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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충 남

예산 추사고택 - 3 (2024. 04. )

 

 

 

 

 

 

 

 

예산 추사고택

 

 

만해 한용운과 김좌진, 윤봉길을 비롯해

무수한 애국지사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 예산.

이곳에 추사 김정희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유적지가 있다.

 

신례원에서 당진으로 가다보면 사과향기 가득한 들판 사이로

추사고택秋史故宅 이정표가 나온다.

신암면 용궁리에 소재한 김정희 선생 유적지는,

추사고택을 중심으로 문화유적이 산재한 일대를 말하며

추사 집안의 묘역까지 포함된다.

 

고택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화순옹주와 부군인 월성위 김한신의 합장묘가 있고

그 옆으로는 정조대왕이 내린 화순옹주열녀정문和順翁主烈女旌門이 있다.

좀더 위로 올라가면 천연기념물인 예산의 백송白松

추사의 고조부 김흥경의 묘가 있다.

 

좌측으로는 추사의 묘가 있고

뒤편으로는 추사의 수도장이었던 화암사라는 사찰이 있다.

이곳에는 추사 선생이 쓴 <무량수각無量壽閣> 등의 편액이 있으며

오석산 암벽에는 친필을 새긴 석각石刻등이 있어,

추사고택 일대에는 사상가요, 정치가이며 예술가였던

선생의 자취로 가득 차 있다.

 

 

 

 

 

 

 

 

 

 

 

 

 

 

 

 

 

 

 

 

 

스승으로부터 해동海東 제일의 문장이라는 찬사를 받은 선생은

예술가에 그치지 않고 신지식의 선구자로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체득하여

신문화전개에 앞장선 실학의 선각자였다.

경학, 금석학, 문자학, 사학, 지리학, 천문학 등에 이르기까지 해박하였고,

서도로는 추사체라는 독자일문獨者一門을 열어

서예사상 최고의 경지를 이룩하였고,

묵란도, 묵죽도와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 등의

작품들을 남겼다.

 

정치적으로는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말년에 당쟁에 휘말려 제주도와 함경도에서 10여 년간의

유배생활 등의 시련을 겪었고,

71세를 일기로 경기도 과천에서 작고하였다.

 

추사고택은 원래 서울에 있던 집을

추사의 증조부 월성위 김한신 공이 뜯어다가 예당평야가 펼쳐지는

예산 용궁리에 53칸의 규모로 건립했다.

그러나 이후 쇠락하여 원형을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훼손이 심각했는데

정부에서 매입하여 행랑채 19칸을 제외한 34칸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월성위 선생은 영조 임금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임금의 사위가 되어 서울과 예산을 오가며 가문의 중흥을

이루었던 분이다.

 



 

 

 

 

 

 

 

 

 

 

 

 

 

사랑채

 

 

 

 

 

 

 

 

 

 

 

 

 

사 당

 

 

 

 

 

 

 

 

 

 

 

 

집의 전체 구성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와 사당채로 이루어져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자 평면의 사랑채가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후면에 ''자 모양의 안채가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당은 안채 후면에 축대를 높이 쌓아 앉혔는데

사랑채와 안채의 축선을 벗어난 북편에 치우쳐 있다.

 

사랑채는 ''자형 평면으로

대청과 사랑방 2칸이 이어지고 안채쪽으로 꺾인 부분에

두칸 마루방과 온돌 1칸이 연접되어 있다.

사랑채의 댓돌 앞에는 석년石年이라 각자된 석주가 있다.

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추사가 직접

제작하였다고 한다.

사랑채 전면에는 낮은 석단을 두른 화계를 만들어 두고,

기둥마다 걸린 주련이 한데 어울려 당시의 고풍스런

정취를 자아낸다.

사랑채 후면에 있는 안채는 낮은 단차로 분리되어 있는데

사랑마당과 안마당 사이에는 담을 두지않아 매우 넓은 마당으로 보여지나,

처음에는 이 두마당 사이에 담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안채는 서편 중앙에 동향해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넓은 6칸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날개채를 연결하였다.

트인곳이 없이 완벽한 ''자 집이다.

안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과 건너방은 기단을 높이고,

양 날개채와 광채는 단을 낮추어 높낮이가 확연하게

구분되고 있다.

 

추사고택의 안채공간은

호서지방 반가에서 흔치않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안마당을 트인 부분 없이 ''자로 만들었는데 크기를 작게 하고,

안대청을 높게 만든 것이다.

안채의 이러한 공간구조는 영남지방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

호서지방 반가에서는 대개 안마당을 조금 크게 하고,

안대청 부분의 기단을 그리 높지 않게 만든다.

특히 안마당은 건물로 완벽하게 감싸지 않고

어딘가 틔어 두는 튼''자형 구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이응묵, 추사고택 건축사1986 2월호)

 

 

 

 

 

 

 

 

 

 

안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