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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강원도

강릉 오죽헌 - 3 ( 2015.03.28.)

 

 

 

 

 

 

 

 

 

 








 

강릉 오죽헌 (江陵烏竹軒)


                                              (글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설]

 

보물 제165. 율곡(栗谷)이이(李珥, 15361584)가 태어난

몽룡실(夢龍室)이 있는 별당 건물로, 우리나라 주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죽헌은 조선 중기 사대부주택에 많이 나타나는 별당과 그 평면형식을 같이 한다.

 



 

 

 





 




 

 


 

 

 

 

 


 









 



 


 

 

 







[역사적 변천]

 

건립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단종 때 병조참판과 대사헌을 지낸

최응현(崔應賢, 14281507) 고택이라고 불리는 점으로 미루어,

적어도 15세기 후반에는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의 결혼제도는 서유부가혼(壻有婦家婚)으로 남자가 결혼을 하면

부인의 집이나 그 근처에 살고 처가의 재산을 물려받는 풍습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최응현의 집은 그의 사위이자 신사임당의 외조부였던

이사온(李思溫)에게 물려지게 되었다.

이사온과 같이 살던 사위 신명화(申命和)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첫째 딸인 신사임당은 덕수이씨 집안의 이원수와 결혼을 하였고,

둘째 딸은 안동권씨 집안의 아들과 결혼을 하였다.

이사온의 집을 물려받은 신명화의 부인 용인이씨는 외손인 이이와 권처균(權處均)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중 오죽헌이 속해 있는 고택은 묘지를 관리하는 조건으로

권처균에게 분재되었다.

이때부터 이 고택의 소유권은 안동권씨 집안의 후손들에게 물려졌다.

 

1938년 조선문화재보호령에 의해 국가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되다가,

1975년오죽헌 정화사업으로 문성사와 기념관이 건립되면서 안채와 곳간채 및 사주문이

해체되었다.

1995년오죽헌 뒤의 고택이 다시 복원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내용]

 

권씨 고택의 본래 배치는 본가 우측 대나무 숲의 가운데에 가묘가 있고

그 앞으로 오죽헌이 있는 것이다. 현재 문성사가 있는 자리는 어제각이 있던 자리이다.

그 뒤는 소나무숲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본가는 자형의 평면이었고

우측에 입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당의 뒤쪽으로 안채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정면에 위치한 사랑채는

호해정사(湖海精舍)’라 이름하였고, 5대 권진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가와는 담장으로 구분되어 별도의 영역에 자리한 오죽헌은 권씨 집안으로 물려진

고택의 일부분이며 현재 보물로 지정된 곳도 여기이다.

 

본가와는 다르게 동남향하고 있는 오죽헌은 정면 3, 측면 2칸으로

4칸 크기의 대청과 1칸 반 크기의 온돌방, 그리고 반칸 너비의 툇마루로 된

단순한 자형 평면의 건물이다.

이곳의 온돌이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이다.

온돌의 뒤쪽 반칸은 별도로 마루를 드렸는데, 당시 다른 사대부들의 별당과 마찬가지로

책을 보관하던 서실(書室)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커다란 장대석을 한 층으로 쌓은 기단(基壇)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을 창방으로 결구하고,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익공(翼工)으로 처리한 이익공양식(二翼工樣式)의 집이다.

도리는 굴도리이고 그를 운두가 낮은 장여로 받치며, 다시 그것을 주간에서는

창방 위에 화반(花盤)으로, 기둥에서는 첨차 위에 소로小累를 놓아 받치고 있다.

겹처마에 양측 면에 합각(合閣)을 형성한 팔작지붕이다.

 

정면에는 띠살창호를, 측면에는 골판문으로 된 덧문을 달았다.

온돌방은 벽과 천장을 모두 종이로 마감하였고, 대청의 바닥은 우물마루로 마감하였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 오량(五樑)집의 가구(架構)들은 모두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데,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얹고 그 위에 종보宗樑를 놓고,

다시 초각(草刻)한 판대공(板臺工)과 첨차로써 마루도리宗道里를 떠받게 하였다.

합각 밑부분에는 귀틀을 짠 뒤 우물천장을 만들어 서까래가 모여드는 것을 가리고 있다.































  

[특징]

 

이 건물은 주택건축에서는 비교적 드문 예에 속하는 것으로,

쇠서牛舌의 곡선에는 굴곡이 남아 있으며, 첨차의 형태는 조선 말기적인 주심포집과

공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오죽헌은 조선 중기 사대부주택의 별당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포를 구성하는 방식이 주심포에서 익공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포의 변화과정을 짚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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