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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남 . 부 산

산청 대원사 (2024. 03.)

 

 

 

 

 

 

 

 

 

 

 

산청 대원사

 

 

지리산 천왕봉 동북쪽

유평 계곡에 위치한 대원사는

수덕사의 견성암과 석남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비구니 참선수행 도량으로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그 후 여러 차례 화재로 부분적으로 보수하였다가

여순 사건 때 빨치산 토벌로 모두 불타서 1955년 법일스님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한다.

 

대원사 계곡은 깊고 울창한 수림과

반석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계곡인데

원래는 마을 이름을 따와서 유평 계곡이라 불렀으나

대원사 비구니 사찰의 깨끗한 이미지가 더해져 지금은

대원사 계곡으로 불리고 있다.

 

밤밭골에서 치밭목 산장과 하봉, 중봉을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유평리 코스는 약 5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대원사 계곡물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곳곳에서 발원하여

12km를 이르는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린다.

 

신밭골과 조개골 밤밭골로 모여든 계류는

새재와 외곡마을을 지나면서 수량이 많아지고,

비구니 도량인 대원사가 있는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서부터

큰 물을 이룬다

 

계곡에는 선녀탕, 옥녀탕 등의 용소등과

()와 세신대, 세심대가 있으며

사시사철 밤낮으로 물에 씼긴 바위들이 눈이 부실 정도로

희고 깨끗하다.

 

대원사 절 입구 높은 언덕의

봉상루 계단 옆에는 수령 250여년의 백매화 1그루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

山淸大源寺多層石塔

 

 

시대 조선

문화재 지정 보물 제1112

 

소재지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평촌유평로 445(유평리) 대원사

 

내용

 

높이 5.5m. 석탑은 각 부재가 어긋나

1989년에 해체하여 복원하였는데, 당시에 사리 58과와 함께

파손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되었다.

 

석탑은 현재 대원사 사리전 앞에 자리하고 있다.

곧 사리전 서쪽에는 넓직한 탑전(塔殿)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석탑이 위치하였다.

바로 앞에는 배례석(拜禮石)이 있으며,

옆면에 석가불사리탑건륭갑진중건(釋迦佛舍利塔乾隆甲辰重建)’이라고

새긴 글자가 있어, 석탑이 1784(정조 8)

다시 건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석탑은 2층 받침돌 위에 8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머리장식인 상륜(相輪)을 놓은 모습이다.

다만 이 석탑을 9층 석탑이나 10층 석탑으로도 부르는데,

그것은 2층 받침돌을 단층 받침돌로 보거나

받침돌을 합하여 층수를 세었기 때문이지만

8층이라고 해야 한다.

 

아래층 받침돌의 면석에는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이 새겨져 있다.

덮개돌은 두툼한 편으로, 평평한 윗면에는

둥글고 각진 2단의 굄이 마련되어 있다.

윗층 받침돌은 이 석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각 면에 1구씩 합장한 공양좌상(供養坐像)이 조각되어 있고,

네 귀퉁이에는 모서리 기둥 대신에 원통에 새겨진 인물입상(人物立像)

1구씩 배치되어 있다.

덮개돌은 두툼한 1장의 널돌로 이루어졌는데,

밑면에는 얕은 부연(副椽)을 새겼으며,

윗면에는 둥글고 각진 2단의 굄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하여 올려 놓았다.

각 층의 몸돌에는 좌우에 모서리 기둥이 가지런히 새겨져 있다.

각 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2단의 받침이 있고,

윗면에는 윗층의 몸돌을 받칠 수 있는 각진 1단의 굄이 있다.

다만 받침과 굄이 낮아서 지붕돌의 전각(轉角)이 두터워 보인다.

상륜부에는 복발(覆鉢)과 보륜(寶輪)으로 꾸민 돌을 놓고서

굵직한 찰주(擦柱)를 가운데에 꽂아 두었는데,

찰주 중간에는 원뿔 모습의 보주(寶柱) 하나가 장식되어 있다.

 

석탑의 건립 시기는

각 부분의 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조선 전기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무너졌다고 전하기도 한다.

이 석탑은 각 부재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석탑으로,

이 시대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탐구한국의 석조미술(정영호, 서울대출판부, 1998)

한국 탑파의 연구(고유섭, 을유문화사, 1954)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