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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이야기 ■/현대건축 이야기

건축기행-036. 김해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 - 일어서는 땅

 

 

 

 

 

 

 

 

 

김해  <깨어있는 시민문화체험전시관>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신축 중인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 깨어있는 시민문화체험전시관

202271일부터 시범 개관을 시작했다

 

전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삶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 역사와 시민문화의 성장을 살펴보고

대화와 타협, 토론문화 등을 배우고자 만들어진 공간으로서

대통령 묘역 입구에, 임시 가건물 형태로 유지되던 추모의 집을 헐고

고인의 사후, 13년 만에 기념관의 건립을 보게 되었다

 

건물 설계는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했던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승효상 건축가가 맡았다

건물은 지상 2층 연면적 1,300평의 규모로서, 도로에서 바로 진입하게 되는 2층에는,

시민 편의 시설과 서비스  지원시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1층에는 기념관의 중심시설인 전시 공간이 자리 잡았다

 

관람객들이 먼저 만나게 되는  2층에는

시민들과 어린 자녀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과 가족 쉼터, 수유실이 마련되어 있고

토론 및 모임 활동이 가능한 세미나실, 기획전시 라운지 등이 준비되어 있다

한 층을 내려서야 만나게 되는 1층은

대통령의 전 생애와 참여정부 시절의 국정 철학 및 공과 과를 입체적이면서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10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다양한 체험 및 교육 활동이 가능한 소규모 공연장(다목적 홀)

대통령 사료를 보관하는 수장고가 갖추어져 있다

 

김해시와 노무현재단은 2014년부터

대통령의 유품과 발자취를 전시할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임시 가건물 형태로 지어졌던 추모의 집

공간이 너무 협소하고 시설이 열악해서 한 해 100만 명에 육박하는 관람객들을

더이상 수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쉽지 않게 기념관 건립 추진이 결정된 후에도

부지 매입과 지장물 철거 그리고 사업비 예산조달 등에서 우여곡절이 있었고

공사기간 또한 기약없이 늘어났지만

이제, 8년의 세월이 흘러서 기념관의 개관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전시관의 땅·건물·전시물 등은 김해시 소유이고,

앞으로 운영은 노무현재단 봉하기념사업단에서 맡아서 하기로 했다

김해시와 노무현재단은 821일까지 무료 시범 개방과 시험 운영을 거쳐서

오는 91일에 전시관을 정식 개관하기로 했다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 기념관이 들어선 김해 봉하마을은

진영단감과 벼농사를 주로 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뒤쪽으로 봉화산을 끼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좁은 들이 있고 철길 너머로는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습지인

화포천이 흐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 속하고,

봉화산(烽火山)의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하(烽下)마을이라고 불린다

 

봉화산 정상에는 마을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사자바위와 봉수대가 있어서

그 곳에 서면 드넓게 펼쳐진 평화로운 봉화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봉화산 자락에 포근히 안긴 봉하마을의 대통령 생가와 사저, 윗 쪽의 정갈한 묘역,

그리고 이번에 신축한 기념관 등이 자연 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봉화들녘을 넘어서 건너편 뱀산(피맥산)까지  외부 공간영역이 확장되고 이어진다

마을을 보호해 주고 있는 뱀산에는  감나무 단지가 있는데

그 곳에는 대통령이 젊은 시절 공부했던 마옥당이 있었는데 이번에 전시관과 함께 복원되었다

 

그런데, 진영읍 봉하마을은 대도시에 인접한 도농복합도시로서

주변에 공장들이 많이 산재해 있는 관계로 환경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화포천은 공장폐수로 오염되어서 죽은 하천으로 버림을 받았었는데

노 전 대통령이 귀향 후, 주민들과 함께 직접 쓰레기를 치우며 환경정화에 힘쓴 결과

지금은 국토교통부로부터 '아름다운 하천 100' 에 선정될 정도로

자연생태환경이  뛰어난 건강한 하천으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이번에 대통령 기념관이 준공됨으로 해서

대통령 생가와 대통령 사저, 마옥당, 그리고 묘역을 중심으로 하는 추모공간과

친환경 농법의 봉화들녁 뿐만아니라 생태학습공원에서 화포천으로 이어지는 생태체험탐방공간이

이제야 제대로 된 틀을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대통령 생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 있는 생가에서 194691일에

3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8살까지 생가에서 살았으며 이후 봉하마을 안에 있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대통령은 신혼생활과 사법고시 공부까지도 봉하마을에서 했으며,

1975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에 부산으로 떠났다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창인 강태룡 씨가 생가를 매입하여 김해시에 기부채납하면서

생가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생가는 초가집 형태로서 본채와 아래채(헛간)로 단촐하게 구성되어 있다

 

 

 

 

2. 대통령 사저

 

대통령 사저는 대통령 임기 중이던 200611월부터 부지 매입을 시작하여

20083월에 완공되었다.

2009523일 대통령 서거 후, 권양숙 여사 혼자 기거하다가 201311월에

고인의 유지에 따라 사저를 재단에 기부하였다

 

대통령 사저는 흙 건축의 대가’, ‘생태 건축가로 유명한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했다

2006427일 청와대에서 건축주와 건축가로서 첫 상견례를 가졌는데,

대통령이 건넨 제안은 정기용 건축가의 예상을 다소 벗어난 것이었다 한다

 

마을 공동체의 모델이 될 베이스캠프.

