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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전 남

순천 송광사 - 7 (2016. 03.)






















송광사

松廣寺




사적 제506.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로서

이전에는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寺)라고 했다.

한국 선종의 대수도도량으로서 유서깊은 승보사찰(僧寶寺刹)이며,

통도사·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사찰로 꼽히는 절이다.


송광사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송광사사적비 松廣寺事蹟碑·

보조국사비명 普照國師碑銘·승평속지 昇平續誌에 의하면 신라말 체징(體澄)

길상사라는 소규모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인종 이후 거의 폐허화되었는데,

1200년 보조국사가 수행결사(修行結社)인 정혜사(定慧社)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길상사로 옮긴 다음부터 대규모 수도도량으로 발전했다.

고려 희종은 정혜사의 이전과 때를 같이하여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修禪寺)

개명하라는 제방(題榜)을 내렸고,

이후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180여 년 간 진각(眞覺각엄(覺儼태고(太古나옹·환암(幻庵

찬영(燦英각운·무학 등 15명의 국사를 배출하는 소위 수선사시대를 열게 되었다.

1395(태조 4)에 고봉화상(高峰和尙)이 전당을 중건했고,

그의 뒤를 이은 중인(中印)1420(세종 2)에 당우를 증축하는 한편 절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정종의 윤지(綸旨)로 설립된 수륙사(水陸寺)를 폐지하고 선종사찰로 복귀했다.


그후 수선사가 언제 송광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폐사 직전에 놓인 송광사는 응선(應善)과 부휴(浮休) 등의

노력에 힘입어 명맥을 유지했다.

1842년의 화재와 6·25전쟁 등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거나 파괴되고 다시 중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재 한국 선종을 이끄는 중심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6·25전쟁 전의 가람배치는 의상(義湘)의 법계도(法界圖)와 같았다고 하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국사전(國師殿국보 제56하사당(下舍堂보물 제263

약사전(藥師殿보물 제302영산전(靈山殿보물 제303청량각(淸凉閣

척주각(滌珠閣우화각(羽化閣천왕문·해탈문·대장전(大藏殿) 50여 동이 있어

대가람의 면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송광사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

혜심고신제서(惠諶告身制書국보 제43고려고문서(高麗古文書보물 제572

경패(經牌보물 제175금동 요령(金銅搖鈴보물 제176) 등이 있으며

1093년 간행된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제205),

1095년에 간행된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제206)

금강반야경소개현초(보물 제207), 대반열반경소(보물 제90),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보물 제204), 영산전목불좌상 등이 있다.

(글출처 daum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