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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남 . 부 산

야생차 시배지, 하동 쌍계사 (2023.05.13.)

 

 

 

 

 

 

 

 

 

쌍계사

雙磎寺

옥천사(玉泉寺), 지리산쌍계사

 

 

시대 - 고대/삼국

문화재 지정 -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제21

건립시기 - 723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요약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삼법이 창건한 사찰. 시도기념물.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관장하는 말사는 43개이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쌍계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역사적 변천

이 절은 723(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육조의 머리를 취한 뒤 귀국하였다.

 

그리고 한라산·금강산 등을 두루 다녔으나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오자 호랑이가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꿈에 지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뒤

절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그 뒤 840(문성왕 2)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중국에서 차()의 종자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였다.

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벽암(碧巖)1632(인조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용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500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된 명부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된 팔상전, 노전(爐殿),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호로 지정된 적묵당(寂默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로 지정된 설선원(說禪院),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나한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육조정상탑전과 청학루(靑鶴樓)가 있다.

 

그리고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된 천왕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된 금강문(金剛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된 일주문·대방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47호인 진감국사대공탑비(眞鑑國師大空塔碑), 보물 제380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925호인

팔상전영산회상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인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인 불경책판이 있다.

 

대공탑비는 885(헌강왕 11) 헌강왕이 입적한 혜소(慧昭)에게 진감(眞鑑)이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대공영탑(大空靈塔)이라는 탑호를 내려주어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는데, 887(진성여왕 1)에 완성되었다. 비문은 최치원(崔致遠)이 쓴 것으로

우리나라 4대 금석문(金石文) 가운데 첫째로 꼽힌다.

 

이밖에도 육조혜능의 초상화를 안치한 7층의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로 지정된 마애불

(磨崖佛)과 아자방(亞字房)의 터가 있다.

 

절에서 500m 거리의 암자인 국사암(國師庵) 뜰에는 진감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살았다는 천년이 넘은 느릅나무

사천왕수(四天王樹)가 있고, 신라의 원효(元曉)와 의상이 도를 닦았고 1205(희종 1) 보조국사(普照國師)가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그 시호를 딴 불일암(佛日庵)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불교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82)

한국의 명산대찰(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하동 쌍계사·불일폭포 일대 '명승' 지정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대가

 2022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됐다

 

명승 지정은 지난 2022년 하동군이

자연유산 우수 잠재자원 추천서를 제출하고 문화재청의 서류심사와 현장조사,

지정예고를 거쳐 이뤄졌으며 하동군에서 명승으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문화재로서의 명승은 경관성·역사성 등 종합적 가치가 충족돼야 지정되는데

이번 지정을 통해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의

종합적 가치를 인정받아 의미가 크다.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은

과거부터 다양한 문헌에 등장하는 저명한 명승지로 역사적·경관적

가치가 우수하다.

 

특히 지리산 10경 중 하나인 불일폭포는

 60미터 높이의 거대한 폭포로 다양한 식생과 기암괴석, 계곡이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불일암에서 조망하는 지리산의 전경은

빼어난 비경을 보여준다.

 

또한 쌍계사에서 불일폭포에 이르는 산중은

통일신라 진감선사 유적과 쌍계석문 등 최치원의 행적이 현존하고

신선사상의 전형적 공간인 청학동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지리산 수림과 더불어 스님들이 왕래하던 옛길과

불일암, 국사암, 환학대, 완폭대 각석 등 옛 명승 자원이 유존하는 등

학술적 가치가 풍부하다.

 

 

 

 

 

 

 

 

 

 

 

 

 

 

 

 

 

 

 

 

 

 

 

 

 

 

 

 

 

 

 

 

 

 

하동 쌍계사, 선다(禪茶)의 정맥 잇는 ‘차문화 대축전’ 봉행

 

교계 입력 2023.05.12 

 

 

햇차의 계절을 맞아 1200여 년 전 차나무 시배지가 자리하는 지리산 하동 쌍계사에서 진감국사로부터 내려온 다맥의

전통을 잇는 차문화 축전의 장이 열렸다.

 

경남 하동 쌍계사(주지 영담 스님) 511~13일 경내 일대에서 ‘2023 쌍계사 차문화 대축전을 봉행했다. 3일간 열린

축전에서는 햇차의 제다부터 헌다, 다맥 전수, 청소년과 함께하는 걷기 체험과 음악회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차문화의 향연의 장이 됐다. 특히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와 연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세계적인 차 생산국인 스리랑카, 중국, 태국, 몽골 등의 스님들을 내빈으로 초청한 가운데 진행돼 의미를 더했다.

 

행사 첫날인 11일에는 차나무 시배지에서 개원채다(開園採茶) 의식을 통해 전통 방식으로 햇차를 만드는 일정이 진행됐다. 이어 12일에는 쌍계사 경내 괘불전 앞마당에서 입재 법요식과 함께 108인 헌다, 세계 각지의 차를 맛보는 들차회, 다맥 전수식 등이 봉행됐다.

 

쌍계사 주지 영담 스님은 환영사에서 “‘쌍계사 차문화대축전은 전통불교 선() 사상의 원류인 육조 혜능 대사의 선맥과

진감 국사, 초의·만허 선사의 다맥이 융화된 선다(禪茶)의 정맥을 전하는 법석이라며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께서도 다맥을 전수한 스님이시고 그 이후로도 많은 스님과 차인들이 쌍계사에서 다맥을 이어온 만큼 차와 불교가 융합된 풍성한 이 축전이 지역의 문화 예술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날 입재 법요식에 이어 오후에는 괘불전 앞에서 세계 각국의 차를 맛보는 들차회가 개최됐다. 또 전국 차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감초의다맥한국선다회 다맥 전수법회가 봉행됐다. 다맥 전수사는 부산 혜원정사 주지 원허 스님이 맡았다.

