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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기도

남양주 진접 여경구가옥 (2011.06.)

 

현재의 소유자 여경구의 장인인 이덕승의 8대조가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180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산을 뒤로 하고 있어 주변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안채와 사랑채·문간채·행랑채·사당채가 연결되지 않고 각각 떨어져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안채는 집안 깊숙히 'ㄱ'자형으로 자리잡았고 안마당을 중심으로 광채가 'ㄴ'자로 배치되어 튼 'ㅁ'자형 배치를 보이고 있다. '一'자형 사랑채·대문채·사당채가 있으며, 사랑채 앞에는 헛간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헐리고 없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인데 왼쪽으로 사랑채가 있고 앞쪽으로 광채가 보인다. 광채의 오른쪽 끝에 있는 중대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안채는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의 평범한 'ㄱ'자형 집에 안방의 뒤쪽으로 골방·뒷방·광을 둔 것이 경기도 사대부 집의 특이한 공간구성을 보이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기단의 높이와 건물의 크기가 같으나 사랑채가 약간 앞으로 나가 위치하여 대문에 들어오는 사람이 바로 안채를 감지할 수 없도록 하였다. 사당채는 사랑채의 뒤편 한단 높은 터전에 따로 꾸몄다.

 

 사랑마당과 안마당의 정원시설은 앞면이 터져 있어 전망만이 시원하게 틔여있을뿐 어떠한 시설도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안채 뒤안에는 화단을 만들었다. 부엌 동쪽의 조그만 뒤뜰을 지나면 개울이 흐르고 수목이 울창하게 심어졌는데 아마도 인위적으로 만든 숲으로 여겨진다.

 

 태묘산을 진산(鎭山)으로 삼고 여기에서 뻗어나온 조그만 줄기를 따라 명당이 자리하며 국(局)이 열리는 곳에 집을 지었다. 집앞은 비탈져서 왕수천(王水川)에 흐르는 너른 들에 잇대어 지며 들판을 너머로 조산이 연속하여 나지막하게 전개 된다. 이 마을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산을 등지고 있어서 주변 경관이 대단히 아름답다.

 

 평면은 전체적으로 일자(日字) 모양인데 서쪽 측면에서 진입토록 되어 있으며 각 건물이 연결되지 않고 각각 떨어져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안채는 집안 깊숙이 동쪽에 T자로 앉고 안마당을 중심으로 광채가 ㄴ자로 배치되어 튼ㅁ자 형상을 이룬다. 광채 서쪽에는 사랑마당을 중심으로 뒤쪽에 일자형(一字形) 사랑채가 놓이고 서쪽으로는 대문채를 두며 사랑마당앞 하단 아래에는 헛간채가 배열되었었다. (지금은 헐리고 없음)  사랑채 뒤에는 2간 사당(祠堂)이 지어졌으며 뒤뜰은 안뒤뜰과 사랑뒤뜰을 구분하여 담장을 쌓아서 막았다.

 

 안채는 2간부엌, 2간안방, 2간대청, 2간건넌방의 평범한 ㄱ자형집에 안방 동쪽으로 꺽어져서 골방과 뒷방, 광을 배치한 것이 경기도 사대부집의 특이한 공간구성을 연출하고 있다. 광채는 꺽인부분에 대문간을 시설하여 사랑마당에서 중문(중문)을 지나 안마당으로 꺽어 들어가도록 하였다. 문간 옆에는 오양간, 광, 뒷간이 놓이며 서쪽 측면은 모두 광인바 사랑에서 쓰도록 고려되었다. 사랑채는 4간 전좌(前左) 퇴집으로 이루어졌는데 위·아래사랑방과 대청, 건넌방의 차례로 배치되고 앞퇴에는 툇마루를 깔았다. 사랑대청은 양쪽 구들과 전면 모두 4분합문(分閤門)을 시설해서 3면을 개방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대문채는 솟을대문으로 만들어졌으며 구들과 오양간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부분의 이용은 원형을 잃고 있음)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가 1고주5량인데 안채대청 부분만 긴보5량으로 처리하고 광채와 대문채는 맞걸이3량집이다. 사랑채는 2간(間) 전퇴집인데 1고주4량으로 처리해서 전면 지붕이 뒷면보다 길게 되었다. 이것은 경사가 급한 지형에서 자주 쓰이는 기법이다. 안채는 전면을 박공으로 하고 양옆은 합각지붕이며 사랑채 역시 합각지붕이다.   기타 사랑채, 문간채, 광채는 모두 맞배집으로 구성되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자연석의 높은 기단 위에 자리하며 높은 초석, 네모기둥, 납도리집이다. 대공은 사다리꼴 판대공이며 대공 위에 받침목만 있을 뿐이다. 사랑채와 안채는 기단의 높이, 건물의 크기가 같으나 사랑채가 약간 앞으로 나가 앉아서 대문에 들어오는 사람이 곧바로 안집을 감지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사랑마당과 안마당의 정원시설은 전면이 툭 터져 전망이 시원할 뿐 이렇다 할 시설을 갖추지 않았으나 안채 뒤의 뒤안에는 화단을 만들었다. 1.5M 정도 높이의 자연석 석축을 2단으로 쌓고 아래에는 향나무등을 심었으며 뒤에는 큰 느티나무와 우물이 마련되었다. 아래에서 우물에 이르는 길은 자연석 계단으로 축조하였다. 부엌 동쪽에는 조그만 뒤뜰이 만들어지고 우물이 있으며 우물 곁 쪽문을 나서면 조그만 개울이 흐르고 수목이 울창하게 심어졌다. 아마도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으로 여겨진다.

 

 이 집을 동네에서는 연안(延安) 이씨(李氏)의 동관댁이라고 부르는데 전 소유자(여경구씨 장인) 이덕승씨의 8대조가 지은 집이라고 전한다. 건축기법 등으로 미루어 보건데 18세기 말에 건축되지 않았나 추측된다. (자료-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