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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갤러리 ■/자 연

창녕 우포늪의 아침 - 11 (2024.01.14.)

 

 

 

 

 

 

 

 

 

 

우포, 가난한 생명들의 별유천지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창녕은 경상남도에서 경작지가 가장 넓다는 곳.

그런 고을에서 굳이 상습침수지로 들어오게 된 사람들의 사연은

더 말해 무엇할까.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늪에 나가 붕어 가물치 잉어를 잡고,

논우렁이 대칭이 말조개를 캐어, 식구를 먹이고 아이들을 키웠다.

 

해는 사초군락을 넘어 옥천리 뒷산으로 기울고,

하늘과 구름과 갈꽃과 늪은 노을에 젖어든다.

다시 14천만년 전 별들이 하늘에 뜨고 우포늪에 잠긴다.

그곳에 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무엇이든 시가 되나 보다.

공연히 가난한 이들의 별유천지라 할까.

 

늪은 푸르고, 들은 황금빛이었다.

이미 추수를 끝낸 논에선 농민들이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양파 모종을 심고 있었고,

하늘이 잠긴 호수에선 텃새와 철새가 들며 나며 노닐고 있었다.

어느새 계절은 신록에서 녹음으로, 녹음에서 갈빛으로 저물었다.

늪가엔 생이가래 퇴적한 나이테가 하나 더 늘었고,

우포늪 사람들의 삶도 주름살만큼 깊어졌다.

어느덧 하루도 저물었다.

 

동쪽 화왕산 암릉이 여명으로 물들면

우포늪은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전날 따가운 햇살에 데워진 물이 밤새 차가워진 공기와 만나

물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향불이 피워올리는 향연처럼 한 올 두 올 춤추듯 오르다,

차가운 상층부 공기와 만나면 서로 엉기고 섞여 안개구름이 되는 것이다.

 

안개는 늪 주변 계곡 마을들을 하나둘 삼키고

해 뜰 무렵이면 산봉우리만 섬처럼 남고 우포늪 일대를 운해로 만든다.

그 속에서 늙은 왕버들 무성한 가지 뒤척이고, 쪽배가 미끄러져 가면

우포늪은 별유천지다.

 

 

 

 

 

 

 

 

 

 

 

 

 

 

 

 

 

 

 

 

 

 

 

 

토평천이 흘러드는 상부는 넓게 트였고, 

하구는 호리병 목처럼 좁다. 

그 목에 토사가 쌓이면서 천과 천 주변은 늪이 됐다. 

장마철 범람하던 낙동강 물은 토평천으로 역류하면서 계곡 구석구석을 침수시켜

늪으로 만들었다. 

 

우포늪의 네 벌(소벌, 나무벌, 모래벌, 쪽지벌)은 그렇게 조성됐다. 

가장 큰 늪은 우항산이 소처럼 목을 길게 늘이고 물을 마신다고 하여

소벌이란 이름을 얻었다.

 큰물이 나면 떠내려온 나무들이 무더기로 쌓인다고 나무벌, 

모래가 많고 가시연꽃이 군락을 이룬다고 모래벌, 

하구에 혹처럼 붙었다 하여 쪽지벌이다. 

그러나 물안개는 늪과 늪, 호수와 산, 산과 마을의 경계를

없애버린다.

 

그러나 물안개보다 먼저 늪을 깨우는 건 소목마을 어부들이다. 

우항산 소의 목(소목)에 터를 잡았으니 부쳐 먹을 땅이 어디 있을까.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늪에 나가 붕어 가물치 잉어를 잡고, 

논우렁이 대칭이 말조개를 캐어, 식구를 먹이고 아이들을 키웠다. 

우포늪 어부는 11.

1998년 우포늪이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고, 

이듬해 늪과 주변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등록된 어부만

어획을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9명이 소목마을 주민이다. 

이들이 쪽배에 올라 늪으로 나가는 건 물안개도 오르기 전.

 

 

음력 103일이면 마을 고사(낙망고사)를 지냈다. 

마을 어부들이 일제히 고기잡이에 나서는 것을 알리는 행사다. 

낮은 걸그물, 깊은 걸그물을 놓거나 삼각망을 쳐 놓거나, 

수온이 낮아지고 물고기 활동이 둔해지면, 위아래가 트인 고깔 형태의 가래로

물고기를 잡았다. 

한겨울엔 늪 가장자리에 어른 키 깊이의 구덩이(오대)를 파, 

그곳으로 몰려든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

 최고의 살림밑천이었다던 고디(고둥)며 대칭이, 말조개 캐는 것은

이 궁벽한 곳으로 시집온 며느리들 몫이었다.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에 보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바가지로 퍼 묵을 만큼 흔했던 게 고디였다.

 

어부가 집으로 돌아갈 때쯤

새들이 비로소 푸드득 몸을 털고 끼룩끼룩 목도 푼다. 

그제야 우포늪은 하루를 시작한다. 

백로와 오리들이 나무벌에서 소벌로, 소벌에서 모래벌로 떼 지어 날고, 

왜가리 해오라기가 고독하게 사냥 포인트를 찾아 나서고, 

논병아리 가족도 물질을 시작한다. 

참새 딱새 꿩 멧비둘기 등 산새들도 먹이사냥에 분주하다. 

그즈음 농부는 양파, 마늘 밭으로 나가고, 탐방객들은 제방으로 간다. 

출사객은 사지포, 주매, 목포 제방에서 물안개를 담고, 

쪽지벌 제방에서 일출을 담는다.

 

 

 

 

 

 

 

 

 

 

 

 

 

 

 

 

 

 

 

 

창녕은 경상남도에서 경작지가 가장 넓다는 곳. 

그런 고을에서 굳이 상습침수지로 들어오게 된 사람들의 사연은

더 말해 무엇할까. 

