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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실 ■/스크랩 - 세계의 건축가

세계의 건축가 -093. 리카르도 레고레타 Ricardo Legorreta

 

1.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리카르도 레고레타 빌키스 (Ricardo Legorreta Vilchis
, 1931년 5월 7일 - 2011년 12월 30일)  멕시코의 건축가이다. 그는 멕시코, 미국 및 기타 국가에서 개인 주택, 공공 건물 및 마스터 플랜의 다작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는 1999년 권위 있는 UIA 금메달, 2000년 AIA 금메달, 2011년 Praemium Imperiale을 수상했습니다.

생애 및 경력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1931년 5월 7일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1953 년에 졸업했습니다. 호세 빌라그란 가르시아(José Villagrán García)와 10년 동안 함께 일한 후 1963년에 자신의 사무실을 설립했습니다. 

건축적 표현

Legorreta는 Luis Barragán의 제자였으며 Barragan의 아이디어를 더 넓은 영역으로 가져갔습니다.  바라간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전통과 현대 건축을 융합시켰지만 그의 작품은 대부분 국내 건축에 국한되어 있다.  Legorreta는 밝은 색상, 빛과 그림자의 유희, 견고한 플라톤의 기하학적 모양을 포함하여 Barragan의 건축 요소를 그의 작품에 적용했습니다.  Legorreta의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호텔, 공장, 상업 및 교육 건물과 같은 다른 건물 유형에서 이러한 요소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멕시코 시티의 카미노 레알 호텔, 과달라하라의 IBM 공장 및 마나과 대성당입니다. 

작품

 

로스 앤젤레스 Pershing Square의 분수

 

샌안토니오 공립 도서관, 텍사스, 1995
멕시코 시티의 Paseo de la Reforma에있는 Torre BBVA Bancomer는 현재 멕시코에서 3 번째로 높은 건물입니다

멕시코시티

멕시코의 다른 도시

미국

중앙 아메리카

2005년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의 Centro Comercial Multiplaza Panamericana.
니카라과 마나과 신축 성당

기타 국가

기타 인정

2000년 Legoretta는 American Academy of Achievement의 Golden Plate Award를 수상했습니다. 

2002 년 Legoretta는 스페인 정부로부터 가톨릭 이사벨라 훈장을 받았습니다.

 

출처 - Ricardo Legorreta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2.  색과 빛을 타고 전달되는 감성적인 건축  리카르도 레고레타

 

빛과 색과 물, 이 세 가지를 언어로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멕시코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그의 작품 속에는 멕시코 전통 건축의 색채가 강하게 배어난다. 그는 이를 보편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이제 곧 제주도에서도 그의 건축을 볼 수 있다.
 


일본에 지은 개인 주택 ‘카사 델 레고레타’. 그의 건축에서 여백은 빛이 들어올 자리이다. ⓒ이한구

“건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품위를 가지며 동시에 아름답게 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삶의 가치에 근거를 두어 디자인해야 한다. 건축을 영원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는 바로 빛과 그림자, 질감과 색깔, 물과 벽, 바닥과 천장 같은 것이다.”_ 리카르도 레고레타

 

멕시코를 대표하는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그는 지금 제주도 중문관광단지 옆에 ‘카사 델 아구아 Casa del Agua’란 이름의 세컨드 하우스(호텔・ 레지던스・문화 공간을 갖춘 리조트)를 짓고 있다. 2010년 5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이곳은 일본에 지은 개인 주택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 프로젝트다. 공공성을 지닌 건축물로는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아시아에 짓는 첫 번째 건축물이다. 어쩌면 노장의 건축가가 아시아에 짓는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측면에서 한국의 건축가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또한 다분히 멕시코적인 정서가 제주도 풍경 속에 어떻게 녹아들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멕시코 건축의 역사와 더불어 성장했다. 멕시코에 국제주의 양식이 유입되면서 건축의 패러다임이 바뀌던 1930년대에 태어나, 멕시코 곳곳을 여행하며 멕시코 전통 건축과 식민 통치 시절의 건축물을 보고 자랐으며, 멕시코 근대 건축의 아버지 호세 비야그란 가르시아 Jose Villagran Garcia의 사무실에서 건축 실무를 시작했다. 또한 그의 스승이었던 멕시코 현대 건축의 아버지 루이스 바라간 Louis Barragan은 전통 건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 장본인이었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지금 멕시코에서 아들 빅토르와 함께 ‘레고레타+레고레타’라는 이름의 건축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전통 건축에서부터 근현대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접해본 아버지 레고레타는 결국 멕시코 전통 건축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두꺼운 흙벽으로 지은 멕시코의 토속적인 건축이 경량화된 철골과 유리로 지은 첨단 건축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그다. 무엇보다도 환경 친화적인 면을 중시하는 그의 건축 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멕시코에서는 기후적 요인으로 인해 실내외를 효율적으로 연결해주는 공간적 장치가 필수인데, 그는 테라스를 들이는 것 외에도 분절된 벽체를 여러 겹으로 세우는 방식을 시도해 바람이 드나드는 길과 그늘을 만들었다.

