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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

김훈의『하얼빈』을 읽고 – 청년으로 천년을 살다

 

 

 

 

 

 

 

 

 

 

김훈의 <하얼빈>을 읽고

– 청년으로 천년을 살다

 

 

작고한 이어령 선생이 ‘질투를 느끼게 하는 작가’, ‘어휘의 천재’라고 칭찬했던

소설가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하얼빈>이 2022년 여름에 광복절을 앞두고 출간되었다.

 

작가의 전작인 <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 장군, <남한산성>에서는 김상헌과 최명길을,

이번 <하얼빈>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역사소설 속에서 새로이 재조명하였다

 

소설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행적에 초점을 맞췄다.

안중근과 이토가 각각 하얼빈으로 향하는 행로를 따라가면서 안중근이 좇는 대의와

인간적인 갈등에 대해서 지나치리만치 담담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 같은 무채색의 소설이다

 

출판기념회에서 작가는 안 의사를 소재로 글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청년 시절부터 안중근의 짧고 강렬했던 생애를 소설로 쓰려는 구상을 품고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일생 동안 방치하며 뭉개고 있었는데

지난해 몸이 아픈 후 여생의 시간을 생각했고,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이 벼락처럼 나를 때려 바로 시작했다”

 

그리고, “청춘은 정말로 찬란하구나.

완성된 세월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 완성돼서 폭발하는 것이구나….

안중근의 청춘과 영혼, 생명력을 소설로 한번 묘사해 보고 싶다는 게

저의 소망이었습니다”라고.

<칼의 노래>가 이순신의 업적보다 내면 묘사에 중점을 뒀듯이

<하얼빈>도 영웅 안중근 대신 난세를 헤쳐나가는 운명을 마주한 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여 파고들었다

 

또한 작가는, <칼의 노래>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과 <하얼빈> 주인공인 안중근 의사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

“<칼의 노래> 속의 이순신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의 허상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절망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들이받고 헤쳐나가는 인물로 그렸습니다.

반대로 안중근은 희망의 목표를 갖고 싸운 사람입니다.

당시 동북아시아 정세는 이순신 시대보다 더 비극적이고 돌파구가 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나가려던 인물이 안중근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동양평화론>에 그 희망의 논리와 근거가 들어 있어요.”

 

그리하여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섰고,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며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라고

작가의 의도를 피력했다

 

책의 말미에 첨부된 ‘후기’에는 안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에

남겨진 이들이 겪어야 했던 박해와 시련과 굴욕,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배반의 시간이 난무하는 고난의 시절이 펼쳐진다.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안 의사의 외로운 투쟁은 일제의 언론통제로 묻히고 말았고,

조선의 위정자들은 알아서 숨을 죽이며 납작 엎드렸다

모두가 안 의사와의 관련성을 철저히 부인하고,

오로지 이기적인 무사안일의 보신주의와 비겁함만이 세상을 뒤덮었다

 

하지만 김훈의 <하얼빈>은 동양 평화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거사한 안 의사와

주변 인물들이 선택한 길에 대해 옳고 그름을 전혀 가리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려고 노력한 책 속의 많은 인물들의 모습을

아주 객관적이고 냉혹하리만치 담담하게 서술할 뿐이었다

작가는 기록과 고증에 따라 역사적 사건을 오늘에 새롭게 재현하였을 뿐,

후세의 평가와 거사의 의미는 오롯이 역사와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

 

8월 중순에 양산에 사시는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얼빈>을 추천하는 글을 올렸다

“작가는 하얼빈역을 향해 마주 달려가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여정을 대비시키면서

단지 권총 한 자루와 백 루블의 여비로 세계사적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섰던

한국 청년 안중근의 치열한 정신을 부각시켰다

또한, 작가는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동양평화를 절규하는 그의 총성은

지금의 동양에서 더욱 절박하게 울린다’고 썼다

그리고 천주교인이었던 안중근의 행위에 대해 당대의 한국천주교회가 어떻게 평가했고,

후대에 와서 어떻게 바로 잡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뜻 깊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한국천주교회의 사례처럼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하여

2017년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 적이 있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

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

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하겠습니다.

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습니다.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 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

 

정권이 바뀐 후,

무차별적인 전 정권 지우기에 나선 현 정부의 일부 친일파의 득세로

자리를 잡아가던 ‘역사 바로 세우기’는 다시금 요원해졌다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하지만 '역사를 한순간 덮을 수는 있지만 결코 지울 수는 없다'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불변의 진리이다

 

김훈의 책, <하얼빈>의 원래 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었다고 한다

제목이 바뀐 이유와 의미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먼저 정한 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어요.

편집자가 만나자를 빼고 하얼빈으로 하자고 해서 나는 이게 좋다, 하얼빈이.

이 하얼빈이라는 제목은 굉장히 무정하고 불친절한 제목이에요.

그 무정한 언어에 비극성이 있는 거예요. 하얼빈은 지명의 역사적인 상징성이 있는 것이죠.

아까 말한 세 갈래의 기차.

김아려(부인)가 오는 노선은 정말 슬프죠.

그런데 안중근이 26일 날 총을 쐈잖아요. 그런데 김아려는 27일 날 하얼빈에 도착했어요.

자기 남편 만나려고 애를 데리고 갔는데 그 전날 남편이 그걸 저지른 거예요......”

 

 

<하얼빈>을 완독한 뒤, 며칠이 지나 갑자기 엉뚱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안 의사는 왜 가족들에게 <하얼빈에서 만나자>고 했을까?

처음에는 당연히,

일제의 복수와 핍박을 피해 가족들을 국외로 피난시킨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핍박과 감시의 주체에 비겁했던 조국과 주변의 이웃들도 포함된다는 냉혹한 현실을

안 의사는 간파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조국보다는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외국 타향이 차라리 가족에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안 의사는 비통한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올겨울 들어 최고의 한파가 몰려오는 동짓달 기나긴 밤에

나는 한동안 잠을 뒤척일 수 밖에 없었다

 

 

 

 

                                                                                   2022. 12. 20.

 

 

 

 

 

 

 

                                                                      (사진 출처: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