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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실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② ‘판스워스 주택’에 막힌 곳은 욕실뿐

 

<지식카페>풍경 품었지만… ‘유리새장 같은 집’선 옷도 갈아입지 못했다

  • 문화일보
  • 입력 2018-05-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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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리노이주 폭스강 인근 숲속에 지어진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의 ‘판스워스 주택’. 건물 벽면이 온통 유리여서 내부가 환히 들여다보인다. @Wikipedia Commons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② ‘판스워스 주택’에 막힌 곳은 욕실뿐

철·유리로만 이뤄진 순수 입체
건물 내부엔 기둥 1개도 없어
근대건축의 이정표로 불리지만
침수경계 어겨 6회 침수‘굴욕’

문학 전공했던 독신女 전문醫
혼자 취향 살릴 주말주택 요구
투명한탓 가구배치·휴식 못해
구경꾼들 피해 블라인드 설치

건축비 7만달러… 교외주택 4배
건축주 - 건축가 간 소송전까지
두 주인 거쳐 이젠 박물관 변신

 


우리 도시에 수없이 서 있는 철과 유리로 된 고층건물을 한 층 한 층 잘라 보면 철골 구조에 아래는 바닥이고 위는 천장이라는 두 장의 수평면으로 이뤄진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주택과 같다. 이런 주택을 가장 완벽하게 완성해 보인 것은 미스의 ‘판스워스 주택’(Farnsworth House·1951)이었다. 그래서 이 주택을 근대건축의 원형이며 이정표라고 한다. 하지만 이 주택의 건축주는 당연히 근대건축의 원형이나 이정표가 되라고 설계를 의뢰한 것이 아니었다.

이 주택은 미국 일리노이주 플라노를 지나는 폭스강 가까운 숲속에 지어졌다. 숲속의 철과 유리로만 지어진 순수한 입체. 그것은 근대주의의 이상이자 완벽한 전형이었다. 기둥은 모두 건물 밖의 구조체에 붙어 있어서 내부에는 기둥이 전혀 없다. 널찍한 두 개의 테라스를 지나 문을 열면 원룸 공간이 나타난다. 한가운데 천장까지 닿은 목제 코어가 있고, 그 안에는 욕실이 두 개, 부엌, 난로, 설비기기가 다 들어가 있다. 그리고 온통 유리가 끼워져서 커튼을 젖히면 방 안의 가구와 바깥쪽 숲이 한 번에 이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건축주 이디스 판스워스(Edith Farnsworth)는 본래 문학과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나 그 후 의학을 공부하고 시카고의 저명한 신장(腎臟) 전문의가 된 독신 여성이었다. 판스워스와 미스는 1945년에 만났는데, 그때 미스는 59세, 판스워스는 42세였다. 판스워스는 미스의 전시가 있는 곳마다 따라다녔으며 점차 미스에게 애정을 느꼈다. 1947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자기가 살 주택의 모형이 “전시장의 중심에 있어서 시카고로 돌아가는 열차를 탈 때 행복했다”면서, “혼자 살면서 자기 취향을 잘 살릴 수 있게, 비싸지 않게 아주 잘 설계된 주말주택”을 기대했다.

건축주가 방충망을 친 테라스. @Thresholds


설계를 시작하기 전 판스워스는 미스와 폭스 강가에 서서 새 집에 대한 희망을 말했다. 그러나 미스는 건축주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오직 투명한 유리 상자를 통해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만 말하고 있었다. 건축주가 새 집의 재료가 무어냐고 물었더니 미스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프라이버시가 문제 될 것이 없는 이곳에서 외부와 내부 사이에 불투명한 벽을 세우는 것은 아까운 일이에요. 마치 우리가 밖에 있듯이 철골과 유리로 된 집을 지어야지요”라고 대답했다. 미스의 이런 말이 건축 전문서에는 “우리는 자연과 집 그리고 인간을 한 차원 높게 통합해야 한다”고 고상하게 표현된다. 판스워스는 한창 공사 중일 때 이렇게 썼다. “마감이 안 된 두 장의 수평면은 초원에 떠 있고, 들장미처럼 붉게 물든 태양 아래에서 이 세상에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건축가와 건축주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건축주는 이 건축가가 자기의 목적과 꿈만을 생각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됐다.