(위) 아버지 리카르도 레고레타와 아들 빅토르 레고레타는 ‘레고레타+레고레타’라는 이름의 건축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Taller Graciela Iturbide


1, 2, 3, 4 일본의 한 해변가에 지은 개인 주택으로 레고레타가 처음으로 아시아에 지은 주거공간이다. 그의 건축에서는 항상 물, 빛, 색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주인공이다. 사무실이건 주택이건 학교건 물에 자리를 내주는 것으로부터 건축 설계를 시작한다. ⓒ이한구



그가 사용하는 강렬한 색상은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 빛을 반사하기 위함이며 내부 공간에 사용한 색상은 공간의 특징을 설명해주는 일종의 기호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이러한 방식으로 멕시코의 지역색을 꾸준히 작품 속에 반영하면서도 이를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보편화했다. 그래서 세계 건축계에서는 그를 ‘보편성을 가진 동시에 지역성을 가진, 현대 건축계에서 보기 드문 건축가’라고 평한다. 지금은 아들 레고레타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아들을 통해 젊은 건축가들과 소통하며 멕시코의 전통 건축을 보편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 전통 건축에도 색채가 많이 사용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안타깝게도 현대에 지은 건축물들은 색감을 많이 배제하고 있다. 여기 제주도에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하고 인간미가 느껴지게 밝고 즐거운 공간을 짓고 있다.”_ 빅토르 레고레타

파란 바다 위에 그린 그림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건축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빛, 색, 물이다.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 화려한 색채를 조화롭게 사용하고, 수영장이건 분수대건 호수이건 바다이건 높은 기온과 건조한 기후 속에 좀 더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줄 물이란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그가 지은 건축물의 상당수는 바닷가에 위치한다. 눈부신 해변의 풍경과 파란 바다는 레고레타 건축의 강렬함을 포용하는 가장 이상적인 조화이다.


5  2003년 스페인 빌바오에 지은 셰라톤 아반도이바라 호텔 Sheraton Abandoibarra Hotel. ⓒJosé Latova
6 2002년 하와이에 지은 개인 주택 코나 하우스 Kona House의 수영장. ⓒLourdes Legorreta


레고레타의 건축은 감성적이다. 시적이고 회화적이다. 그에게 땅(사이트)은 캔버스이다. 땅 위에 간결하지만 힘이 있는 선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바탕에 자연의 색을 칠한다. 그리고 선 안쪽에는 프리다 칼로 Frida Kahlo의 원색적인 회화에서처럼 노랑, 파랑, 보라, 분홍 등의 색을 입힌다. 캔버스 안의 평면이 벽이 되고 바닥이 되고 천장이 되면 공간이 완성된다. 그가 색을 사용하는 데에는 규칙이 있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로비나 홀처럼 연속적이고 넓은 공간에는 노란색을 사용한다. 빛을 차단하고 규모가 한정된 공간이나 한쪽 부분만 개방된 공간에는 분홍색을 사용한다. 수영장처럼 물과 연관이 있는 공간이나 호수,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곳에는 파란색이나 보라색을 사용한다. 그의 건축에서 종종 보게 되는 붉은빛이 감도는 색은 바로 멕시코의 흙색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건축을 마주하면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원색적인 동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시절로 돌아가 레고레타가 연출해놓은 다양한 색감의 비일상적인 공간에 빠져들게 된다. 이처럼 색이 살아 있는 건축을 하게 된 데에는 유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멕시코 구석구석을 여행했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는 멕시코 시골 마을에서 스페인 식민 통치 시절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은 건물을 보았고 농장을 보았고 식민 정권의 상징인 위엄 있는 건축물도 보았다. 그는 ‘건축이 무엇인지는 대학에서 배웠지만, 색채나 건축의 비례와 같은 것은 여행을 하며 멕시코의 도시나 시골 마을에서 배웠다’고 했다.


멕시코 푸에블라 Puebla에 있는 라 푸리피카도라 부티크 호텔 La Purificadora Boutique Hotel. 19세기에
지은 수질 정화 공장을 2007년 레노베이션했다. ⓒUndine Prohl cortesia de La Purificadora hotel en Puebla



1991년 멕시코 칸쿤에 세운 웨스틴 레지나 칸쿤 호텔 Westin Regina Cancun Hotel. 그를 세계적인 건축가로 만들어준 프로젝트이다. ⓒLourdes Legorreta

여백에 물을 들여 지은 집 그의 건축은 여백의 건축이다. 그 여백은 자연을 위해 마련한 빈 터다. 태양과 물이 만들어내는 자연 효과를 담기 위해 마련한 여백. 빛의 음영 대비, 물의 반사와 투영으로 그 여백에는 시시각각 다른 장면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공간에 청량감을 불어넣는다. 제주도에 짓고 있는 카사 델 아구아도 그 좋은 예이다. 카사 델 아구아의 핵심은 물이다. ‘물의 집’을 주제로 바닷가의 경사진 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사진 지형에 층을 내고 평평한 부분에 레지던스를 배치했다. 이는 사이트 가장 위쪽의 호텔로 연결된다. 그 사이에는 수영장과 분수대 등을 배치해 항상 물과 함께할 수 있게 했다. 물은 카사 델 아구아 전체를 감싸 안으며 그의 조각품 같은 건축물에서는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빛이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제주도 카사 델 아구아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해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한국을 찾았다. 방한을 기념해 제주도에서는 그의 건축 강연회를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서로 주목받고 싶어 안달하며 자연을 등한시하는 요즘 건축계의 세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삶이 녹아든 건축’이 진정한 건축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카사 델 아구아를 시작할 때 그는 ‘오름의 곡선, 땅과 바다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지형을 지닌’ 제주도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다른 한편으론 이런 아름다운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이 많지 않음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제주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 모델하우스이기도 한 이곳은 건축, 미술, 음악이 어우러진 문화 공간으로서의 리조트 청사진을 보여준다. ⓒ박우진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설계를 시작할 때 오직 환경(자연)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를 생각한다고 한다. 스스로를 뽐내려 한다거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설계는 하지 않는 것이다. 환경을 생각하다 보면 다른 건축물과의 경쟁도 무의미하다. 그래서일까,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건축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은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건축’이라고 표현한다. 오늘날 현대 건축가들이 시도하는 기술적이고 차가운 건축과는 분명 다른 그만의 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으며 즐거움, 평화로움을 만끽하도록 여유를 심어주는 건축, 그것이 리카르도 레고레타를 세계적인 건축가로 만들어준 것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라틴의 전통문화에 담긴 지역성을 추구하는 건축가로 흰 회벽의 단순한 기하 형태에 화려한 색채가 만들어내는 빛을 통해 신비한 공간 분위기를 창조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빛은 ‘색의 흔적’으로써의 빛이 된다. (중략) 그는 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 색을 사용했으며 그 색은 우리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경험을 다채롭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_ 김주연 홍익대학교 교수의 글‘빛이 빚는 공간시학’ 중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6월호) ⓒdesign.co.kr, 

