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사는 이야기 ■/여행 이야기

나일강에서 갈릴리호수까지 - 6

 

 

 

 

 

 

 

 

 

 

          나일강에서 갈릴리호수까지 - 6

 

 

 

 

 

          여섯째, 마지막 날 (8월 14일) - 축복의 땅, 사랑의 땅

 

 

 

 

 

 삼육대학교 교수 및 가족 성지연수단의 연수일정 마지막 날은, 갈릴리 호숫가의 새벽 일출예배로 시작

되었다.

물안개 자욱한 수면 위로 아침햇살이 곱게 퍼지고, 물기를 머금은 선선한 바람이 만든, 잔잔한 물결이

끝없이 호수 가장자리로 밀려왔다. 저 호수에서 고기를 낚던 사람도, 세상을 낚던 분도, 그 역사를 지켜보는 우리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저 여명의 호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침 설교는 홍 순명 교수님이 맡았는데, “사람의 어원은 사랑이다!”라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세상에 사랑보다 더 가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우리가 이번 연수에서 찾아야 할 진리도 사랑이 아닐까?

결국, 하나님의 말씀 전부를 두 단어로 줄이면 그 또한 사랑이지 않을까?

 갈릴리 호수는 말이 없고, 물결만 끝없이 밀어 보냈다.

 

 

 

  

 

 

 

 

 

 

 

 

 

 

 

팔복기념교회

 

 

 갈릴리 호숫가의 리조트( PILGER HOUSE RESORT )를 출발하여, 오늘의 첫 방문지는 팔복 기념교회였다.  팔복산 정상에 오르면, 예수께서 팔복의 산상보훈을 선포한 것을 기념하는 팔복교회가 있다.

갈릴리 호수가 보이는 작고 아름다운 교회로,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바를루치가 설계한 작품이다.

 8가지 복을 상징하는 팔각형 지붕에 내부 역시 팔각형 구조이며, 8면의 유리창에 라틴어로 팔복의

내용을 하나씩 새겨 놓았다.

 주후 5세기경에 처음 교회가 세워졌었고, 현재의 팔각형 교회는, 지난 1939년에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지원으로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다시 세운 것이다. 호수변의 전경이 뛰어나고, 정원과 뜰이  

남국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잘 가꾸어져 있다.

 

 

 

 

 

 

 

 

 

 

 

 

 

 

 

베드로 수위권교회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 출신의 베드로는,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후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뉘우친 후에는 복음 전파의 최전선에 나섰다.

 이 교회는 1938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베드로가 미래 교회의 수장으로 선택된 것을 기념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탁으로 사용한 바위 위에 교회를 세웠다.

 교회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투과하여, 형형색색의 부드러운 공간을 연출한다.

마당에는 하트 모양의 세 개의 돌이 있고, 예수님과 베드로의 청동으로 만든 동상이 있는 정원에서,

우리는 안식일 예배를 드렸다.

 

 

 

 

 

 

 

 

 

 

 

 

 

 

 

오병이어 기념교회

 

 

 팔복교회의 경사진 언덕 바로 밑에 타브가라고 하는 교회가 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이다.

 1930년대 초 독일 고고학자들이 타브가를 발굴했고, 이곳에서 4세기 비잔틴 시대의 유적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유적에서 많은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는데, 이 중에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묘사되어 있는 모자이크를 발견했다. 이로써 이곳이 오병이어 이적을 기념했던 교회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현재의 교회는 독일의 '가톨릭 팔레스틴 미션'이 부지를 사들여 교회를 재건하였고, 교회 전면의

간결하면서도 단아한 정원과 회랑을 돌아 들어가면, 오병이어의 모자이크가 남아 있는 본당이 나온다.

 

 

 

 

 

 

 

 

 

 

 

 

 

 

 

가버나움

 

 

 

 갈릴리 북서쪽 호숫가에 위치한 고대도시로, 예수님의 갈릴리 복음 전파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성서에

의하면, 예수 이전부터 아코에서 다마스커스를 지나 바빌론으로 통하는 중요한 중계지역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예수께서 이 도시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수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버나움에는, 4세기경 예수님 당시의 검은 현무암 기초 위에 세워진 유대교 회당의 유적이 있고,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발굴한 베드로의 집 유적 위에 세워진 배 모양의 현대식 베드로 교회가 있다.

베드로 교회는 행사가 있을 때만 교회를 개방하기 때문에 내부는 구경하지 못하고 나오는 길에,

주차장에서 마침, 리프트 작동중인 장애인용 관광버스를 보았다.(표지사진)

 사회의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 - 이는 우리가 꿈꾸는 선진 복지사회의 기본적인 요소이자, 궁극적인

목표도 될 것이다.

