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반 갤러리 ■/전시회.행사.공연

함안군 이방실 장군 위업 추모 향례 봉행 - 남강서원 (2023.04.24.)

 

 

 

 

 

 

 

 

 

 

 

 

[ 함안군 이방실 장군 위업 추모 향례 봉행 ]

 

 

고려말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구국공신

충렬공 이방실 장군의 얼을 기리는 향례가 

4년만에 어제,  24일 오전 10시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 남강서원에서 열렸다

 

조근제 군수를 비롯해 후손, 지역 유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향례는 조근제 군수가 초헌관을 맡아

경건한 제례의식으로 치뤘다

 

이방실 장군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함안이씨의 시조이다

함안군 여항면 출생으로 공민왕 때 수차례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등

고려 오백 년 역사를 지킨 16공신의 한 사람으로서

함안을 대표하는 인물로 추앙 받고 있다

 

한편, 함안군은 이방실 장군을

함안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로 기리기 위해

충렬공 이방실 장군배 전국 궁도대회를 개최하는 등

장군의 위업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이방실 (李芳實)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상장군,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출생 연도

1298(충렬왕 24)

사망 연도

1362(공민왕 11)

본관

함안(咸安)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호군(護軍)|상장군|추밀원부사|중서시랑평장사

 

개설

 

본관은 함안(咸安). 조부는 함안이씨 시조인 이상(李尙)이고, 아버지는 이원(李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충목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호종(扈從)한 공으로 왕이 즉위하자 중랑장이 되었고, 이어 호군(護軍)이 되었으며, 아울러 전() 100()도 받았다.

 

1354(공민왕 3) 대호군이 되어 용주(龍州)의 군사를 이끌고 선성(宣城)에서 민란을 일으킨 다루가치[達魯花赤] 노연상(魯連祥) 부자를 쳐서 진압하였다.

 

1359년 위평장(僞平章모거경(毛居敬) 등의 홍건적이 4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의주, 정주(靜州인주(麟州) 등을 함락한 뒤 인주에서 웅거하자, 안우(安祐이음(李蔭이인우(李仁祐) 등과 함께 철주(鐵州)에서 이를 격퇴시켰다.

 

이듬해 상장군이 되어 다시 철화(鐵化)에서 적을 격퇴하였고, 뒤이어 상만호가 되어 함종(咸從)에 들어온 적을 배후에서 공격하고 고선주(古宣州)에서 접전한 끝에 의주 쪽으로 퇴각시켰다.

 

홍건적 격퇴의 공으로 추성협보공신(推誠協輔功臣)에 봉해지고 추밀원부사에 올랐다. 뒤에 홍건적이 배 70척으로 서해도에 침입했을 때 풍주(豐州)에서 물리쳐 그 공으로 옥대(玉帶)와 옥영(玉纓)이 하사되었다.

 

1361년 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 등의 홍건적이 20여만의 무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삭주 등지에 쳐들어오자, 추밀원부사로서 서북면도지휘사가 되어 상원수 안우, 병마절도사 김득배(金得培), 지휘사 김경제(金景磾) 등과 함께 개주(价州: 지금의 개천연주(延州: 지금의 영변박주(薄州: 지금의 삭천) 등지에서 요격했다. 그러나 안주와 절령(岊嶺)에서 참패해 공민왕은 복주(福州: 지금의 안동)로 피난하고 개경은 함락되었다.

 

1362년 총병관(摠兵官) 정세운(鄭世雲김득배·안우·안우경(安遇慶최영(崔瑩이성계(李成桂) 등과 함께 개경을 수복하고 사유·관선생을 죽였다. 이어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으나 김용(金鏞)의 간계에 의해 공민왕의 명을 받은 박춘(朴椿)정지상(鄭之祥) 등에게 살해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집필자 - 박성봉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