출처 - 리카르도 레고레타 | 피플&컬처 | 매거진 | 행복이가득한집 (designhouse.co.kr)

 

 

 

 

 

 

 

 

3.  니카라과 마나과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Immaculate Conception Cathedral

 

 

마나과 대성당
 

마리아
대성당 성모 마리아 대성당 Catedral Metropolitana de la Inmaculada Concepción de María

2017 년 종려 주일에 대성당의 주요 외관.
 
마나과 대성당
니카라과의 위치
북위 12.132687°N 86.265853°W
위치 마나과
나라 니카라과
명칭 카톨릭 교회
웹 사이트 마나과 대성당 웹사이트
상태 대성당
설립 1991
설립자 추기경 미겔 오반도 이 브라보 S.D.B.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1993년 9월 4일
역대 감독 Miguel Obando y Bravo S.D.B. (1993-2005년)
활동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유형 대성당
스타일  절충주의로마네스크 양식아랍어
완료  1993년 8월(현 성당)
공사비 USD 4.5 백만
돔의 수  63
니카라과 관구(Ecclesiastical Province of Nicaragua)
대교구 로마 카톨릭 마나과 대교구(Roman Catholic Archdiocese of Managua)
 
 
 

 

새로운 대성당 (La Nueva Catedral)이라고 불리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스페인어 : Catedral Metropolitana de la Inmaculada Concepción de María)은 니카라과 마나과에 있습니다. 그것은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헌정되었습니다.

역사

대성당은 1991 년에 마나과 대성당 또는 성 제임스 대성당 (Catedral de Santiago)을 대체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오래된 대성당은 도시의 90 %를 파괴 한 1972 년 지진 이후 손상되어 복원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대성당은 멕시코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Ricardo Legorreta)가 설계했습니다. 1991년 8월경에 착공하여 1993년 9월 4일에 준공했습니다. 새로 지어진 대성당의 비용은 450만 달러로 추산되었습니다.  새로운 대성당은 특히 건축 양식과 재정에 대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비용은 도미노 피자의 소유주인 미국인 Tom Monaghan의 도움으로 부분적으로 충당되었습니다.  현지인들은 많은 chichas (스페인어 : "가슴"에 대한 속어)를 닮은 장식하는 과다한 큐폴라 때문에 La Chichona 라고 부릅니다.

2020 년 7 월 31 일 화염병으로 시작된 화재로 대성당의 Sangre de Cristo y el Santísimo 이미지가 손상되었습니다. 당시 성당에 있던 두 사람 모두 다치지 않았다. [5]

외부 링크

출처: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4.  새너제이San Jose에 있는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두 작업

 
 
도시설계가 Archur

2017.12.28

 

발음하기도 힘든 '리카르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a'라는 이름이 한때 제주도를 배경으로 회자된 적이 있었다. 2009년 3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를 철거하는 문제로 2012년 말부터 2013년 초까지 시끄러웠기 때문이다레고레타는 2011년 12월 30일 세상을 떴다. 그리고 카사 델 아구아는 2013년 3월 철거됐다카사 델 아구아는 인접한 앵커호텔의 일종의 모델하우스Model house였다(아래 조감도)앵커호텔은 사업이 홀딩 됐다 부영이 인수하면서 설계가 변경됐는데, 그 정도가 워낙 심해서 현재 부영호텔을 레고레타의 작업으로 보지는 않는다.

 

카사 델 아구아가 준공된 뒤 아시아 지역에 지어진 레고레타의 흔하지 않은 작업이라는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다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기대가 없었다캘리포니아California를 몇 차례 여행하면서 그의 몇몇 작업을 봤기 때문이다레고레타의 건축언어는 멕시코의 지역적 색채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철저히 멕시코라는 문화적 테두리 안에 있다구체적으로 멕시코를 포함해 그 인근 중남미인들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텍사스애리조나州 일대다.

 

1931년 5월 7일 멕시코시티Mexico City에서 태어난 레고레타는 1953년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Autonoma de Mexico 건축학과를 졸업했다그리고 '멕시코 근대건축의 아버지'로 알려진 호세 비야그란 가르시아Jose Villagran Garcia(1901.9.22.~1982.6.10., 위 사진 오른쪽) 사무실에서 10년 간 일한 뒤 1963년 자신의 사무소를 차렸다. 32세에 독립이니 빠른 셈이다재미있는 건 레고레타의 건축언어를 얘기할 때 가르시아 보다는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1902.3.9~1988.11.22)이 더 많이 언급된다는 점이다.

