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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갤러리 ■/자 연

대구 도동서원 은행나무 (2022. 11. 10.)

 

 

 

 

 

 

 

 

 

 

 

 

 

[한국의 명목] 도동서원 은행나무

 

 

달성군 구지면 도동동에 가면

낙동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은 언덕 위에 도동서원이 서 있다.

이 서원 입구에

수령 400, 가슴둘레 8m, 높이 25m의 엄청난 은행나무가 가지를 땅에 드리웠다가

하늘로 다시 치솟는 형상을 그리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서원 건립을 주도한

김광필 선생의 외증손인 한강 정구 선생이 1605년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이 나무는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껍질이 두껍고 골이 깊이 패여 있다.

젖꼭지처럼 생긴 유주 3개가 달려 있다.

종유석처럼 가지가 땅을 향해 자라는 유주는 뿌리의 일종으로,

은행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은행나무는 오래 살고 잘 죽지 않기 때문에 장수 나무로 알려져 있다.

또한 기상 높은 선비를 배출하는 상징으로 예부터 서원이나 향교에 심었다고 하며

 선비들의 학문이 은행 열매처럼 결실을 맺으라고 기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30년 전 울음소리를 내며

북쪽 가지가 부러졌고 부러진 가지는 8톤 트럭 한가득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세월의 무게 앞에 어쩔 수 없는 듯 동쪽 줄기는 수술을 받아 충전물로 채워져 있고,

처진 가지는 받침대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글출처 : 류정필 사광회 회원)

 

 

 

 

 

 

 

 

 

 

 

 

 

 

 

 

 

 

 

 

 

 

 

 

 

 

 

 

 

 

 

 

 

 

 

 

 

 

 

 

 

 

도동서원 앞뜰에는 1607년 사액을 기념해 심었다는, 

수령 400년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기둥 같고 들보 같은 가지들을 사방으로 내뻗고 우거져 있다.

 

높이 20m, 지름이 약 2.5m에 이르는 큰 나무다.

가지들이 부러질 우려가 있어 시멘트 기둥들로 받쳐놓았다.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는 4백 년에 걸쳐 잘 자랐다.

아름답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크다. 

웅장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커다란 나무이다.

이곳 사람들은 서원 입구에 서 있는 이 나무를 그냥 서원목이라고 부른다. 

도동서원의 상징이라는 의미다.

 

이 은행나무는 키가 25미터를 훌쩍 넘는다. 

줄기의 둘레도 8.7미터나 된다.

나뭇가지는 사방으로 넓게 퍼졌다.

 

동쪽의 가지는 무려 30미터나 되는 길이로 퍼져나갔고, 

남쪽으로 난 가지도 28미터까지 펼쳤다.

 

남쪽으로 뻗은 가지는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나무는 누워서도 의젓하다. 누운 가지에서는 오랜 세월이 읽힌다.

길게 뻗어나가는 가지를 부러뜨리지 않으려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낮추어간 시간이 생생하게 눈에 보인다.

 

이곳이라고 해서 큰 바람이 불지 않았을 리 없다. 

거센 눈보라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게다.

그러나 간단없이 다가오는 모든 시련에도 긴 가지 하나 부러뜨리지 않고

가만히 내려앉아 이제는 편안히 누웠다.

남쪽으로 뻗은 가지는 한없이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북쪽의 가지는 이미 30년 전에 부러졌다.

 나무의 전체적인 균형은 깨졌다.

북쪽의 가지도 원래는 다른 쪽 가지들과 마찬가지로 우람했을 것이다.

당시에 부러진 북쪽 나뭇가지를 잘라냈더니 8톤 트럭에 꽉 찼다는 말이 전한다.

 그만큼 큰 나무다.

 

1992 12월부터 1 2백만원 의 예산을 들여 토양소독제, 해충 방제를 실시하고

배수로 설치, 생장촉진 제 주사 등으로 치료작업을 실시했다

나무의 생김새는 불균형하지만 묘하게도 불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 나무의 크기 때문일 게다.

 

워낙 큰 나무라 가지가 하나 잘려나가도 도인처럼 넉넉해 보이는 것 같다.

이제 도동서원을 찾는 이들은 서원보다도 편안히 누워 있는 큰 나무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다.

서원을 지은 사람도, 또 서원에 배향된 사람도 모두 가고 없지만

이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이곳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나무는 김굉필 나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대구광역시 특유의 나무 이름 호명법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나무를 통해 기억해야 할 사람을 우선한 것이다.

답사 때마다 이처럼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나무를 만나는 일은 몹시 반갑다.

 나무와 함께 금방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글출처 : 티스토리 - 초암의 건강세월 https://074098.tistory.com)

 

 

 

 

 

 

 

 

 

 

 

 

 

 

 

 

 

 

 

 

 

 

 

 

 

 

 

 

 

 

 

 

 

 

 

 

 

 

 

 

 

 

 

 

 

 

 

 

 

 

 

 

 

 

 

 

 

 

 

 

 

 

 

 

 

 

달성 도동서원 (達城 道東書院)

 

 

 

도동서원은 1605(선조38) 지방 유림에서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조선중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 배치형식과 강당과 사당의 공포양식 및

담장 구성수법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당· 사당과 이에 딸린 담장은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원 전면에 위치한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있다.

 

도동 서원의 담장은

서원의 전체 영역 중에서 기능에 따라 구분되는 각각의 건물군들을 분리시키고

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각 건물군들의 앞 뒤에는 직선의 수평 담장이 배치되고 좌우측면으로 돌아가는 담장은

지형의 높고 낮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높낮이를 주어 배치하였다.

 

담장의 구조는 자연석 석축이나 큰돌을 모아 정렬시킨 지대석 위에

아래에는 막돌을 쌓고 윗 부분에는 암기와를 고르게 놓고 진흙층을 쌓는 방법으로

한켜씩 교대로 쌓아 올리고 맨 위에 한식 기와 잇기로 마무리하였다.

 축조 방법과 무늬, 장식 등이 토속적이고 아름답다.

 

 

서원이란 훌륭한 사람들에게 제사지내고

유학을 공부하던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교육기관을 말한다.

도동서원은 문경공 김굉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선조 원년(1568) 처음 세워 쌍계서원이라 불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져

선조 37(1604) 지금 있는 자리에 사당을 다시 지었고 선조 40(1607)에 임금님이 직접

 도동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8(1871)의 서원철폐령의 대상에서 제외된 47개 서원가운데 하나이다.

 

행사와 교육의 중심 건물인 강당은 앞면 5·옆면 2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는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있다.

좌우 끝 칸은 온돌방으로 꾸몄고 그 앞면엔 각각 작은 툇마루를 두었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양쪽 툇마루와 통하도록 해 놓았다.

 

제사지내는 공간의 중심 건물인 사당은

앞면 3·옆면 3칸 규모로 김굉필 선생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지붕과 공포를 쌓은 양식은 강당과 마찬가지로 맞배지붕이다.

앞면 3칸에는 각각 2짝씩 널문을 달았다.

강당을 둘러싼 담장은 기와를 이용해 쌓은 맞담으로 구성하여 매우 아름답다.

간결하고 검소하게 지은 전통 깊은 조선 중기 서원 건축물로

잘 보존해야 할 문화재이다

(글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