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전통건축 갤러리 ■/전 북

무주 적상산 안국사와 적상산성 (2015. 05.)

 

 

 

 

 

 

 

 

 

 

 

 

 

 

안국사는 고려 말에 월인(月印) 스님이 창건한 후

조선 초 무학대사(無學大師)국중제일의 길지(吉地)’라 예언하며 중건한 사찰로,

이후 나라에서 산세의 견고하고 험준함을 생각하여 산성을 쌓고 사고(史庫)를 지은 후,

사고 수호사찰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절 이름을 안국(安國)이라고 한 것은

비록 작은 절이기는 하지만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큰일을 하는 절이기 때문이다라는

기록과 함께, 사찰의 역사적 위상을 짐작케 한다.

 

정묘호란 때에도 사고의 장서들을 인근의 석굴로 모두 옮겨 보관함으로써

전쟁의 화마를 피할 수 있었으며, 1910년 서울의 규장각으로 장서를 옮겨갈 때까지

화재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의 사고로서, 안국사는 이러한 사고 수호사찰로 그 역할을 다하였다.

이처럼 산중의 별천지에 자리한 안국사는 무학대사가 예언한 천하의 길지로

안국사가 번창하면 나라가 번창하고, 안국사가 쇠하면 나라가 쇠한다는 비보를 지니며,

고찰의 옛 모습을 가꾸며 호국과 민안(民安)을 기원하던 옛 스승들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이하 글자료 : 카페 <일촌 불  http://cafe.daum.net/mybulove >

 

 

 

 

 

 

 

 

 

 

 

 

 

 

 

 

 

 

 

 

 

 

 

*극락전(極樂殿)*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맞배건물로, 잘 다듬어진 자연석 축대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정면 3칸에는 꽃빗살문을 칸마다 설치하였다.

정면과 좌측은 4분합이나 우측은 2분합으로 협칸의 구조가 특이한 평면을 보여준다.

 

건물 외부는 정면과 배면에 다포계양식의 공포를 설치하였는데,

외부는 3출목으로 되어 있으나 내부는 4출목으로 쇠서는 연봉으로 장엄한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 건물 외벽은 삼면에 심우도(尋牛圖)를 비롯하여 석가탄생도 등 다양한 설화적 도상을

표현하였으며, 단청은 얼금모로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엄하였으나, 극락전 우측창방 쪽에는

안국사의 설화를 입증하듯 딱 하루만큼 단청할 분량의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01호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천불전(千佛殿)*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건물로 극락전 우측 축대 아래에 있다.

1991년 옛 사고(史庫) 터에 있던 선원각을 옮겨 지은 것으로,

전란의 화마를 입지 않은 유일한 사고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건물은 중간에 가로로 방()을 쳐서 중층의 구조를 가진 독특한 모습으로,

하부는 사고를 수장한 창고를 겸하며 상부는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 어칸에는 4분합의 빗살문과 좌우 측면에는 내부에 채광을 공급하는 특이한 교창이 있다.

   

내부는 중앙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 보조단이 있으며,

 

1995년 합성수지로 만든 석가여래좌상과 문수보현보살을 비롯하여

석고천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안국사 괘불*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도로,

석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다보여래문수보현보살이 있고,

왼쪽에 아미타불관음대세지보살이 서 있는 군도양식이다.

 

이와 같은 구도는 조선시대 대형 불전인 대웅전이나 대광명전 등에 3폭의 불화가 배치되는

형식을 한 화면에 담은 것으로, 본존불을 강조하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기한 것이다.

이 괘불은 길이 10.75m, 7.2m의 대형으로 임금과 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해 발원하였으며,

1750년경 경남 고성의 운흥사(雲興寺)를 중심으로 전국 각처에서 활약한 의겸비구(義謙比丘)

참여한 것이 주목된다.

주존인 석가모니는 화면 중앙에 서 있는데, 이목구비는 큼직하며 건장하고 각진 어깨,

유난히 길게 늘어진 팔, 짧은 하체 등 이상화된 불상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하다.

얼굴인상은 원만하지만 다소 불균형한 듯한 신체표현, 통견의를 걸친 어깨에서 느껴지는

묵중하고 건장한 신체와 거신형 광배 등에서 의겸의 화풍을 짐작할 수 있다.

채색과 문양은 녹색과 주홍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회색황색분홍 등 중간색을 배합하여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범종각(梵鐘閣)*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팔작건물로 청하루 우측에 있다.

안국사의 옛 범종과 대화합의 범종을 봉안하기 위한 것이다.

단층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얹고, 사면에 홍살을 세운 범종각은 청하루의 기왓골과

수평을 이루며 안국의 염원과 국민 대화합을 바라는 범음을 전하고 있다.

현재 어칸에 일중(一中) 거사가 쓴 편액과 1996년 조성한 대화합의 범종 및 운판이 있으며,

1788(정조 12)에 조성된 안국사의 동종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무주 적상산성 (茂朱 赤裳山城)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위의 분지를 에워싼 대표적인 방어산성이다.

 

고려 후기 거란이 침입한 후 최영은 이곳에 산성을 쌓게 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했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도 반드시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고려 때 거란과 왜구의 침입에 이미 산성을 이용하여 인근 여러 고을의 백성이 피난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광해군 2(1610) 이곳에 조선시대 5개의 역사책보관소 중의 하나인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실록전, 사각(史閣), 선원각, 군기고, 대별관,

호국사를 세웠고 임진왜란 이후 진()을 두어 산성을 수축하고 운영했다.

 

현재 성벽은 무너져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최근에 성 안에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적상산성 무주 적상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글 자료 : 문화재청) 

 

 

 

 

 

 

 

 

무주 와인동굴

 

 

 

 

 

 

 

 

 

 

 

 

 

'■ 전통건축 갤러리 ■ > 전 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주향교 (2016.03.)   (0) 2016.03.19
전주 풍남문 (2016.03.)   (0) 2016.03.19
군산 1930시간여행 - 2   (0) 2014.05.19
백양사의 봄 -4 (2014. 04.)  (0) 2014.04.18
남원 몽심재 - 2 (2013. 05.)  (0) 2013.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