 

바라간과 레고레타는 1966년 조각가 마티아스 고에리츠Mathias Goeritz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그리고 바라간이 세상을 뜰 때까지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일반적으로 레고레타가 바라간의 건축철학 -빛과 그림자의 활용원색의 사용엄격한 기하학 매스 등 넓혔다고 본다. 심지어 레고레타는 바라간이 하지 않았던 교육시설상업시설공장을 설계할 때도 바라간의 건축철학을 적용했다이일형(충남산업대 건축공학과 교수)은 "바라간의 업적은 토착적인 것과 모더니즘Modernism의 미학을 결합한 데 있으며레고레타의 업적은 기쁨과 유머로서 혼성적인 것을 주입한 데 있다"라고 평했다 <멕시코의 개조적 현대건축가대한건축학회지 1997.08>.

 

개인적으로 가장 처음 봤던 레고레타의 작업은 바라간과 협업을 했다는 새너제이 어린이 박물관Children's Discovery Museum of San Jose(이하 CDM)이었다. 1990년 6월에 개관했으니 바라간의 마지막 작업에 속할 듯 하다지인의 집 근처에 있었던 이 박물관을 처음 봤을 때는 레고레타의 작업인지 몰랐다기하학적인 매스에 무엇보다 보라색 외관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만 했었다. CDM이 두 사람의 작업이라는 사실은 지역 서점에 있는 지역 건축물을 소개하는 책자에서 알았다책자에는 "A Sculptural composition in geometric forms and subtle colors that are the hallmarks of this noted Mexican architect, who also worked with Luis Barragan."이라고 적혀 있었다.

 

CDM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뮤지엄 서쪽에 회랑이었다(위 사진)아마도 이 회랑은 CDM 서쪽을 지나가는 87번 프리웨이의 번잡함에 대한 대응인 듯 하다그런데 회랑 양쪽에 늘어선 기둥들과 그 가운데 붙어 있는 정육면체의 라이트 박스Light Box가 반복되면서 뭔가 종교시설에서 느껴지는 신성함이 느껴졌다그런데 그런 신성함은 회랑 끝에서 두 번 꺾이면서 유희적으로 바뀐다회랑은 두 번 꺾이면서 트램역Tram Station이 된다그리고 그 초입부에서 매스를 이루고 있던 T자와 ┌┐자 요소로 분리된다(아래사진)두 요소 모두 라이트 박스가 삽입돼 있는 것 외에는 특별한 기능은 없다.

 

 

기능적으로는 트램역에서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접근로다하지만 공간의 성격을 보면 교통시설(트램역)의 기능성이 신성함으로 변하는 것 같아 뭔가 멋쩍다동선이 두 번 꺾이는 지점에는 정사각형으로 뚫린 개구부가 있다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이 개구부를 통해 나무CDM 북쪽에 있는 넓은 녹색 공간새너제이 도심의 건물들이 겹쳐진다(위 사진).

 

회랑 외에도 직각삼각형으로 만들어진 계단, 45도 틀어진 육면체 매스 등에서 레고레타와 바라간의 건축언어를 확인할 수 있다빛과 그림자를 가장 극적으로 이용한 부분은 45도 틀어진 육면체 매스의 연결 지점이다레고레타는 두 매스가 45도로 만나는 모서리 상부에 틈을 두어 빛이 스며나오도록 했다(위 왼쪽 사진)실내에서는 지붕선을 따라 길게 만든 천창과 수직으로 긴 창을 통해 빛을 끌어들였다(위 오른쪽 사진).

 

CDM 개관 후 7년이 지난 1998년에 레고레타는 또 하나의 작업을 새너제이에 했다새너제이 다운타운Downtown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플라자 드 체사르 샤베Plaza de Cesar Chavez 서쪽에 면한 더 테크 뮤지엄 오브 이노베이션The Tech Museum of Innovation(이하 The Tech)이다. CDM과 마찬가지로 건물 외관은 일반적이지 않은 황토색이고 북쪽 모서리에 올려진 돔Dome은 황토색과 보색관계인 파란색이다(위 사진).

 

마켓 스트리트Market Street에 면한 The Tech 동쪽 입면에는 개구부의 프레임Frame이나 발코니Balcony가 돌출되어 음영의 강한 대조가 나타난다(위 사진)무엇보다 The Tech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북서쪽 코너Corner, 'Parkside hall'라는 싸인이 설치된 장면이었다전면 도로Park ave에서 이 장면을 보면 갈색 벽 앞에 살짝 촌스럽게 느껴지는 꽃분홍색 원기둥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아래사진).

 

 

꽃분홍색 원기둥 외 The Tech 내부에 있는 또 다른 원기둥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입장권을 끊고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황금색 원기둥이다(위 사진)이 원기둥은 관람동선이 시작되는 아트리움Atrium 계단 가운데에 세워져 있다그런데 기둥의 끝이 천장까지 닿아 있지 않기 때문에 구조적인 역할은 하지 않는다앞서 CDM에서 T자와 ┌┐자로 분리된 두 요소 같다레고레타가 직접 언급한 텍스트를 찾지는 못했지만 The Tech에서 원기둥은 시각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개인적으로는 원기둥을 중심으로 한 두 장면을 보면서 이탈리아의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그림이 떠올랐다(아래 이미지).

