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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답사수첩] 영남 유림(儒林)의 중추, 도산서원(陶山書院)

 

[지역답사수첩] 영남 유림(儒林)의 중추, 도산서원(陶山書院)

  • 기자명 김진섭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라온 
  •  입력 2023.01.10 11:47
(사진=김진섭 건축사)
 

영남 유림의 본산


도산서원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자리한 조선시대에 지어진 서원이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사후 그를 주향으로 하여 퇴계 문도 및 향촌 사림에 의해 1574년(선조 7년)에 창건되었으며, 이듬해인 1575년(선조 8년)에 사액 되었다. 서원은 이황에 대한 숭모 분위기와 더불어 조선 후기 영남 유림의 본거지로 명성을 떨쳤다. 영남학파와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이황을 모신 만큼 영남학파의 선구자인 이언적을 모신 경주 옥산서원과 함께 한국의 양대 서원으로 꼽힌다.

이황은 1501년(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현 노송정 종택 태실)에서 태어났기에 이곳이 생가이면서 태실이 모셔져 있다.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이황이 별세한 지 4년 뒤인 1574년(선조 7년)에 시작하여 1576년 완공하였다. 1570년 이황이 작고하자, 1572년에 위패를 상덕사에 모시기 위해 공사가 시작되었다. 1575년에 선조가 명필 한석봉으로 하여 쓰게 한 편액을 하사함으로써 영남 유림의 본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년)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했다.

경내의 건물로는 상덕사(尙德祠)·전교당(典敎堂)·전사청(典祠廳)·한존재(閑存齋)·동재(東齋)·서재(西齋)·광명실(光明室)·장판각(藏板閣)·도산서당·역락서재(亦樂書齋)·농운정사(隴雲精舍)·유물전시관 등이 있다.

서원 내 이황의 위패가 봉안된 상덕사(尙德祠)는 1963년 보물 제211호로, 전교당은 보물 제210호로 지정된 바 있다. 서원을 중심으로 한 임야 및 전답은 1969년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되어, 1977년 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1975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천원 지폐 뒷면의 디자인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사진=김진섭 건축사)
 

퇴계의 선비정신 깃든 성리학 교육의 성지


도산서원은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는 동시에 영남 유림의 정신적 중추 구실을 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당시에 없어지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안동지역이 고려 말 조선 초 유학자의 학맥이 이어져 영남지역 사림의 본고장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는 16세기를 거치면서이다. 이 시기는 안동, 예안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당대의 대유(大儒) 퇴계 이황의 학문 활동과 제자 양성, 서원 건립의 노력이 두드러지는 때이기도 하다. 그 문하에서 유성룡(柳成龍), 김성일(金誠一)과 같은 석학들까지 줄줄이 배출됨으로써 이 지역은 조선의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추로지향이란 공자와 맹자의 고향을 의미하는데, 그만큼 이황이 조선 성리학과 사림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급기야 16세기 후반 조선의 정계와 학계를 주도했던 사림들은 대부분 이황의 문하를 출입하다시피 하였다 할 정도가 되었고, 이황이 우거하던 도산서당과 그 일대는 자연스레 많은 유학자들이 모여드는 학문적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황 사후인 1574년(선조 7년)에 그가 머물던 도산서당 뒤로 도산서원이 창건되어 사액되고, 안동의 여강서원에 이황의 위패가 봉안되면서 이 지역은 명실상부하게 조선 시대 영남 유림의 정신적 중추가 되었다.

도산서원이 위치한 지역은, 말년의 이황이 은거하며 제자를 교육하고 그 사후 문도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면서 퇴계학의 본산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황에 대한 이러한 존숭 의식은 지역사회에서뿐 아니라 유림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었으며, 조선 후기의 유림은 도산서원을 한 번쯤은 와 봐야 할 명소로 여기게 되었다.

도산서원은 교육기관으로 학문을 연마하는 기관이었지만, 안동과 주변 지역 사림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했다. 1884년 서얼들이 도산서원 출입을 허락해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서원에서는 끝까지 허락할 수 없다고 거절했고, 서얼들과 서원 유사(有司)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조정에서는 서자들의 서원 출입 허락 상소가 계속되자 1884년(고종 21년) 서얼들도 서원 출입을 허용하라는 공문인 관문(關文)을 각 관아와 서원에 하달하였다.

옥산서원은 곧 서얼의 서원 출입을 허락하였지만, 도산서원은 서자출입을 허용하는 것은 옥산서원의 사정이지 도산서원은 적용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서자들과 도산서원의 갈등은 4년 1개월간 계속되었고, 결국 1888년 12월 서자들의 출입 요구가 관철되었다.
문화재청은 2018년 1월 안동 도산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대표서원 9곳을 ‘한국의 서원’으로 지정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신청을 하였고,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도산서원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토계리 680)

 김진섭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라온 artk2002@naver.com
 

출처 - [지역답사수첩] 영남 유림(儒林)의 중추, 도산서원(陶山書院)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anc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