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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껍질, 배타적인 독립체 2023.11

[건축비평] 껍질, 배타적인 독립체 2023.11

 

2023. 11. 30. 10:3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Husk, an exclusive entity

 

 

 

<고운동주택:열린덮개_No3> 길 쪽에서 바라본 모습 © 천영택

 

스몰웍스 건축사사무소의 고운동 주택은 별다른 도시 맥락을 찾기 어려운 세종특별자치시 외곽의 한 주택단지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존재감의 근원은 독특한 형태라기보다 독특한 존재 방식이다. 그리고 이를 드러내고 조율하는 요소가 바로 건물 전체를 에워싼 ‘한 꺼풀의 벽’이다. 고운동 주택은 스몰웍스가 ‘열린 덮개’라는 주제를 담아 건축한 세 번째 작품이다.

지구단위계획의 기계적 해석 아래 지어진 이웃 주택들은 대체로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동남쪽(혹은 조례에 따라 그것을 마주 보는 방향으로) 대지를 비워 통으로 긴 마당을 만들고, 건물은 이 마당을 향해 놓인다. 거실에는 전신이 드러나는 큰 창문, 침실에는 상반신이 드러나는 중간 크기의 창문, 화장실에는 환기를 위한 작은 창문이 달려 주택의 내부 구조가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바깥으로 바로 열린 마당 탓에 때론 사사롭고 내밀한 공간들이 타인에게 단순 노출되는 것을 넘어, 거의 전시되는 상황에 이른다. 물리적으로는 화통하게 열었으나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움츠러들게 되는 상황.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이유는 법이 요구하는 인동간격과 단면상 높이 차이가 이런 무분별한 접촉의 가능성을 미연에 줄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저층 주택은 여전히 아파트 못지않게 대범하다. 그리고 이 같은 구조적 문제 해결에는 건축사보다 블라인드와 쇠창살, 수목과 감시카메라, 그리고 건장한 경비업체 직원에 의지한다.

고운동 주택은 한눈에 보기에도 이웃 주택들과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건폐율에 따른 대지의 빈 땅은 외벽으로 둘러쳐져 밖에서 그 위치와 규모를 알 수 없고, 심지어 이 건물이 몇 층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또 보행자가 들여다볼 수 있는 높이에는 외부 시선을 허락할 만한 창이 전혀 없다. 조례로 설치가 의무화된 경사지붕은 이 외벽 뒤로 숨겨져 보이지 않는다. 경사지붕 아래의 천장도 모두 평평하게 처리되어 경사지붕의 존재는 안팎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다. 사실 경사지붕은 중력에 의해 빗물이 흐르기 좋게 만들어진 형태로,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요소라 이 건물처럼 추상화된 외벽이 주도하는 조형성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붕을 뒤로 숨긴 이 외벽의 위쪽에는 얇은 두겁만 덮여있다. 경사진 대지를 평탄하게 하여 벽체가 시작되는 콘크리트 바닥(다시 말해 추상화된 새로운 대지)의 경계가 벽의 외곽선과 같기 때문에 건물의 바닥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조형 문법으로 보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니, 길에서 본 이 주택은 위(지붕)도 아래(바닥)도 없이 오로지 가운데 토막(벽)만 선 셈이다. 이 같은 시각적 조율을 통해 보는 이의 눈앞에 ‘단독자’로서 서게 된 외벽은 특별한 존재감을 부여받는다.

 

 

<고운동주택:열린덮개_No3> 하늘에서 내려본 모습 © 천영택


건축한계선을 따라 빈 곳 없이 네모반듯 올린 탓에 이웃 주택보다 덩치가 조금 커 보이긴 하지만 그다지 위압적이지 않다. 한눈에도 속이 꽉 찬 덩어리가 아닌 것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구조요소로서 내진성능으로부터 자유로운 외벽 곳곳은 영롱쌓기가 되어있는데, 뒷공간이 비어 있어서 낮에도 밤에도 벽돌 틈 사이로 늘 어느 정도 빛이 새어 나와 그 두께를 확인시켜 준다. 그로 인해 이 조적 구조물은 육중한 덩어리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얇고 가벼운 꺼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내려보면 건물의 네 모서리 중 부부침실 쪽을 제외한 세 부분이 비어 있다. 건물의 전체 윤곽을 주도하는 ‘네모’, 즉 네 모서리는 건물 안쪽에서도 확인된다. 모퉁이를 바라보는 장면에 늘 등장하는 것이 바로 외벽의 모서리 두 면을 타고 도는 영롱쌓기식 개구부다. 비록 리트펠트의 슈뢰더 주택과 같이 모퉁이를 깨고 완전히 열리는 개구부는 아니지만, 모서리를 중심으로 방사되는 줄눈과 투과된 빛의 화려한 패턴은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특별한 주목을 끈다. 단지 하나의 무늬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겠지만, 벽을 투과한 빛과 그 깊이가 만들어 낸 이 패턴은 육면체의 단단한 모퉁이를 약화시키고 두 면을 동시에 보고 싶게 만드는 시각적 장치로서 작동한다.

