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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이야기 ■/전통건축 이야기

주거건축-016. 홍성 조응식 가옥 ( 우화정 ) - 천하태평을 기원하는 꽃비가 내리는 집

 

 

 

 

 

 

 

 

 

 

    16. 홍성 조응식 가옥 (우화정雨花亭)

 

- 천하태평을 기원하는 꽃비가 내리는 집 -

 

 

 

 예로부터 차령산맥 이북의 충청도 서북부의 중심지역이며, 충청도 4대 고을 중의 하나로서 서해안 중간지점에 위치한 홍성군은, 충남 서북부지역을 일컫는 내포內浦문화권의 발흥지로 오랜 세월 지역의 행정·교통·문화 중심지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주변의 대전시의 성장과 광천을 중심으로 했던 항구및 상업 기능의 쇠퇴 등으로 그 영향이 축소되기 시작하였으나, 근래에 서해안시대의 개막과 충남도청 이전 등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지역이다.

 홍성에서 29번 도로를 따라 청양 방향으로 달리면, 그 중간에 무한천이 북쪽으로 거슬러 흘러간다. 무한천은 예당저수지의 지류로, 시내를 끼고 619번 도로가 분기되고, 장곡면 산성리에서 614번 도로와 만나는 지점의 학성산 북쪽 언덕 아래에 ‘ 꽃비가 내리는 집,  홍성 조응식 가옥(우화정雨花亭)’이 자리 를 잡고 있다.

 

 

 

 

집앞 연못에서 본 우화정 -1 (2005. 10.)              집앞 연못에서  본 우화정 -2. 대나무숲이 사라짐(2012. 05.)

 

 

연못 방향에서 본 우화정 전경 (2005. 10.) 

 

 

 

 고택의 서편으로 학성산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고, 동편으로 조금 떨어져 반계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 지나가면서 크고 작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북편에 있는 산 정상에는 지금도 산성유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 유달리 산성이 많은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백제 부흥운동과 관련이 있다. 복신장군과 흑치상지 장군 등이 부흥운동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 바로 이 부근이기 때문이다. 

 이 후 세월이 한참 흘러, 병자호란을 피해서 양주 조씨 첨지공 조태벽 선생이 낙향하여 산성리에 터를 잡고서 세운 종갓집이 바로 우화정이고, 양주 조씨 가문은 인조대왕의 왕비, 정렬왕후를 비롯하여 정승을 여섯 명이나 배출된 명문가문으로 번성하였다.

 

 

 우화정은 낮은 구릉이 있는 뒷산을 배경으로 주변에 비교적 넓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고,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집 앞에는 소담스러운 연못을 만들어 공간의 여유와 깊이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는데, 집 근처에 이렇게 연못을 만드는 것은 충청도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본채는  사랑채, 안채, 안사랑채를 비롯하여 문간채 그리고 여러 동의 광채를 포함하여  모두 크고 작은 10여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부 사라진 건물들은 원래의 규모와 모습대로 복원과 보수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1. 우화정(꽃비가 내리는 집) 현판          2. 대문 (2005. 10.)       3 . 사랑채와 안채의 좌측면 (2005. 10.)   

 4. 담장너머 감나무가 서 있는 안채 뒷마당. 좌측으로 헛간 일부가 보인다 (2005. 10.)

 

  담장너머 감나무가 서 있는 안채 뒷마당. 좌측으로 헛간이 새로 복원되었다 (2012. 05.)

 

                              우화정의 봄 -1 (2012. 05.)

 

 

 

 전체 구성은 문간채·사랑채·안채를 일직선으로 중심축선 상에 배치하고 동측에 안사랑채, 창고가 있고,

서측에 외양간과 헛간이 배치되어 있었다. 우화정 정면의 문간채를 들어서면 횡으로 긴 사랑마당이 있고, 사랑마당 동측 토지광 앞에 안채로 통하는 중문이 있고, 서측에도 안채 뒷마당으로 통하는 작은 쪽문이 있다. 사랑채  앞에는 우물이 있었다는데, 도둑이 침입했다가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자 바로 폐쇄하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일부 흔적이 기둥에 남아있다.

 

 

 

 

 사랑마당의 가을 -1 (2005. 10.)

 

 사랑마당의 가을 -2.  안채 출입구 중문과 오른쪽에 토지광이 보인다 (2005. 10.)

 

 사랑마당의 봄 -1 (2012. 05.)

 

 사랑마당의 봄 -2 (2012. 05.)

 

 사랑마당의 여러가지 모습 (2012. 05.)

 

 

 

 안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ㄱ'자 형태로 자리를 잡았고, 동편에 광채가 배치되어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배치형태로 보면 튼'口'자 집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안마당은 다른 고택들과 달리, 넓고 주변 건물이 낮아서 밝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안채 대청에는 ‘보현당寶賢堂’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데, 6.25 전쟁 때 이 집이 북한 인민군 사령부로 쓰일 무렵에도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마을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던, 조모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안채의 동측에 자리 잡은 안사랑채는 독립된 마당을 중심으로  양 측면에 광채를 배치하고, 주위는 담을 둘러서 별도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성하였는데, 현재 그 담들은 철거되어 사라진 상태이다.

 

 

 

안마당에서 본 안채 출입구 중문 (2005. 10.)