 

 가버나움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갈릴리에서의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가나로 가기 위해서 전용버스에 올랐다.

 

 

 

 

 

 

 

 

 

 

 

 

 

  

 

 

 

 

가나마을 혼인잔치 교회

 

 

 가나는 나사렛에서 북동쪽으로 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성경에서 가나는,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 번째 기적을 행한 곳이고, 예수님의 제자 나다나엘의

고향이기도 하다.

 가나의 혼인잔치가 열렸다고 알려진 곳에, 프란치스코회에서 기념교회를 건축하였는데, 안식일로

문이 닫혀 있어서 방문하지 못하고, 근처의 교회에 들렀다.

 간단한 예배 후, 윤 목사님께서 우리 일행을, 부부끼리 참석한 사람과 솔로로 참석한 사람, 두 팀으로

구분해서 줄을 세우고, 솔로로 참석한 사람들에게 혼인 축가를 부르게 했다. 약간 쑥스럽긴 했지만,

부부의 의미를 되 짚어보는,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을 골목입구에는 웨딩와인 가게들이 몇 군데 있었는데, 선물용으로 만든 4개들이 소형 세트가 눈에

띄었었다. 교회를 방문하고 나올 때 들렀더니,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아 버렸다. 좋은 의미가 담긴 선물을 살 기회를 놓쳐버렸다.

 결혼의 신성함과 가정의 소중함을 새삼 생각해 보게 하는, 가나 마을을 뒤로하고, 예수께서 성장하신

나사렛 마을로 향했다.

 

 

 

 

 

 

 

 

 

 

 

 

 

나사렛의 수태고지교회

 

 

 나사렛은 이스라엘의 비옥한 농경지, 이스르엘 평야 가까이에 있는 도시로, 처녀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곳이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낳은 마리아는 남편 요셉과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예수께서는

전도활동을 펴기까지 30년 동안 이곳에서 목수의 아들로 지냈다. 현재의 나사렛은 회교도와 기독교인이

반반씩 사는 인구 4만여 명의 이태리풍 도시이다.

 마리아께서 수태를 고지 받은 동굴위에 세워진 수태고지교회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교회로서, 국제 현상설계를 통해서 건립된 특색 있는 교회건물이라고, 건축과 홍 순명 교수님

께서 알려 주셨다. 그러고보니, 여태껏 본 교회들 보다는 장식은 간결해 졌고, 공간은 단순명료해진

느낌이 든다.

 교회 내부 벽에는 각 국에서 보내온 성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것은, 한복을 입은 아기 예수를 마리아가 안고 있는 모습이다. 

 교회 지하에는 수태고지 동굴이 잘 보존되어 있고, 교회의 지붕 외벽은, 백합꽃을 형상화 하였다 한다.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을 빠져나와, 지중해 해안 쪽으로 약 30분 정도 달리니, 왼쪽으로 넓고 푸른 평야, 이즈르엘 평야와 갈멜산이 나왔다.

 

 

 

 

 

 

 

 

 

 

 

 

 

 

갈멜산 엘리야 기념교회

 

 

 갈멜산은,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신자들과 함께 대결하고, 마침내 승리를 해서 유명해진 산으로,

꼭대기에는 1868년에 세워진 '므흐라카' (불의제단)라 불리는 엘리야 기념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그들의 신중 누가 진정한 하나님인지 맞대결을 벌인

갈멜산에서의 승리를 통해서, 새로운 종교 질서를 세웠으며, 이스라엘을 종교적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이곳은 본래 십자군의 성채가 있었던 곳으로 기념교회 옥상에 올라서면, 지중해 쪽 뿐만 아니라,

이즈르엘 평원과 사마리아 산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훌륭한 조망을 가지고 있다.

 

 

 

 

 

 

 

 

 

 

 

 

 

 

가이샤라

 

 

 하이파와 텔아비브 중간 지점, 사마리아 북부 지중해 연안에, 주전 22년경 헤롯대왕이, 대역사를 일으켜

큰 부두를 갖춘 도시를 건설한 다음,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토 케사르를 기리는 뜻으로 가이샤라라고

이름 지었다. 팔레스타인 땅과 로마로 연결할 수 있는 항구도시를 만들기 위해, 이곳 가이사랴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 후, 약 500년간 로마 총독이 이곳에 주재했으며, 오랫동안 행정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가이사랴 국립공원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거대한 방파제와 등대를 만나게 된다. 선박들의

안전한 정박을 위한 내항을 조성하기위해서, 인공적으로 방파제를 만들었는데,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로마식 원형극장과 전차 경기장이 나온다.