 

도쿄대학 건축학과 안도 다다오Ando Tadao연구실에서 쓴 건축가들의 20눌와에는 레고레타가 만든 공간에 대해 "수천년 이어 온 멕시코 문화를 확실히 읽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하지만 레고레타는 "전통적토착적인 것을 직접적으로 모방하지 않았으며그의 공간은 추상에 의해 지배된다고 해도 좋을 정도"라고 한다또한 "근대건축이 가진 추상미학에 강하게 끌리면서도 그것이 지향했던 이상에는 전혀 공감하지 않았기때문에 근대건축의 도그마Dogma로부터도 자유롭다고 했다그러면서 레고레타의 "건축에 존재하는 것은 토착문화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이상화하려는 의지"라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 아들 빅터 레고레타Victor Legorreta가 레고레타의 사무실에 합류했다그리고 2000년 사무실의 이름을 'Legorreta+Legorreta'로 바꿨다빅터가 사무실에 합류하면서 작업은 더 젊어졌다다르게 표현하면 매스나 각 건축 부재에 대한 유희적 조작이 더 심해졌고 멕시코 문화는 희미해졌다. 위 사진은 2005년 준공된 샌프란시스코 미션베이Mission Bay에 있는 UCSF 커뮤니티 센터UCSF Community Center프로젝트 대상지도 더 넓어졌다카사 델 아구아와 앵커호텔의 초기 디자인은 이 과정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다흥미로운 건 그들의 작업이 아시아에서는 카타르Qatar 도하Doha유럽에서는 스페인Spain에 편중돼 있다는 사실이다두 국가 모두 멕시코와 문화적으로 연결돼 있거나 풍토적으로 유사하다설립 50주년이 되는 2013년에 사무실 이름을 'LEGORRETA'로 바꿨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출처 - 에이플래폼, 건축의 시작 (a-platform.co.kr)

 

 

 

 

 

 

 

 

 

5.  [건축가의 발자취를 느끼다35]  리카르도 레고레타

      
 

 

 
그는 제주에 `혼`을 남겼지만...우리는 그의 `마지막 유작`을 지워버렸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축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서울 도심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청사, 전시회의 임시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명장들의 작품이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작품을 남긴 사람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유일할 것 같다. 2009년 3월 2층 규모로 제주도에 지어진 ‘카사 델 아구아’는 2011년 숨진 멕시코 출신의 건축가 레고레타가 지구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었다. 레고레타는 생전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제주 초가에 반해 제주를 사랑하게 됐다고 여러 차례 말하곤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제주를 위해 부영호텔과 같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반면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 건축물은 논란 끝에 2013년 3월 철거됐다. 건축학적으로 가치를 지니는 문화유산을 보전해야 한다는 논리와, 원래 모델하우스라는 임시 건축물로 지어진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 사이에서 후자가 이긴 결과였다. 원래 카사 델 아구아는 앵커호텔의 모델하우스였다. 극도로 조형을 단순화하는 미니멀적 디자인과 중남미풍의 강렬한 색감,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분위기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하우스’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내부가 공개된 레고레타의 건축물이기도 했다. 일본에 있는 나머지 작품은 개인 주택으로 내부가 공개되지 않는다. 이 건축물은 2010년 아메리카 프로퍼티상에서 ‘최고의 호텔 건축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레고레타는 제주를 사랑했던 가장 유명한 멕시칸으로 기록된다.

미국, 일본, 유럽 중심의 건축 시장에서 레고레타는 멕시코라는 완벽한 변방 출신이었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 60개가 넘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을 지냈고 전미건축가협회 금메달, 국가건축가연맹상 등을 수상했다.

     
멕시코시티`카미노 레알 폴란코 호텔`

특히 멕시코의 세계적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페드로 코로넬 등과 소통하며 회화와 조각을 건축공간의 일부이자 생활을 한 부분으로 녹아들게 했다. 그 결과 얻은 또 다른 별명이 ‘영혼을 다루는 건축가’이다.

건축가 이관용은 <가장 인간적인 건축 레고레타>라는 책에서 “많은 이들이 건축에서 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멋을 요구할 때, 레고레타는 전통의 기반 위에서 자연 친화적이고 감성적인 건축을 추구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그의 작품에는 강렬한 색감, 단순 명료한 형태, 우아한 비례감, 빛과 그림자로 빚어낸 신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레고레타를 수식하는 ‘가장 인간적인 건축’이라는 표현도 이런

그의 건축 철학에서 비롯됐다.

     
제주 `카사델 이구아`

레고레타의 대표작으로는 단연 니카라과 마나구아의 ‘마나구아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꼽힌다. 이 성당은 1972년 지진으로 파괴됐다. 성당 재건을 위해 미국인 억만장자 독지가들이 나섰고, 그들은 레고레타를 선택했다. 다른 초대형 성당과 달리 레고레타는 군더더기 없는 기본적인 가톨릭 성전을 만들었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가톨릭 성전의 화려한 전통에 대한 반발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역 고유의 풍토적인 환경과 조화를 잘 이뤄내기 위해 종탑과 갈라진 블록의 입구를 만드는 주 건물은 수직과 수평의 사각으로만 이뤄졌다. 바깥쪽에 나 있는 수십개의 구멍은 분홍빛으로 장식된 실내 벽면을 타고 내부로 빛을 비춘다. 햇빛이 들어오면 성당 내부는 성스럽고 신비한 장면이 연출된다.

레고레타의 다른 대표작으로는 멕시코시티 카미노 레알 호텔(1968), 미국 로스앤젤레스 퍼싱 스퀘어(1993), 영국 런던 패션섬유박물관(2001), 스페인 빌바오 셰러턴 아반도이바라 호텔 등이 있다.

제주 앵커호텔 이외에도 레고레타와 한국의 인연은 이어져 있다. 한국의 대표적 현대건축가인 배병길 한국건축가협회 회장(배병길 도시건축연구소 대표)이 레고레토의 제자다.