 

축전의 마지막 날인 13일에는 청소년프로그램으로 천년 차나무 시배지 명승길 걷기가 개최된다. 안대희 성균관대 교수, 신정일 문화재위원,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의 해설로 천년 차나무 시배지 명승길 걷기가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진감선사대공영탑에서 시작해 불일평전과 불일폭포로 이어진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청소년들에게는 특별선물로 BTS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티펜이 포함된 언어교재 ‘Learn! KOREAN With TinyTAN’을 비롯해 다양한 기념품이 제공된다.

 

이어 이날 오후2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 2행사장에서는 가수 조영남 씨와 나비드, 테너 임철호, 소프라노 장소연 씨와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고산 음악회가 개최된다. 음악회에서 조영남 씨는 고산 대선사가 차를 마실 때 마음가짐을 시로 쓴 음다송을 가사로 기반해 만든 노래를 선보인다.

 

하동 쌍계사 입구에는 성덕왕 22(723)에 삼법과 대비화상께서 산문을 연 후 흥덕왕 3(828)에 대렴공이 차나무를

최초로 식재한 곳으로 알려진 차나무 시배지가 자리한다. 특히 문성왕 2(840) 진감혜소 선사가 쌍계사를 창건하며

화개골 일대에 차나무를 번식시킨 것으로 전하며, 고산 대선사가 1975년 쌍계사 주지를 맡은 후 차나무 시배지를 복원,

정비해 오늘에 이른다.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는 역사와 문화 등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3 86일 경남 기념물로 지정돼 있으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대는 지난해 11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도 지정됐다. 고산 대선사는 이 같은 차나무 시배지와 쌍계사 역대 고승의 역사를 바탕으로 해동 다맥을 복원, 진감초의다맥한국선다회를 설립하고 다맥 전수식을 봉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쌍계사는 매년 다맥 전수식을 통해 승·재가 차인을 양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출처 :  법보신문)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

 

요약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탑비. 196212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크기 : 전체 높이 3.6m, 비신 높이 2m , 비신 너비 1m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진감선사(眞鑑禪師) 혜소(慧昭)의 탑비(塔碑)이다.

탑비(부도비)는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 등을 기록한 비석으로,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승탑(부도)과 함께 세워졌다. 탑비의 건립 연대가 기록되어 있는

비문의 일부가 훼손되어 언제 비석이 세워졌는지 알 수 없었으나, 1725(영조 1)에 모각(摹刻)한 탁본이 발견되어

887(신라 정강왕 2)에 탑비가 건조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탑비의 구성과 형태

 

귀부·비신·이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으로, 비신은 흑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3.6m이고, 이 중 비신의 높이는 2m이다.

 

귀부(龜趺)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로 비신과 이수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귀부는 목이 짧고 얼굴은 용의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귀부의 등에는 육각형 모양의 귀갑문(龜甲文)이 새겨져 있으며,

비좌(碑座: 비신을 세우기 위해 홈을 판 자리)의 각 면에는 구름 문양을 장식하였다.

 

비신(碑身)은 탑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혜소의 행적에 대한 기록 등이 새겨져 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이 직접 비문을 짓고 해서체(楷書體)로 글씨를 썼다. 비문의 내용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단은 서론으로 혜소가 당나라로부터 선을 전한 인물임을 밝혔고, 2단에는 혜소의 생애와 공덕을 자세히 서술하였다.

3단은 비문의 찬술 과정을, 4단에는 사언고시체의 게송(偈頌: 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탄하는 노래)을 기록했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의 비문은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 경주 승복사지 대숭복사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의 비문과 함께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 중 하나에 속한다.

 

이수(螭首)는 탑비의 머리 부분으로 장식적인 역할과 비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수 앞면 가운데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海東故眞鑑禪師碑)’라는 전액(篆額)이 양각되었으며, 그 위로 보주와 반룡(蟠龍: 승천하지 아니한 용)을 조각하여 이수를 장식했다. 이수의 가장 윗 부분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구슬인 보주(寶珠)를 올렸다.

 

 

 

 

 

 

 

 

 

 

 

진감선사 혜소

 

혜소(慧昭) 774(신라 혜공왕 10)에 태어나 850년에 입적한 승려이다. 804(신라 애장왕 5)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26년간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830(신라 흥덕왕 5)에 귀국하였다. 이후 장백사에 들어가 신도와 제자들에게 당나라에서 배워온 선법(禪法)과 불교음악인 범패(梵唄)을 널리 알렸고, 그 결과 범패는 선종의 수행 방법으로 사용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850년 옥천사(현 하동 쌍계사)에서 혜소가 입적하자, 당시 신라의 국왕이었던 문성왕은 혜소에게 시호(諡號)와 탑호(塔號)를 내리려 하였으나 탑비를 세우지 말라는 혜소의 유언을 듣고 그 뜻을 거두었다.

885년 헌강왕은 혜소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혜소에게 '진감(眞鑑)'이라는 시호(諡號) '대공영탑(大空靈塔)'이라는

탑호(塔號)를 내리고, 혜소의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가치 및 의의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는 통일신라시대에 범패를 처음으로 도입한 진감선사 혜소의 탑비라는 점과

최치원이 직접 비문을 찬술하고, 글씨를 쓴 탑비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또한 비석에 새겨진 비문에는

혜소의 행적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 제도, 불교 문화 등에 대한 정보도 포함하고 있어 역사학·불교학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며, 비석에 쓰인 글자는 금석학·서예학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비록 비신은 많이 손상되었으나, 귀부와 이수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며 귀부와 이수의 화려한 조각 장식은

통일신라시대 탑비의 대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2 12 20

국보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