사방으로 둘린 8미터 높이의 조적 구조물을 무거운 덩어리로 보지 않게 만들려는 설계자의 의도는 모서리창의 상세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건축사는 2열 벽돌로 쌓인 외벽의 모서리에서 슬그머니 안쪽 열의 벽돌을 누락시킨다. 이 상세는 관찰자로 하여금 마치 벽이 1열로 쌓인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거짓말 속에 진심이 드러나는 법이다. 실제 외벽의 두께는 2열이기에 모서리에 제일 가까운 벽돌 사이의 틈은 다른 열에 비해 살짝 어둡긴 하지만 전체적인 패턴은 모서리 끝까지 무리 없이 연장된다. 고운동 주택을 에워싼 외벽에는 특별한 장식적, 표현적 요소가 없는 듯 보이지만 설계 의도에 따라 구현된 적절한 상세들은 자칫 둔탁해 보일 수 있는 조적 구조물을 가볍고 속이 비치는 상태로 변화시킨다.

바깥이야 아무것과도 닿아있지 않으니 외벽의 윤곽이 굵고 또렷하지만, 내부 공간과 맞닿은 부분에서 선명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설계자의 조율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고운동 주택의 외벽은 외부뿐 아니라 내부 구조물과도 배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외벽 안쪽의 외부 공간(잔디정원, 대나무 정원 그리고 2층의 테라스들)에서 보면 그 안에서 채와 마당을 나누는 벽과 지붕은 외벽보다 확연히 낮게 처리되어 그 위계가 분명하다. 또 재료에서도 잔디정원을 마주하는 벽은 외벽과 명확히 구분되는 흰색 대리석으로 마감됐다(이 조형 문법이 깨진 부분이 눈에 띄어 설계한 건축사에게 물어보니 공사 중에 건물주가 임의로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외부는 물론 내부의 구조물(알맹이)과도 분리되고자 하는 이 벽은 이제 내·외부 구조물로부터 독립된 체계, 마치 하나의 ‘껍질’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운동주택:열린덮개_No3> 외벽 모서리 부분의 상세 © 이병기
 
<고운동주택:열린덮개_No3> 잔디 정원 © 천영택


껍질의 보호를 받는 알맹이는 안전하다. 집 밖으로 열리지는 않았지만 각 방의 창문들은 모두 큼직하다. 바깥마당이 아니라 껍질 안쪽의 외부 공간을 향하기 때문에 사생활 노출의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고운동 주택은 가족 구성원들의 방조차 서로 마주 보지 않을 정도로 엄격히 분리되어 있다. 바깥으로 훤하게 열린 곳이 없어 혹 답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방이 막혀 조여드는 그런 공간은 아니다. 흰 벽으로 둘린 방들은 사생활 노출에 대한 두려움 없이 껍질 쪽으로 과감하게 열려있다. 수성 페인트로 매끈하게 마무리된, 추상화된 내부 공간의 질감은 벽돌과 줄눈이 강하게 드러난 외벽의 질감과는 이질적이다. 이 두 재료 사이로 빛이 떨어지는데, 이 장면에서 빛은 공간의 밖이 아니라 그 안에 있다. 사방이 막혔지만, 양쪽으로 퍼지는 산란광으로 채워진 경계가 느슨한 공간이다.
1층의 창고, 현관, 화장실, 게스트룸, 그리고 2층의 화장실과 드레스룸, 다용도실. 평면을 보면 고운동 주택의 중앙부는 1, 2층 각 층의 가장 폐쇄적인 방들로 채워졌다. 한가운데를 꽉 막은 이 블록은 외벽 안쪽을 크게 두 영역으로 분리하고 이에 따라 분리된 개별 공간들은 껍질과 자신 사이에 혼자만의 외부공간을 갖게 된다. 단면적으로 스플릿 플로어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각 영역은 자신만의 외부 공간을 가질 뿐 아니라 자신만의 레벨을 갖고 있는 독립 공간이다. 1층의 게스트룸과 운동실이 거실 영역을 등지고 잔디정원 쪽으로 완전히 돌아누운 형상을 떠올려 보면, 이 집은 마치 하나의 껍질 안에 각기 다른 네 집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 이병기 Lee, Byungki 아키트윈스 대표

 

 

이병기 대표 · 아키트윈스

 

2003년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카탈루냐 공과대학에서 설계석사학위와 유럽통합 이론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한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설계를 강의하고 있으며, 가우디 연구에 중점을 두고 건축에 관한 다양한 글을 쓰고 번역하고 있다. 가우디의 건축 노트 『장식』과 최초의 가우디 전기 『가우디 1928』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했고, 2015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안토니 가우디전>을 자문했다. 2018년 저서 『가우디의 마지막 주택. 밀라주택』을 출간했다.

architwins@outlook.com

 

출처 - [건축비평] 껍질, 배타적인 독립체 2023.11 (kiramonth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