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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에세이

수백당기 (守白堂記) - 3 (기공식)

 

 

 

 

 

       수백당기 (守白堂記) - 3 (기공식)

 

 

 

지난 11월 8일 금요일 오후, 수백당의 기공식이 현장에서 있었다.

기공식은 공사의 시작을 주위에 알리는 행사로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 등의 공사관계자와

이웃의 친분이 있는 분들을 초청하여 공사의 안전과 무사고를 기원하는 고사를 함께 지낸다.

소규모 현장에서는 생략도 하지만 돼지머리 하나 놓고 공사 관계자들이 모여

상견례를 나누는 자리쯤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무리가 없고

현실적으로는 이 기공식을 기점으로 건축주와 시공자 사이의 공사현장에 대한

책임소재의 분기점이 되는 의미도 있다.

 

건축주의 모친께서 간단히 고사상을 차렸고, 구순이 가까운 부친께서도 나오셨다.

“이 군아! 안방 화장실은 없애도 되지 않을까?”

“아닙니다. 나중에 몸이 편찮으실 때는 아주 유용하게 쓰일겁니다”

“그래! 자네들이 잘 알아서 하겠지 뭐......”

새집을 지으니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시다.

 

내빈으로 건축주 동생과 이웃집 아주머니, 친구 J, 시공관계자들

그리고 '통이 큰' 친구 K도 바쁜 중에도 참석해서 수백당의 순조로운 공사를 기원하면서

기꺼이 지갑을 열고 축하해주었다.

바야흐로 수백당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새집을 짓는 것은 집안의 가장 큰 경사이자 축제이다.

요즘은 단독주택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파트의 태생적인 한계와

아파트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영역과 매력 때문에 단독주택의 가치는

앞으로 점점 더 증대할 것이다.

집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 외에도 삶의 흔적과 역사를 축적해서 다음 세대와 이어주는 매개자로서의 역할도 한다.

아기가 태어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결혼을 하는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과

가족사의 중심에 항상 우리의 집이 존재했었고, 불가피하게 집이 허물어졌을 경우에는

그 터가 그 역사를 이어 왔다.

 

건축주 가족들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마을을 하루아침에 타의에 의해서 떠나야 하는

날벼락을 맞았지만, ‘악법도 법’이기에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집의 역사를 써야한다.

건축주 가족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만감이 교차되는 기공식이었을 것이다.

 

 

 

 

 

 

 수백당의 기공식 ( 2013.11.08.) 

 

 

 

 

 

 

 

 

 

기공식이 끝나고 저녁식사 겸 조촐한 뒤풀이가 근처 식당에서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술잔이 몇 순배 돌 무렵, 건축주의 부인과 친정 오빠가 오셨다.

뜻밖에 참석한 친정 오빠는 건축주의 손위처남이자 중학교 시절 우리들의 은사님이시다.

부산에 계시는데 산소일로 고향에 왔다가 소식을 듣고 참석하셨다.

내가 간략하게 수백당의 설계컨셉과 진행과정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의 예리한 지적이 시작되었다.

“이 군아! 시스템 창호와 로이유리에 대한 검토는 했었나?”

“예. 큰 창은 모두 시스템창호로 설계했고, 로이유리는 오피스빌딩에 주로 쓰이는

고급유리인데 소규모 주택에 적용하기에는 좀 과하고,

대신에 이중창호를 설치할 때 일반적으로 외부창만 페어글라스(진공 이중창)로 하는 것을,

내부창도 16mm 페어글라스를 채택하여 보온과 단열을 한층 강화시켰습니다”

 

“<건축>이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나?”

역시 선생님만 할 수 있는 멋진 질문이다.

“예. 옛날에는 기술이냐 예술이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지만, 요즘은 '건축은 철학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한다면?”

“예. 집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꿀벌이나 개미, 새들도 자신의 집을 지을줄 압니다.

그런데 사람과 동물들이 짓는 집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람이 짓는 집에는 이웃이나 사회를 배려하는 ‘상생의 철학’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오늘 기공식을 한 우리 현장에서도  ‘철학의 부재’가 부른 심각한 폐단이

벌써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착공한 주변 집들의 기단높이(1층바닥 높이)가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보통 1m이고

심지어 1.5m까지 높인 집도 있었습니다. 옆집보다 높아야 한다는 경쟁심과 이기심이

오히려 낭비와 불편을 초래한 것입니다.

나무로 마룻바닥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시절에는 지면으로부터 충분히 높여서 습기로부터

나무가 썩지 않도록 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나, 지금은 콘크리트 바닥이므로

0.5m 정도면 전혀 문제가 없고, 사용의 편리함이나 이웃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낮추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아쉽게도 선생님께서 저녘에 부산으로 가셔야 하기에 더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모처럼 40년 전 중학생으로 돌아가서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수백당이 만들어 준

인연일 것이다.

 

 

 

 

 

 

                   기초 콘크리트 타설 ( 2013.11.19.) 

 

 

 

 

 

 

 

 

 

 

 

 

 

 

벌써 첫눈도 내리고, 여.야간의 끊임없는 정쟁으로 더욱 삭막한 이 겨울의 초입에,

사흘 전에 돌아가신 한 장군의 유언이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던졌다.

“나를 장군묘역이 아닌 병사묘역에 묻어 달라!”

나는 채명신 장군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유언 한 마디로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인생을 살았는지를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풍수에서는 살아서 사는 집을 양택(陽宅)이라 하고,

죽어서 사는 집, 무덤을 음택(陰宅)이라고 한다.

그분은 죽어서 살 집을 지어면서 세상의 모든 경계를 허물고 기단을 낮추어

‘이웃과 소통하고 더불어 사는’ 용기 있고 현명한  집을 선택했다.

그 어떤 건축가보다도 훌륭한 '영면의 집'을 지었다.

 

 

 

                                                                                       2013.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