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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갤러리 ■/자 연

경주 문무대왕 수중릉 일출 – 4 (2023.12.30.)

 

 

 

 

 

 

 

 

 

문무대왕 수중릉

 

 

신라 제 29대 왕, 태종무열왕은

백제, 고구려를 물리치고 삼국 통일을 이루는 밑거름을 이루었다.

삼국통일 과정에 무열왕이 돌아가자 문무왕이 뒤를 이었다.

 

문무왕의 이름은 김법민(金法敏)으로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큰아들일 뿐만 아니라 김유신 장군의

둘째 여동생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와 외삼촌을 따라 백제정벌에 참여하였고

 태종무열왕이 죽자 661년 신라 제 30대 왕으로 즉위하여 

21년간 통치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위에 올라 668년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평정하고

 이후 한반도에서 당을 물리치기 위해 8년간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반드시 필승으로 이끌어 비로소 676년에는

대동강과 원산만을 잇는 남쪽의 영토를 장악하여

삼국을 통일을 이루었다.

 

한반도 남쪽 조그만한 지방에서 시작한 신라를

한반도의 최초 통일 국가로 이룬 문무대왕이었다.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15년 이상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런 후 

서쪽의 호국사찰 사천왕사(四天王寺)와 동쪽의 호국사찰 진국사(鎭國寺)도 지었다

이 진국사를 짓는 와중에 68171일 숨을 거둔다 

 

문무대왕은 스스로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기를 지의법사에게 전하였다

문무대왕의 시신은 불태워 동해의 큰 바위(大王岩)에 안치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죽어서 바다에 묻히고자 했던 왕은 없었다

바다의 용으로 변신 한 것이다.  

위엄과 문무를 겸비하였던 왕.

죽어서도 바다의 용이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그의 호국 전설이 대왕암에 서려있다

 

 

 

 

 

 

 

 

 

 

 

 

 

 

 

 

 

 

 

 

 

 

 

 

 

 

 

 

 

 

문무대왕의 수중릉(水中陵)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 가운데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자연바위이다. 

 

남쪽으로 보다 작은 바위가 이어져 있으며, 

둘레에는 썰물일 때만 보이는 작은 바위들이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어

마치 호석처럼 보인다

 대왕암에 올라보면 마치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로(水路) 마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특히, 동쪽으로 나 있는 수로는 파도를 따라 들어오는 바닷물이

외부에 부딪쳐 수로를 따라 들어오고 나감으로써

큰 파도가 쳐도 안쪽의 공간에는 바다 수면이 항상 잔잔하게 유지되게 되어 있다

 

 이 안쪽의 공간은 비교적 넓은 수면이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하고도 큰 돌이 놓여 있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문무왕의 유골을 이 돌 밑에 어떤 장치를 해서

보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글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