 

안마당 전경 (2005. 10.)

 

안채 출입구 중문 -1 (2012. 05.)

 

안마당에서 본 안채 출입구 중문과 광채 (2012. 05.)

 

안채 전경 -1 (2012. 05.)

 

안채 전경 -2 (2012. 05.)

 

 

 

 

 전반적으로, 공간분할이 아름다운 우화정의 특징을 최성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사랑채는 전면 5칸 측면 칸반의 ‘一’자형 집이다. 그러나 대청의 규모는 한 칸에 지나지 않는다. 집의 규모에 비해 대청이 매우 작은 편이다. 중문 쪽의 1칸은 2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아래쪽은 사랑채에 불을 지피기 위한 아궁이가 설치돼 있고, 상부는 사랑채의 다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 앞에는 반 칸 규모의 툇마루가 설치돼 있는데 중문 쪽 끝의 한 칸은 누마루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은 2자 정도 높게 만들어져 있는데, 앉으면 담 너머 주변의 넓은 경치를 잘 볼 수 있다. 이 누마루에는 ‘수루睡樓’라는 이름의 현판이 걸려 있다. 그야말로 오수午睡를 즐기는 누마루라는 뜻이다. 이곳은 3면이 개방돼 있어 모든 문을 열어 놓으면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오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집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안사랑채가 있다. 집 주인의 증언에 의하면, 안사랑채는 살림을 물려준 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라고 한다.

 둘째는 중문 앞에 있는 토지광이다. 이 토지광은 여는 방법이 특이하다. 문을 좌우로 여는 것이 아니라 판재를 위로부터 내려 문을 닫는 것으로, 열기 위해서는 위에서부터 차례로 판재를 하나씩 들어내어 열어야 한다. 문을 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도난 방지에 매우 효율적인 방식일 것이다.

 셋째는 사랑채 누마루 벽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문양이 있다. 우리나라 집 특징 중에 하나가 장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교의 영향으로 집에 장식을 극도로 배제했기 때문에 집에 장식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곳에는 사랑채 누마루 아래에 장식을 했다. 장식이라고 해야 팔괘 중 사계를 의미하는 ‘건곤감리乾坤坎離’와 ‘천하태평天下泰平’이라는 글을 써 놓은 것이 전부지만, 이만큼의 장식을 해놓은 것도 필자가 다녀본 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경우다. 유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만물이 평온하기를 바라는 집 주인의 마음을 읽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출처 : 전원주택라이프 http://www.countryhome.co.kr)

 

 

 

 

사랑채 누마루 ‘수루睡樓’ 하부에 ‘건곤감리乾坤坎離’와 ‘천하태평天下泰平’을 기와로 새겨 넣었다

 

안사랑채 전경 -1 (2012. 05.)

 

안사랑채 정문(얼방문)에서 본 사랑채 전경 (2012. 05.)

  

 

 

 

 

 내가 우화정을 처음 찾은 때는 2005년 가을이었는데, 7년이 지나 새봄에 다시 찾은 고택에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고택의 활기이다. 그 활기는 사람이 만든다. 각 방마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고, 집안 곳곳은 깨끗하게 잘 정리정돈 되어 있었다. 가족이나 이웃들의 생활과 왕래는 한옥에 훈기를 불어넣고 묻혀 있던 정겨움까지 깨어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두 번째는 고택의 개방이다. 사랑마당과 사랑채의 내부를 현대적 편의시설로 개조하여 한옥 체험 공간으로 개방하여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답사객 들의 숙박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역사와 전통 그리고 한옥문화까지 체험할 수 있는 고택의 개방은, 운영의 묘를 잘 살린다면 서로 상생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고택의 조경이다. 옛날에는 텃밭정도로 활용했던 집안 곳곳에 나무와 꽃을 심고 화단을 조성하였다. 현재 우화정의 주인 27대 종손 조환웅 씨는 산림해설사이면서 임업후계자로서, 우리의 전통조경 방식을 따라서 인위적이지 않고 주변 환경에 순응하는 자연스러운 형태와 수종을 선택하여 정원을 정성껏

가꾸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집 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어서 그 옛날 소나무 숲이 울창했던 옛 모습을 되찾고, 더 나아가서 작은 수목원을 만드는 것이 종손의 꿈이라고 한다.

 

 

 

 

우화정의 봄 -2 (2012. 05.)

 

 

 

 

 지난 주말에 방문한 우화정은 말 그대로 꽃밭에 묻혀 있었다. 사랑마당에서 시작된 꽃불은 안채와 안사랑채를 거쳐서 우화정 뒷동산을 수 놓고, 담장 너머 학성산의 수백년 된 소나무 숲까지 번져 나가고 있었다.

 

 그 옛날, 꽃비가 내리는 행복한 집안을 꿈꾸며 우화정을 짓고, 국가와 세상의 태평성대를 기원했던 선조들의 꿈이 27대 종손에게서 완성될 수 있기를 빌어보며, 화사한 봄볕이  한창인 우화정 꽃터널을 아쉬운 마음으로 빠져나왔다.

 

 

                                                                                                   2012. 05. 06.

 

 

 

 

                                                      대문 밖 대나무숲과 연못이 보인다 (200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