토평천이 쪽지벌을 지나 낙동강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의 세진마을, 

쪽지벌 뒤쪽의 잠어실마을, 나무벌 주변의 노동마을과 장재마을, 

소벌 북쪽의 주매마을, 모래벌 뒤 사지마을과 신당마을 등 모두 열네 마을이

들어선 사연은 저마다 다르다.

 다만 전답은 비좁고 연중행사로 침수돼도, 

범람으로 떠밀려온 기름진 퇴적물 덕에 농지는 비옥했고, 

늪은 어패류로 차고 넘쳤다. 가난한 이들에겐 낙토였다.

 

한낮의 우포늪은 정적 속에 빠져든다. 

생이가래 개구리밥 가시연, 노랑어리연, 매화마름 등이

늪의 태반을 덮어 스펀지처럼 세상의 소리를 빨아들인다. 

해오라기 왜가리가 꼼짝 않고 물속을 응시하는 모양이 영락없이

선방에서 면벽수도 하는 수좌다. 

정신없이 분주한 건 농민뿐.

 

낙동강 제방이 높아지기 전까지만 해도 세진마을 역시

주변이 늪이었다(팔락늪). 

큰비만 오면 주변의 들과 계곡은 물에 잠겼다. 

조선의 성리학자 한강 정구는 산허리에 팔락정을 짓고,

 모래밭에 날아드는 기러기(平沙落雁), 팔락늪의 홍련(伏池紅蓮) 등 여덟 가지 기쁨을 즐겼다.

 그중에 역수십리(逆水十里)란 게 있다. 

범람하는 낙동강 물이 토평천을 따라 십리나 역류하는 걸

묘사한 말이다.

 

청백리라지만 한강도 심간 편한 양반네였다. 

세진 둔터 다부터 등 계곡에 자리잡은 세진의 세 마을은 범람했다 하면

대청 아래 섬돌까지 잠겼다. 

주민들은 생필품만 챙겨 들고 산 위로 피해야 했다.

해마다 물 담은(침수하는) 여기서 어찌 사노/ 시집온 첫해부터 뒷동산으로 물 피난 갔었네/ 

서 말 무쇠솥을 물에 띄워 뒷산으로 물 피난 갔네.” 

세진마을 며느리들의 한탄이었다.

너무 힘이 들 때면/ 나는 보따리를 싸놓고 살았다네/ 

언제든 나가려고/  고추 말리는 연탄 방에 일부러/ 들어가 앉아 있기도 했지.” 

세진살이는 그렇게 고달팠다.

 

 

 

 

 

 

 

 

 

 

 

 

 

 

 

 

시집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시거리 물구디에서 자라/ 세진 물구디로 딸 시집보낸/ 

속상한 친정엄마만 생각하면 시거리댁은 아직도 눈물이 난다. 

드묵댁이 기억하는 세진마을은

 미거지(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 담는 곳(물에 잠기는 곳)”으로

 귀신이 들어올 때 춤추고 왔다가, 물 때문에 울면서 나간다는 곳이었다.

 

옥천댁이 옥천리에서 둔터로 시집올 때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사초군락지의 추억은 눈물겹다. 

좌우로 갈대와 억새 밭이 아득히 펼쳐지는 그곳을 건너던 새색시는

눈부신 갈꽃 억새꽃이 얼마나 서럽던지,

 한 걸음 떼고 눈물 훔치고, 또 한 걸음 떼고 흐느꼈다. 

옥천댁은 둔터로 시집온 뒤 한 번도 사초군락 건너 친정에 가지도 못하고

세진마을에서 눈을 감았다.

 

곳곳에 제방이 생기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지천이던 고둥, 대칭이 등 살림 밑천은 사라졌다. 

철새만 손님처럼 찾아들던 그곳에 요즘엔 탐방객들이 사시사철 범람한다. 

세진, 신당, 주매, 장재 마을 주민들은

쪽배 타기, 고기잡이, 짚풀공예, 양파 수확, 우포늪 생태관찰 등

생태체험관광으로 손님들을 맞는다.

 

해는 사초군락을 넘어 옥천리 뒷산으로 기울고, 

하늘과 구름과 갈꽃과 늪은 노을에 젖어든다. 

대대제방 위로는 귀가하는 농부들의 그림자가 길다. 

생이가래 등이 첩첩이 퇴적한 곳으로 백로들이 날아들고, 

쇠오리 청둥오리 큰기러기들이 떼지어 비상한다. 

소목마을 어부의 쪽배가 놀 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다시 14천만년 전

별들이 하늘에 뜨고 우포늪에 잠긴다.

나는 지금 1억년 전 사서를 읽고 있다. 

사서에 새겨진 원시적 우주의 별자리를 읽는”(배한성 시인, ‘빗방울 화석’) 시간이다. 

 

신당마을의 송미령 시인은 손님들에게 버들국수를 말아주며 이렇게 속삭인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우포늪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  

지친 어깨 살며시 토닥여주는 내 어머니 같은 가슴이 있습니다. 

우포에는 맨발로 오세요.” 

토박이 노수열(52·공무원)씨는 한밤에 혼자서 조용조용 오시라고 권한다. 

그러면 “1억년도 더 된 늪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주매마을 이장님 노창재 시인은

다만 한 가지 안타까움뿐이다. “마을은 언제부터/ 으앙 으앙 우렁찬 울음을 지웠는지/ 

고갯마루 몰고가는 곡소리마저/ 어디로 산발하여 갔는지.” 

새도 물고기도 새끼를 잘도 치는데 사람만 새끼가 없다! 

그곳에 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무엇이든 시가 되나 보다. 

공연히 가난한 이들의 별유천지라 할까.

 

글 출처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36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