박건형(칼럼니스트)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안윤수 기자

ays77@cnews.co.kr

 

출처 - [건축가의 발자취를 느끼다35] 리카르도 레고레타 - 대한경제 (dnews.co.kr)

 

 

 

 

 

 

 

 

 

6.  라틴의 영혼, 제주와 만나다

 

2009-07-28

 

 


중문 관광단지 내에 제주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다. 에스파냐어로 ‘물의 집’이라는 뜻의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의 앵커 호텔(Anchor Hotel)이자 레저와 휴양, 다양한 문화 예술을 누릴 수 있는 최고급 리조트를 표방한다. 그리고 내년 5월 완공에 앞서 지난 3월, 카사 델 아구아의 건축가와 멕시코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이 1년 여 기간 동안 43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지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제주’가 먼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느 모델 하우스와는 사뭇 격이 다른 이곳은, 흥미로운 전시 행사가 열리는 갤러리 기능을 담당하며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만의 독보적인 건축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는데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자료제공 | 수류산방


제주 바다에 따뜻하게 눕다

자유로운 라틴의 영혼, 리카르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a).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멕시코 예술가들의 전통을 이으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세계적 건축가다. 자연에 대한 경의와 깊은 묵상을 통해 철학적 건축 언어를 길어 올리는 그는, 빛과 바람, 물과 흙 등의 외부 환경을 건물 내부로 절묘하게 이끌어내는 기법으로 가장 유명하다. 나무와 흙에서 영감을 얻은 색으로 건물 벽을 채색하고, 물은 어미의 양수처럼 공간을 흐르거나 감싸며, 열린 천창으로부터 빛이 태양처럼 정수리로 낙하하는 곳…. 레고레타에게 있어서 자연은 지붕과 벽과 같이 공간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건축 요소다.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일반에 공개되는 그의 작품 ‘카사 델 아구아’ 역시, 먼저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영감과 모티브를 얻으며 시작됐다(일례로 레고레타가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곳이 ‘돌 박물관’이었다고 한다). 탐라도의 돌과 흙, 물과 바람 등 자연 환경과 당산목과 본향당 등 토착 문화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물의 집 ‘카사 델 아구아’의 윤곽을 잡아갔다.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 화산석을 건축 자재로 활용하는 등 구체적인 대입은 물론이고, 계단 형태로 되어 있는 녹차 밭과 오름에서 착안해 경사를 따라 마치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거대한 조각품 같은 매스를 구상하는 등 포괄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는 자연과 예술에 내재한 근본적인 요소에서, 시대와 유행을 벗어난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레고레타의 건축 기법이 미국과 중동, 유럽, 일본 등에 이어 제주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빛의 연금술사, 레고레타

특히 빛의 연금술사처럼 레고레타가 빚어내는 태양광의 운용은, 자연에 내재한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그의 건축 공간에 또렷이 이식되는 대표적인 예다. 건물의 열린 틈으로 스며드는 빛이 태양의 위치와 구름의 정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반응하며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표정은, ‘한편의 시’라고 비유되는 레고레타의 고유한 건축적 시그니처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제주’에서도 회랑과 복도, 테라스 등에 마치 가위로 오려낸 종이처럼 빛과 그림자가 ‘재단’되어 드리워지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높은 격자 구조의 천장을 거치는 빛은 건물 내 외부에 무늬를 만들며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한 조각 빛으로 말미암은 자연의 질서와 우주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깨우침은, “공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 공간이 사람들의 정신을 불러 세우지 못한다면 이는 건축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던 거장의 사려 깊은 고민과 배려로 이뤄지는 것일 테다.


물론 이 광경은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앉아서 태양의 운행을 목도한 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변화이며, 깨달음 역시 공간과 정서적인 교감을 일으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이기도 하다. 즉 레고레타의 건축물은 외부 환경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공간에 머무는 인간의 시선을 바깥 자연으로 향하도록 조율하고 있는 건 아닐까.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제주’의 마치 액자처럼 하얀 외벽에 뚫려 있는 네모난 창은 인간의 시선이 닿았을 때 그림처럼 풍경을 담아낼 수 있고, 고요하게 물이 흐르는 수 공간도 멀리 제주 앞바다와 시야가 이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파도처럼 넘실거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해 레고레타와 소통해 온 오영근 교수(호서대 실내디자인학과, 한국실내디자인학회 회장)는 “일반적인 건축 요소가 물리적인 데 반해 레고레타의 건축에는 ‘감성’이 있다. 그것은 문화에 뿌리를 둔 것이며, 공간을 통해 실제로 경험하는 하나의 시이다. …그의 건축은 공간에 빛을 끌어들이는 요소를 더하고 장식을 최소화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사유와 함께 감성의 울림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두 번째 집을 찾아서

이렇듯 자연을 통한 사유와 감성을 고요하게 담아내는 카사 델 아구아는, 도시인의 ‘두 번째 집’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 속 수많은 예술가들과 명사들이 예술의 영감과 삶의 성찰을 얻고자 대자연 속에 마련했던 ‘또 하나의 집’과 닮아 있으며, 오늘날에도 선진국에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른바 ‘세컨드 하우스’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까 숱한 관광객 사이에 섞어 잠시 머물다 떠나는 호화 휴양지가 아니라, 카사 델 아구아는 도심에 지친 영혼이 머무는 소박한 곳, 인간의 ‘마음’을 기대일 곳을 기대하며 주상절리 바닷가 위에 세워질 것이다. 1952년 모더니즘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도시의 명성을 뒤로하고 남프랑스에 아내를 위한 지었던 집, 바닷가 마지막 집의 모습이 이처럼 따뜻했을까.

