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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남 . 부 산

진해 웅천읍성 (2022.04.16.)

 

 

 

 

 

 

 

 

 

 

 

 

 

창원 웅천읍성

 

 

창원 웅천읍성(昌原 熊川邑城)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에 있는 읍성이다.

19741228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경상남도 진해시 성내동에 있는 평지성으로,

조선 세종 21(1439)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은 1407년 일본과의 관계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항구를 열어 무역을 하던 곳인데, 일본인의 불법이주가 많아지자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하여 읍성을 쌓았다.

 

문종 원년(1451)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북에 수로를 만들어 성 일부를 확장하였다.

중종 5(1510)에는 삼포왜란으로 일시 함락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현재는 성의 동벽과 서벽만, 동문터, 서문터와 함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동문터의 너비는 4m이다.

서벽과 남벽은 그 일부가 남아있고 북벽은 철거되었다.

성벽의 기초가 되는 부분에는 네모진 돌을 쌓았으며,

그 위에 사각형 또는 삼각형의 돌을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모양이 되게 쌓았다.

벽면은 땅과 수직으로 쌓았으며 큰 돌 사이사이에는 작은 돌을 끼웠다.

 

2011년 동문인 견룡루와 동측 성벽과 남측 성벽 일부가 복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총 길이는 500m,

동벽 북단의 남쪽 100m 쯤에 누각이 있던 자리도 남아 있다.

 

 

 

 

 

 

 

 

 

 

 

 

 

 

 

 

 

 

 

 

 

 

 

 

 

 

읍성(邑城)

 

 

읍성(邑城)은 고을의 주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관부(官府, 관청)와 민거(民居, 시가지)를 둘러서 쌓은 성곽이다.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한다.

 

산성(山城)과 함께 우리나라 성곽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의 중심이 되는 중앙 고을에 위치하여

내부에는 관아와 병영을 비롯한 지방 관청과 향교, 장터 등이 있어

행정, 군사, 교육, 상업의 중심지였다.

 

읍성은 대규모 전란에는 방어능력이 다소 떨어져 가까운 곳에

산성을 추가로 건설해 두는게 일반적이었다.

읍성들은 멀게는 삼국시대부터 지어지기 시작해서 여러 왕조를 거쳐 보수하거나 신축되어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의 부와 목, 일부 군과 현에 축조되어

전국적으로 300여개의 읍성이 있었다.

 

다만 읍성이라는 용어는 조선 때부터 등장한다.

구조적으로는 한양도성도 읍성과 유사하나,

왕의 치소가 위치한 곳이기 때문에 도성(都城)이라고 구분지어 부른다.

일제강점기 동안 읍성철거령에 의해 대부분의 성이 철거됐으나,

해미읍성, 고창읍성, 낙안읍성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다.

지방자치제의 전면시행 이후 각 지자체마다 지역의 관광자원 개발과

지역 정체성 확보를 위해

읍성을 복원하는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상 글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