판스워스는 1951년 이 주택으로 이사하고 나서 문제의 심각함을 알게 됐다. 넓은 유리 창문에는 얼음이 덮였고, 집 안의 등불이 눈 덮인 풀밭에 반사돼 유리 집이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지붕에는 물이 심하게 샜고 난방을 하니 창문은 필름을 붙인 것 같았으며, 잘못된 배관에 곤혹스러웠다고 그녀는 이사한 첫날 밤의 일을 적고 있다. 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내라는 것인지 에어컨도 없이 여닫을 수 있는 창문은 한 곳, 환기구는 두 곳뿐이었다. 세탁할 곳도 없었으며, 바닥 난방에 따로 마련한 벽난로는 고기 굽는 석쇠로 보일 정도로 초라했다.

판스워스는 다 지어진 집에 옷장 하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미스는 “이 집은 주말주택이에요. 그러니 옷 한 벌만 있으면 돼요. 옷은 욕실 뒤에 있는 고리에 거세요”라고 대답했다. 설계할 때 자기 옷을 넣을 옷장도 제대로 체크하지 않은 건축주도 문제가 크다. 그러나 건축주에게 주말에 옷 한 벌만 입고 오라, 욕실에 걸라, 그것도 뒤에 있는 고리에 걸라는 것은 보통 건축가는 말할 수 없는 교만한 대답이다. 새 옷장을 하나 더 만들면 유리를 통해 보이는 사방의 풍경 중 한쪽이 막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둘 사이에 소송이 일어나, 다른 곳은 값비싼 목재인 프리마베라로 마감해 주었는데 이 새 옷장은 마지못해 티크로 만들어 주었다. 후에 이 주택을 산 영국의 자산가 피터 팔럼보(Peter Palumbo) 경이 그림은 어떻게 거냐고 물었더니 미스는 “아마도 집에 이젤이 늘 있어야 할 걸요”라고 말했다. 아예 벽에는 그림을 걸지 말라는 말이다.

강 주변에 생긴 공원이 인기를 끌어 새로운 길이 생기고 500m 떨어진 곳에 다리도 놓이자, 숲속에 홀로 있던 이 투명한 주택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었다. 옷을 갈아입으려면 커튼을 다시 다 치든지 아니면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그녀만의 방은 오직 화장실뿐이었다. 이에 집 구경하러 나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자 이 명작에 어울리지 않는 블라인드 커튼을 설치하고 장미 관목도 심었다.

‘판스워스 주택’은 침수경계를 어기고 낮은 곳에 지어져 1951년 완공된 뒤로 6차례나 침수됐다. @Architecture Chicago PLUS

 


이 집에 손님을 데리고 오는 것도 큰 문제였다. 판스워스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이 손님에게 욕실은 있는데 침실이 없다. 남자든지 여자든지 손님은 소파에서 자든가 아니면 내가 트래버틴(대리석의 일종)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든지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일종의 3차원적으로 동거하는 셈이다. 나는 내 잠자리에서, 그는 그의 잠자리에서.”

판스워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주 편안해한다고요?… 실은 네 벽이 유리인 집 안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느낌이에요. 늘 들떠 있어요. 해 질 녘에도 밤낮으로 보초를 서는 기분이고요. 좀처럼 쭉 뻗고 쉴 수 없어요. 또 뭐가 있나? 싱크대 밑에는 음식 쓰레기도 둘 수 없어요. 왜냐고요? 여기 이 길에서 부엌 전체가 죄다 보여요. 깡통 하나가 이 집 전체의 외관을 망친다더군요. 그래서 깡통은 싱크대에서 먼 벽장에 숨겨요. 미스는 ‘자유로운 공간’을 말할지 몰라도 그 공간이 정말 사람을 옥죄고 있어요. 옷걸이 하나가 밖에 보이는 모든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지 않으면요, 내 집에 옷걸이 하나 둘 수도 없어요. 그러니 가구를 방에 배치하는 것은 정말 더 어려운 문제예요. 집이 엑스레이처럼 투명하니까요.”

집 앞에는 건축하는 사람이 그렇게 칭찬하는 멋지고 널찍한 테라스가 두 개씩이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있으면 뭘 하나? 밤에 테라스에 나가 앉아 있자니 숲속의 모기 때문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저 아름다운 테라스에 방충망 스크린을 쳐야 했다. 주택 입구 앞에 방충망을 쳐 놓은 오래된 흑백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곳에 앉아 있는 건축주의 모습이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진다.