 

 

이성희 

출처 - 라틴의 영혼, 제주와 만나다 (jungle.co.kr)

 

 

 

 

 

 

 

 

7.  세계적 건축가 유작 '카사델아구아' 결국 철거

송고시간2013-03-06 11:09

 
 

서귀포시 '불법 건축물' 행정대집행 강행

 

파괴되는 '카사 델 아구아'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6일 오전 세계적인 건축 거장 멕시코의 리카르도 레고레타 작품인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지어진 '카사 델 아구아'가 철거되고 있다. 2013.3.6.
khc@yna.co.kr

 

(서귀포=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인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이하 카사 델 아구아)'가 결국 철거됐다.

서귀포시는 6일 오전 행정대집행 영장을 통보한 뒤 공무원 60여명과 굴착기 1대, 운송차량 등을 투입, 카사 델 아구아에 있던 비품과 가구, 내부 1층에 전시돼 있던 '최일, 레고레타 그를 만나다' 조각전 작품 등을 건물 밖으로 옮기며 곧바로 철거에 돌입했다.

영장에는 '2011년 10월 11일 위법 가설 건축물을 2011년 11월 18일까지 자진 철거 및 원상복구토록 했으나 지정된 기한까지 이행하지 않아 서귀포시에서 부득이 행정대집행을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래픽> 서귀포시 카사델아구아 철거


(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 서귀포시는 6일 오전 행정대집행 영장을 통보한 뒤 공무원 60여명과 굴착기 1대, 운송차량 등을 투입,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철거에 돌입했다.
jin34@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내부 비품과 작품 등은 소유주에게 한달 안에 찾아가도록 통보했으며 찾아가지 않을 경우 폐기처분할 계획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서귀포시 오희범 도시건축과장은 철거 과정에 대해 "일단 포크레인으로 외벽을 걷어낸 뒤 내부 철골 빔을 용접으로 절단해 분해해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철거하는데 15∼20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카사 델 아구아 철거를 반대하며 기자회견과 문화제 등을 열어온 제주도의회 이선화, 김용범 의원 등도 철거 소식을 듣고 이날 현장을 찾아왔다.

이 의원은 "제주도를 사랑한 세계적 예술가가 제주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이런 작품을 지었는데 '세계가 찾는 제주'를 슬로건으로 내건 제주도정이 이를 철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울먹였다.

철거 전 카사 델 아구아(자료사진)

 

그는 "전국에서, 세계에서 카사 델 아구아를 지켜달라며 찾아오고 있는데 이렇게 사랑받는 건물을 허물어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며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은 시대정신 없는 제주도정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라고 통탄했다.

카사 델 아구아 입구의 나무에는 방문객들이 '아름다운 카사 델 아구아를 지켜주세요', '카사 델 아구아 영원한 희망으로 남기를' 등의 글을 적어 묶어놓은 노란 리본들이 여전히 달려있다.

건물 관리를 맡고 있는 김성복씨는 "전국 각지는 물론 외국 건축학과 대학생들과 건축계 관계자들도 계속해서 이곳을 찾고 있고 이번주 금요일에도 오겠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결국 오늘 철거가 이뤄져 오지 말라고 다시 전화를 넣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아름다운 이 건물을 철거하지 말아 달라며 수많은 방문객이 이곳에 철거 반대 서명을 하고 갔다"면서 전국, 전세계 건축계가 이 건물이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도는 설계도 원본을 토대로 다른 곳에 원형 그대로 건물을 복원해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원 건축주인 JID가 카사 델 아구아 설계도 소유권을 놓고 앵커호텔 건축주인 부영주택㈜과 법률 다툼을 벌이고 있어 이전 복원이 어떻게 될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는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란 뜻이다. 2009년 3월 전체면적 1천279㎡, 2층 규모의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 앵커호텔 모델하우스로 지어졌다. 건물 1층은 사무실 겸 갤러리, 2층은 모델하우스 용도로 마련됐다.

부서지는 '카사 델 아구아'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6일 오전 세계적인 건축 거장 멕시코의 리카르도 레고레타 작품인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지어진 '카사 델 아구아'가 철거되고 있다. 2013.3.6.
khc@yna.co.kr

 

건축거장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의 유작으로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가설건축물로 지어져 존치 기한이 만료되며 행정 당국이 철거에 나섰다.

행정 당국은 카사 델 아구아를 그대로 둘 경우 이번 일이 선례가 돼 앞으로 변칙적, 편법적 건축물에 대해 단속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유를 들어 철거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건축계와 문화예술계 등은 세계적 건축가의 유작을 단순히 불법건축물로 여기고 철거하는 것은 문화유산의 파괴행위라며 존치를 촉구해 논란이 계속돼왔다.

