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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전 북

남원 몽심재 - 3 (2018.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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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구례 방면으로 달리다

범재터널을 통과하여 얼마 가지 않아, 오른 쪽으로 갈라지는 60번 지방도로를 만난다.

 이 분기점으로 내려서서 낮은 고개를 넘으면 저수지가 보이고,

곧이어 수지면 호곡리 수지초등학교 건너 편에, 일명 홈실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의 탄생에는 이성계의 조선 개국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 송암 박문수선생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뜻을 같이하는 72명의 고려 중신들과 함께

개성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서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

이때 부인에게, 고향으로 내려가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자손이 끊기지 않게 하라고 당부를 했다.

그래서 박문수선생의 부인이 낙향하여 살게 된 곳이 바로 홈실마을이며,

이후 번창하여 죽산 박씨의 집성촌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죽산 박씨 종가집 대문에는

 ‘삼강문三綱門’이라는 현판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삼강에 해당하는 충신, 효자, 열녀가 모두 배출된 집안임을 나타내는 현판이다.

종가 오른쪽으로는 중시조인 박문수선생의 불천위 사당이 자리 잡고 있고,

왼편으로는 종가에서 분가한 박문수의 16대손 연당 박동식의 고택, 몽심재夢心齋가 있다.

사랑채의 당호堂號가 몽심재인 것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불천위 사당 주련에는 ‘隔洞柳眠元亮夢 登山薇吐伯夷心’이라는 글씨가 선명한데,

박문수 선생이 포은 정몽주 선생에게 보낸 시로,

도연명과 백이, 숙제의 절개와 지조를 노래하고 있다.

 

 ‘마을을 등지고 늘어서 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元亮)이 꿈꾸고 있는 듯하고,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 숙제의 마음을 토하는 것 같구나’ 란 내용인데,

이 시의 첫줄 끝 자인 몽(夢) 자와 둘째 줄 끝 자인 심(心) 자를 따서

몽심재 라고 했다.

 

 옛 주인에 대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은,

수 백 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고, 후손의 자긍심으로 다시 태어나서

바로 몽심재의 어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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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건축-003. 남원 몽심재 - 더불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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