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준경묘·영경묘 (三陟 濬慶墓·永慶墓)
준경묘·영경묘의 묘역(墓域)과 재실(齋室), 목조대왕구거유지(舊居遺趾)등으로 구성된
‘삼척 준경묘·영경묘’는 조선 태조의 5대조(목조의 부모, 즉 양무장군과 그 부인 이씨)의 능묘로
비록 왕의 능침은 아니지만 조선 왕조가 인정한 선조의 묘역이다.
‘삼척 준경묘·영경묘’는 남한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조선 왕실 선대(先代)의 능묘로서
조선 왕조태동의 발상지로서의 역사성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적 가치 등 중요한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글 자료 : 문화재청)
출발점이 되는 주차장 화장실
두타산 등산로와 인접해 있다
준경묘 묘역 입구
준경묘는 조선 태조의 5대조인 양무장군(陽茂將軍)의 묘이고
영경묘는 양무장군의 부인 이씨의 묘이다.
준경묘는 활기리에 있고, 영경묘는 약 4㎞ 떨어진 하사전리에 있다.
준경묘는 남한에 있는 전주이씨의 묘소 중 가장 오래된 묘소로 해마다
4월 20일이면 전주이씨 대종회에서 시조묘 제례를 올리고 있다한다.
준경묘 앞에는 앞면 3칸·옆면 2칸짜리 제각이 있는데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이 제각은 일반적인 왕릉에 세워지는 정(丁)자형이 아니라
단순한 일(一)자형으로 간소화시킨 특징이 있다.
천하명당으로 불리는 준경묘에 전해오는 전설 중 백우금관(百牛金棺)에 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주를 떠나
처가가 있는 삼척으로 왔을 때였다.
삼척에 온지 1 년 만에 아버지 양무장군이 세상을 떠났다.
묘 자리를 찾고 있던 중 산 속에서 한 도승이 동자승에게 하는 얘기를 우연히 엿듣게 된다.
“이곳에서 장사를 지내면 5대 안에 한 나라를 개국하는 그런 후손이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개토제(開土祭)를 할 때 100마리 소를 제물로 바쳐야 하고, 금으로 만든 관을
사용해야한다”
하지만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목조는 궁리 끝에 100마리의 소(百牛)는 흰 소(白牛)로 대신하고
금으로 만든 관(金棺)은 황금빛이 나는 귀릿짚으로 대체했다 한다.
그렇게 해서 예언대로 5대 후에 이성계가 태어나게 됐다고 한다.
이때 백우(百牛)를 백우(白牛)로 대신하여 천년 갈 조선이 5백년만 유지됐다고도 하고
준경묘 사방 5봉의 산 수명이 각각 1백년이라 조선왕조의 수명이 500년이되었다고도 한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풍수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준경묘의 풍수지리적 의미를 보면 좌청룡과 우백호 중 우백호의 기운이 더 왕성하여
조선 왕조가 좌청룡에 해당하는 장남이 수난을 당하는 역사가 이어졌고,
좌청룡과 우백호가 마주보며 대결하는 모습이라 왕자들 간에 왕위 다툼이 계속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준경묘 바로 아래에는 언제나 수량이 일정하고 수온이 변하지 않는 옹달샘이 솟아오르고
앞에는 늪이 형성되어 명당수가 항상 가뭄을 모르게 하고
뒤쪽은 백두대간에서 일지맥으로 뻗어오는 주룡이 맥을 이루는 자역으로
좌우로는 금강송이 밀림을 이루고 언제나 볕이 따뜻하게 비치는 곳으로서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숨겨준다고 하는 장풍득수의 요건을 완비를 하였으니 조선제일 가는 복지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조선 왕실은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던 1899년 고종 때,
두 묘를 다시 수축하고 하늘의 도움을 빌었지만, 효험도 없이 결국 나라는 망하였고
이씨조선 왕실도 500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
준경묘의 가장 큰 보물은 소나무 숲이다.
100년 이상 된 늘씬한 소나무들로 이루어진 울창한 원시림은 휠링과 사색의 공간을 연출하고
이곳의 빼어난 금강송들은 경복궁 중수 때와 최근 숭례문 복원 때도 건축자재로 쓰여
국가의 동량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2001년, 보은 속리산의 정이품송의 배우자를 고르는
<전국 미인송 컨테스트>에서도 준경묘의 금강송이 당당히 최고로 뽑혀 정이품송과 혼례를
올리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준경묘는 주차장으로부터 약 1.8km 쯤 떨어져 있고
아주 가파른 산등성이를 하나 넘고 난 후에야 평탄한 길이 묘역까지 이어진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즈음에야
준경묘는 아주 드라마틱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묘역 앞까지 찻길은 있지만 중간에 막아 놓아 차를 가지고 갈 수는 없다.
왕복 약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만만찮은 길이지만
고즈녘한 숲길, 양지바른 묘역,
그리고 아주 잘 생긴 소나무(금강송)들을 볼 수 있는
사색과 철학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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