카사 델 아구아는 레고레타의 유작일 뿐 아니라 아시아에선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내부까지 공개된 작품이라 건축계에서 부여하는 가치는 상당하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세계 곳곳에 60여개의 예술적 건물을 설계해 전미건축가협회 금메달, 국제건축가연맹상 등을 받았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을 10년 넘게 맡은 건축가다.

atoz@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13/03/06 11:09 송고

출처 - 세계적 건축가 유작 '카사델아구아' 결국 철거 | 연합뉴스 (yna.co.kr)

 

 

 

 

 

 

 

 

 

8.  기억속으로 사라진 제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The Gallary Casa Del Agua>

2013. 3. 22. 11:08

[사진] '13년 3월 6일. 마침내 철거되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The Gallary Casa Del Agua). / 인용 뉴시스

 

 제주 중문단지에 위치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이하, 카사 델 아구아)가 논란끝에 지난 3월6일 철거되었다. 나는 지난 2월말 가족과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다. 그리고 아내의 동의를 얻어 홀로 이곳 카사 델 아구아를 방문했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날로 부터 열흘 뒤 건물은 철거되었다. 이 기록은 카사 델 아구아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

 

[사진] '카사 델 아구아'의 실내. 시간과 태양의 위치에 따라 실내로 들어어는 빛의 색은 변화한다.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는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란 뜻이다. 2009년 3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이하, ICC JEJU)의 앵커호텔 모델 하우스로 지어졌다. 건물 1층은 사무실 겸 갤러리, 2층은 모델하우스 용도로 마련됐다. 설계자는 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이다. 건물은 중문단지 ICC 제주 뒷편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건물을 다녀갔다. 레고레타의 유작을 보기위해 제주를 찾는 외국인들도 많다고 한다.

 

[사진] '카사 델 아구아'의 입구. 건물은 제주도의 돌과 질감, 색을 활용해 지어졌다.

 

 건물 주변에는 이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철거하지 말고 지켜달라는 방문객들의 서명이 적힌 노란 리본들이 곳곳에 걸려있다. 내가 찾아간 날, 건물 관리인께서는 '얼마전 일본 건축가회장 일행도 다녀갔는데, 이렇게 잘 지어진 건물을 왜 철거하려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멕시코 대사관에서도 레고레타의 유작을 철거하지 말고 보존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건물은 곧 철거될 운명에 처해있었다.

 

[사진] 건물 한켠에 걸려있던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사진. 자신의 유작이 철거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리카르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A)는 1931년 5월 7일 태어난 멕시코 출신 건축가이다.  세계건축가연맹 금상 수상자(1999년)이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을 지냈다. 레고레타는 카사 델 아구아로 아메리칸 프로퍼티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감성이 없는 건축은 건축이 아니다. 공간은 물론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겠으나, 만일 그것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미 그것은 건축이라 말 할 수 없다"라는 말로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표현했다.  레고레타는 2011년 12월 30일 사망한다. 결국, 2009년 지어진 카사 델 아구아는 레고레타의 유작이 되었다. 아시아에 존재하는 레고레타의 작품은 단 2점 뿐이며, 대중들이 들어가볼 수 있는 건물은 '카사 델 아구아'가 유일하다. 그리고 이 역사적 건축물은 허무하게도 철거되고 만다. 땅속에 묻힌 레고레타는 과연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하다.

 

[사진]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압류딱지. 법원 판결에 따라 이 건물은 결국 철거될 운명이다.

 

 '카사 델 아구아'는 ICC 제주의 앵커호텔의 모델하우스 겸 사무실로 설계된 건물이다. 그럼에도 이 건물은 영속적인 쓰임을 고려해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법률적으로 가건물이므로 그 역할이 완료되면 철거될 수도 있다. 법률적으로는 이견이 없다. 처음 ICC제주 앵커호텔의 사업자였던 JID는 수익성의 문제로 사업권과 토지등을 (주)부영에게 매각한다. 이에 따라 건물이 지어진 대지는 부영의 소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 건물 - 더 갤래리 카사 델 아구아 -의 소유권은 매각되지 않았다. 왜냐면 이 건물은 법률적으로 시효가 만료된 가건물(모델하우스)였기 때문이다.

 

 사업자인 (주)부영은 이 건물이 대지를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고, 호텔의 조망권을 가리기 때문에 철거를 요구한다. 제주특별 자치도는 법률적 근거를 들어 불법 건축물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건축계와 문화예술계에서는 세계적 건축가의 유작인 이 건물을 보전하여 제주의 문화유산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물의 원 소유주 JID는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전제로 제주도에 이 건물의 설계도면/소유권을 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건물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2013년 3월 6일 철거되고 만다. 제주도는 적절한 시점에 건물을 이전(재건축)하겠다고 말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아울러 원래 자기의 땅을 떠난 건축물이 어떤 생명력을 가지게 될 지도 의문이다. 법률적 근거로만 따지자면, 이건물의 철거는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카사 델 아구아'가 가진 건물의 미적 아름다움이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존치시켜 제주의 대표적 문화재로 자리잡을수도 있었다. 기업의 이익과 행정당국의 경직된 판단으로, 제주도는 세계적인 문화유산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사진] 카사 델 아구아. 바다를 향해 탁 트인 시야를 가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편협한 시각을 다시한번 느낀다. 경제적인 입장에서 생각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레고레타의 유작인 이 건물을 보존하고, 미술관으로 활용한다면 제주도는 철거하는 것 보다 몇십배의 이익을 거둘 것이다. 결국 건물은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철거되고 만다. 철거를 위한 법률적 판단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재의 가치를 이해하고 보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실 나는 이 건물이 정말로 철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설령 논란이 계속되더라도 이만한 가치의 문화유산을 법적인 잣대로만 판단하여 철거할 만큰 우리 사회가 무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이곳을 다녀온지 불과 열흘만에 포크레인과 중장비로 허물어지는 '카사 델 아구아'를 신문에서 보았다. 제주도는 문화유산 하나를 잃은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억는 노력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이 사건이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사진] 복도에 비치는 햇살. 해의 높이와 빛의 세기에 따라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색은 다양하게 변화한다.

 

출처 -  기억속으로 사라진 제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The Gallary Casa Del Agua>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