판스워스는 커다란 판유리에 부딪혀 죽은 새를 보면서 이 주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사람이 만든 것’(Artifact)이라는 제목의 시로 표현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보니 새벽이 걷혔네. 침대 곁의 커다란 판유리에 새가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다. 부딪히고 퍼덕대는 소리… 왜 저 새들은 차고 매끄럽게 사람이 만든 것을 지나가려 하나? 유리 위에 새는 왜 부딪히는가?” 건축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명작이라고 토론하고 연구하는 판스워스 주택이 건축주에게는 절망의 대상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을 심하게 초과한 공사비였다. 본래는 4만 달러를 예상했으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7만4000달러(지금 돈으로 64만8000달러)가 나왔는데, 당시 레빗타운(levittown) 같은 교외 단지 주택값의 4배나 됐다. 건축잡지와 신문도 유명 건축가의 사기라고 하며 이 사건을 공공연하게 알렸다. ‘하우스 뷰티풀(House Beautiful)’의 편집장이었던 엘리자베스 고든(Elizabeth Gordon)은 “기둥 위에 만든 유리 새장에 지나지 않는 방 한 칸짜리 건물에 7만 달러를 허비해서 매우 지적인 한 여성이 지금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렇게 되자 건축주는 설계비를 다 지불하지 않았고 계획에 있던 미스가 디자인한 가구도 들여놓지 않았다. 1951년에는 이 두 사람은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고, 급기야 미스가 설계비와 감리비를 마저 내라고 소송을 했다. 이에 판스워스도 견적보다 비싸게 요구한 건설비용을 돌려달라고 소송했다. 그러나 이 두 소송에서 미스가 모두 승소했다. 미스는 그 후 독립주택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이 유명한 소송으로 주택 설계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괴로운 소송이 끝난 후 판스워스는 이 주택에서 21년간 지내다가 1972년에 이 집을 경매에 내놓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예술수집가 팔럼보 경은 이 주택을 한 가지 수집품으로 경매로 산 다음, 무려 670만 달러에 내셔널 트러스트에 되팔았다. 새 집 짓고 잘 살아보겠다는 사람은 이 집으로 괴로워하고, 그다음 사람은 수집품의 하나로 사 두었으며, 그다음은 보존 단체가 근대건축의 명작을 거금을 들여 매입하고 지금은 빈집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참 아이로니컬한 현상이다. 그래서 그런가? 미국 일리노이 공대 건축학과 학생들은 판스워스 주택을 ‘반스워스(Barnsworth)’라고 부르고 있다. ‘반(barn)’이란 헛간이나 휑뎅그렁한 건물이고 ‘워스(worth)’란 무슨 값어치가 있다는 말이니, 이것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휑한 헛간이 전혀 다른 평가로 비싼 가치를 갖고 있음을 비꼰 말이 아니겠는가?

놀랍게도 이 세계의 명작은 강의 범람으로 여섯 번이나 침수됐다. 미스가 아름다운 풍경을 위해 침수 경계를 어기고 낮은 곳에 위치를 잡았기 때문이다. 1966년에는 바닥 위로 1.5m까지 올라왔으니까 주택 높이의 반이 어항처럼 물에 잠긴 셈이다. 2008년에도 바닥 위로 50㎝ 가까이 침수됐고 2013년에도 침수 직전까지 가서 다시 거금을 들여 침수가 덜한 곳으로 이전하려고 연구하고 있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건축은 건축가만 짓는 것이 아니다. 건축주는 건물을 세우는 주체이기에 건축주(建築主)라 한다. 지성에 찬 그녀조차도 설계되는 동안 자기의 삶을 공간으로 깊이 그릴 줄 모르는 공간맹(空間盲)이었던가? 그저 유명한 건축가니 어떻게라도 잘해줄 줄 알았다가 다 지어지고 나서야 그 집이 자기 삶과 무관함을 깨달았다. 따라서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건축주 판스워스에게 있다. 그런데도 현실의 삶과는 무관한 건물을 두고 걸작이니 작품이라 하고, 불편한 집이 좋은 집이라 자랑스럽게 강변하는 건축가도 있다. 도대체 건축을 어떻게 보고 있기에 이럴까? 이것이 우리가 이 주택에서 정말 곰곰이 생각해야 할 숙제다.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출처 - <지식카페>풍경 품었지만… ‘유리새장 같은 집’선 옷도 갈아입지 못했다 :: 문화일보 munh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