정하고 착공신고를 마쳐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공사가 완료되면 행정관청에 사용승인 신청을 하게 되고

모든 유관부서의 확인절차를 통과한 후에야 입주가 가능하고

보존등기까지 마치면 건축행위가 마무리된다.

요약하니 간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몇 년 정도는 늙을 각오를 해야 할 정도로 곳곳에 변수가 잠재해 있다.

 

간혹, 건축주가 설계자를 직접 선정하지 않고 시공자에게 설계자 선정까지 일괄 위임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 못된다. 설계자는 설계와 인허가 뿐만 아니라

전체공사를 지휘, 감독하는 감리자로서의 업무가 있고,

건축주를 대리하여 시공자와의 계약서 작성도 도와주고 협상도 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주와 시공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전문가로서 설계자의 조정역할은

더욱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그렇지만 설계자를 시공자가 선정했다면 건축주는 설계자의

도움과 지원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는 곤란한 현실에 부딪힐 수도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수백당의 건축주는 설계자를 선정하는 일만큼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친한 친구끼리 공적인 일을 같이 하는 것은 장단점이 함께 있을 것이다.

둘 사이에 기본적인 신뢰가 쌓여 있으니 매사에 추진력이 생기고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신속한 결정과 해결도 쉬워진다. 반면에 기본적인 역할존중과

공과 사의 구분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신경 써야함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설계자 선정이 결정되면, 건축주가 설계자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 째는 집에 대한 건축주의 구상과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설계에 반영시켜줄 것과

둘 째는 설계자로부터의 조언과 아이디어의 요구이다.

건축주의 성격과 양식에 따라서 전자와 후자의 비중이 왔다 갔다 한다.

건축주 중에는 설계자 못지않은 높은 건축적인 감각을 가진 분도 있지만,

보통은 자기주장과 고정관념이 강해서 설계자의 디자인 개념을 귀담아 듣지 않거나,

더러는 설계자에게 전자의 역할만을 요구하는 일방적인 건축주도 가끔 있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이 있다. 댓가를 지불했으니 최상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확인이 쉬운 상품같은 ‘물질적 서비스’가 아니고,

서비스의 내용과 한계가 명확하지 않은 ‘정신적 서비스’일 경우에는 관점을 달리해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대량생산되는 공업제품은 차이가 있으면 불량품이 되겠지만, 소량 주문생산 되는 수제품은

차이가 날 수도 있고 어쩌면 차이가 나야 진정으로 가치 있는 작품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예술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장인의 남다른 노력과 창조정신뿐만 아니라

고객의 이해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건축설계도 기존 건축물을 답습하거나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수용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다소 생소할지라도 기존의 틀을 깨고 몇 년 뒤의 미래에까지도

경쟁력이 있는 더 나은 설계(철학)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건축주의 이해와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해진다.

가족 구성원의 변동을 비롯하여, 자고나면 유행이 바뀌고 문화가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근간이 되는 주거문화도 그 흐름을 피해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집을

자기 평생에 두 번 짓는 경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검토하고 대비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좀 늘어졌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건축주는 자기 생각이나 취향을

설계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아울러 설계자의 역할을 존중하고

설사 견해가 다를지라도 경청해줄 줄 아는 여유만 있다면 좋은 건축주가 될 수 있다.

설계비는 전체 공사비의 2~3% 수준으로 비교적 저렴하니 걱정 안해도 된다.

 

 

 

설계가 완료되면 그 다음은 집을 지어줄 시공자를 선정해야한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고

또한 신중을 기해야 할 사항이다. 보통 여기에서 건축주들이 많이 늙는다.

주택으로서 200평 이하의 건물에 대한 시공자의 자격요건은 전혀 없다. 무면허 업자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욕심 같아서는 현대나 삼성건설에 공사를 맡기면 안심이 되겠지만,

한 100채 정도 짓지 않는 이상 그쪽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고, 세금문제 등으로 인하여

소속마저 불확실한 개인 시공자와 공사계약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소규모 건물의 건설업 면허에 대한 법률개정 의견은 수차례 시도가 있었으나

건설업계의 밥그릇 싸움에 묻혀서 아직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가만하여 시공자의 선택과 계약에는 상당히 신경을 써야

뒤탈을 줄일 수 있다. 2명 이상의  경쟁입찰을 통해서 시공자를 선정하고

완벽한 설계도서는 물론이고 내역서를 비롯하여 철저한 계약서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부분들이 간과되고, 생략되고 단지, 구두로만 계약을 해서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물론 양심적이고 훌륭한 장인들도 많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도 않고 소개만으로 선택해야 하는

건축주 입장에서는 여간 어려운 결정이 아닌 것이다.

 

 

설계자 입장에서도 시공자의 선택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공을 들여 설계를 했더라고

설계를 실현시켜야할 시공자가 이해를 못하거나 비협조적이면 순조로운 공사와 만족스러운 결과는

결코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건축주가 시공자를 선정하는 과정에 참여하여

 ‘설계도면대로 정확하게 공사하겠다’는 다짐을 항상 받는다. 하지만 비단 공사뿐만 아니라

기존의 잘못된 관행과 공법조차도 바꾸어야만 하기 때문에 상당한 반발과 비협조가 발생할 수

있고, 설계자와 시공자간에는 별도로 계약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 약속은 대부분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래도 딱히 제재할 방법도 없고 관계만 나빠진다.

그렇게 되면 설계자는 어쩔수 없이 날개를 접을 수밖에 없다.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개선하고 수백당의 완벽한 공사를 위하여 나는 건축주에게

‘시공자 선정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정치판 개혁보다 공사판 개혁이 더 어렵다”는 현실을 강변하자, 건축주는 ‘시공자 선정권’을

설계자에게 양보하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려주었다.

 

 

 

 

 

 

                       2012년 6월 경의 '이주자 주거단지' 현장부근 모습

                  군북으로 들어가는 길에 논에 비친 낙조가 아름다워서 찍어두었었다

 

 

 

 

건축주의 배려로 순조롭게 공사 계약을 준비하면서 우선 먼저 해결해야할 일이 하나 있었다.

이전부터 친구 K가 시공자로 추천한 동네선배가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래서 1차 모임을 주선하여 ‘시공사 선정’에 동네선배를

참여시키기로 합의를 본 후, 2차 모임에서 견적을 위한 설계도면 설명을 하던 중 중대한 오해가

하나 있음이 발견되었다.

친구 K는 자기를 믿듯이 동네선배를 믿고 단독 수의계약을 해달라는 요구였고

굳이 경쟁을 해야 한다면 자기는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집 한번 잘 지으려다 우정에 금이 갈 수 있는 긴급사태가 발생했으니 건축주와 나는

2차까지 자리를 옮겨서 다른 방법도 제시하며 설득했지만 친구 K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어색하게 헤어졌다.

 

첫 번째 시련이었다. 친구 K 본인이 시공자라면 당연히 친구에게 맡겼겠지만, 타인을 추천했기에

공정한 경쟁을 보장했는데도 그 경쟁을 거부했으니 달리 방도가 없어보였다.

결국 친구 K는 기한 내에 견적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자연히 설계자가 추천한 최사장으로

시공자가 결정되었다. 최사장은 마산에서 오랫동안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해 온 베테랑으로

최사장 또한 고향친구이다.

 

 

서운하게 헤어진 친구 K와는 관계가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2주후에 건축주의 주선으로 다시 만나서 평상시처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친구 K가, 촌에서 살아도 통이 큰 놈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2013.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