 이곳에 있는 원형극장은, 로마에 있는 콜롯세움과 같은 완벽한 원형이 아니라, 반원형으로 되어 있다.

마치 부채꼴 모양으로 되어 있는 이 반원형 극장은, 일반 관객들이 바다를 향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고,

바다 쪽에는 무대가 설치되게 된다.

 현재도 이 반원형 극장에서는 일 년에 몇 차례 씩 공연이 이뤄진다고 한다. 쥬빈 메타나 아이작 스턴등이 이 무대에 서서 공연을 하면, 관객들은 객석에 앉아 빨갛게 물들어 가는 지중해의 일몰을 바라보며

공연을 감상하게 된다. 상상만 해도 가히 환상적이고, 부럽다.

 주말을 맞아서 해변가로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2천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고대 유적지와

그 속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 어울려서, 너무나도 여유롭고 평화스러운 가이사랴 국립공원의  바닷가

오후 한 때 였다.

 

 

 

 

 

 

 

 

 

 

 

 

 

 

 

 

 이제, 버스는 텔아비브로 향하고 있다. 가이샤라를 끝으로, 지난 6일 간의 모든 연수일정을 마치고,

저녁식사 후에는 벤구리온 공항으로 갈 것이다.

해변을 따라서 달리고 있는 차 창밖으로, 지중해의 해가 지고 있었다.

 바로 도로 옆 해변에는, 비키니 차림의 엄마와 노랑머리의 어린애가 공놀이하는 사랑스러운 모습도

보이고, 곳곳에 젊은이들의 다정한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해변의 수 많은 사람들과 야자수 사이로 붉은 해가, 점점 지중해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텔아비브 공항

 

 

 어둠이 내려 앉는 텔아비브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중국음식으로 간단히 하고, 벤구리온 공항

으로 향했다.

 이번 성지연수단의 전 일정을, 사소한 문제와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완벽하게 지휘해내신

윤 목사님은,  논문 준비 때문에 함께 돌아 오지 않고, 공항에 남으셨다. 끝없는 구도자적 열정에 머리가

숙여 진다. 한국 가서도 자주 뵐 수 있고, 건강하시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벤구리온 공항의 악명 높은 보안검색을 무사히 마치고, 탑승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비행기 탑승시작

까지는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모처럼, 한가한 여유시간이었다.

 

 

 지난 1주일이 한 달처럼 느껴졌다.

‘성지순례는 관광이 아니다.’라던 어느 여행사의 카피를 절실히 체험하였다.

 편하고 즐거운 여행과 휴식을 기대하진 않았었지만, 성지연수나 극기훈련이 아니고서는 소화해낼 수

없는 많은 일정과 경험의 연속이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까지, 나일강에서 갈릴리 호수까지의 6 일 간의 성지 연수 강행군.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너무나 많은 감동과 체험으로 가슴이 벅찼고, 항상 다음 여정이 기다려지는,

가슴 설레는 하루 하루였었던 것 같다. 이제 모든 일정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보다,

일정이 벌써 끝났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건너 편에 앉아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던, 서 경현 교수님의 모친께서, 공항의자에 기대어 잠이 드셨다. 시내산도 같이 올랐고, 갈릴리 호수 선상 음악예배 때는 열창을 해 주셨다. 모든 일정을 어린 대학생들과

똑같이 소화해 내셨다. 강 경아 교수님의 부모 두 분도 마찬가지셨다. 피곤해서 깊이 잠이 드셨지만,

표정은 평온한 모습이시다.

 같이 연수에 참가한 모든 분들께도, 십년지기와 같은 무한한 신뢰와 유대감을 갖게 되었다. 모두들

개인적인 사정보다는, 단체와 일행을 위해서 협조와 봉사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군대친구나 조강지처가 각별한 것은, 어렵고, 힘든 순간을 같이 한 소중한 기억 때문이리라.

 

 이번 성지연수에 대한 정리는, 앞으로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당장 떠 오르는 것은,

성지순례를 꼭 신앙적인 차원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역사적, 문화적, 인류학적, 건축적인 접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더라도, 충분한 가치와 보람이  있고,  더불어, 궁극적인 진리와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슴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과 학교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우리 성지연수 동기 여러분께도!

 

   샬롬 ! 샬롬 !  삼육대학교 성지연수단 여러분 !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시고, 가정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나에게는, 이번에 따라온 대학생 아들 외에도, 지금 고등학교 다니는 딸이 하나 있다.

이 딸이 대학생이 되면,

같이 성지연수에 다시 한 번 참가하리라 다짐하면서,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0. 10.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