이것이 대통령이 첫 번째 만남에서 내게 주문한 내용이었다.

사저 설계에 대한 것보다

봉하마을에 대한 계획을 함께 펼쳐나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먼저 왜 농촌 마을로 귀향하려는 지를 물었다

그러자 대통령은 아주 간단명료히 농촌에 가서 봉사 좀 하려구요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내 집뿐만 아니라 봉하마을을 함께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이 농촌 마을로 내려가 산다고 하면 그 마을에 많은 변화를 예측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 마을을 위해 긍정적인 일을 해야 되고,

무슨 일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공부도 해야 되기 때문에 봉하마을에 대해

함께 구상하자는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살림집을 설계했다기보다

농촌 살리기를 위한 베이스캠프를 설계하고 새로운 봉하마을을 함께 꿈꿨던 것이다"

(글 출처 : <노무현이, 없다(2010). 정기용 >)

 

 

 

 

 

3. 대통령 묘역

 

2009년 8월에 보건복지부 국가 보존 묘지 심의 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 보존 묘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부탁에 따라 유족들은 고민 끝에

봉하마을 대통령 사저 곁에 묘역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묘역 설계는 장례식 전날 모인 "작은 비석 위원회"의 결정으로 승효상 건축가가 맡았다

 

"이 장소는 국가보존묘지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이다

 온갖 정치적 역정과 유난한 삶을 마친 그였기에,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이 찾게 될 장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증과 이해로만 이 장소가 존재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욱이 어느 정파나 이념의 포로가 되는 장소로만 머문다면

이곳은 욕되고 욕되다

 

이 장소는,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었든

같은 시대 속에서 나의 존재가 다른 이들의 풍경의 일부분이 되었음을,

그래서 같은 공동체를 만들었음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두가 보편적 가치를 구하는 곳이며,

결국 우리 자신의 성찰을 구하는 장소로, 성찰적 풍경meta-landscape으로 만들어졌다

누구든지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묻고자 할 때,

그리고 그로 인해 고독하고 적막할 때 여기를 찾아 월대 위에 서서 위안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함으로 이 장소는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이라는 한계를 넘어,

우리 모두를 위한 장소가 된다

 

다시 말하면 이 장소는 스스로를 추방한 모두를 위한 풍경이며,

그렇게 우리의 선한 기억에 오래 머물기를 소망한다"

(글 및 사진 출처 : <노무현의 무덤(2010). 승효상>)

 

 

 

 

 

4.  화포천 습지 생태공원

 

경남 김해시 진례면 신월리 대암산(해발 659) 골짜기에서 시작

한림면 금곡리 낙동강까지 21.20에 이르는 화포천은 김해시 진례면 신월리

대암산(해발 659) 골짜기에서 시작해 21.2km를 흘러 한림면 금곡리에서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하천이다.

 

습지를 끼고 있는 김해시의 대표적인 생태하천이다.

화포천은 몇년 전만 하더라도 주변 공단에서 쏟아지는 각종 오폐수와 지천에서 흘러드는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

 

죽어가던 이 하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사람은 20082월 퇴임하고 봉하마을로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주민들과 함께 화포천 일대에서 직접 쓰레기를 건져냈다.

이후 지역 주민과 학생 등 민간 환경 지킴이들의 동참이 잇따랐다.

김해시도 화포천 인근 공단들을 대상으로 오폐수 무단배출을 집중단속하는 등 힘을 보탰다.

그 결과 심각하게 오염됐던 하천은 눈에 띄게 맑아졌다.

 

1년 후인 20093월 화포천은 국토해양부가 주최하고 한국하천협회가 주관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전국 3885개 하천 가운데 생태성 면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후 화포천에는 멸종위기종인 노랑부리저어새, , 큰기러기, 가시연꽃 등이 함께 하는

생태계 보고로 변모했다

(글 출처 : 김해 연합뉴스)

 

 

 

 

 

 

노무현대통령기념관’  초기 조감도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은

2014년부터 시작되었다

2014년 김해시의 대통령기념관 타당성조사를 시작으로

2015년에는 노무현재단 내부에 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단을 구성하였고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를 대통령기념관 설계팀으로 선정하여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진행시키며 기념관 건립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주변의 비협조와 방해로 인한 시련도 있었다

2015년 당시 새누리당 김해시 의원들이 

2016년 새해예산에서 대통령기념관 건립예산 전액을 삭감시켜 버렸

이에, 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이 등원거부 등으로 적극 항의한 끝에, 예산의 반이라도 겨우 확보하여

기념관건립 추진이 중단되는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공사 현장에서는 지장물 보상을 두고

2016년부터 소유주들과 수십 차례 협의를 벌였지만, 합의가 잘되지 않아

공사 착공이 계속 늦어졌다

철거 대상 건물 소유주가 주민들인 데다 기념관사업의 성격도 고려해서

김해시와 노무현재단 측은 사업이 몇 년씩 늦어지면서도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 철거를 하지 않고 끈질기게 대화를 이어가

결국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내 2019313() 오전 11,

봉하마을 옛 노무현대통령 추모의 집터에서 열린 소박한 착공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노무현대통령기념관건립공사가 그 첫 삽을 뜨게 되었다

 

201212, 재단에서 김해시에 기념관 건립사업을 제안한 이후로

햇수로 7년이 걸린 후에야, 기념관 건립사업 공사가

본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상, 사진 및 동영상 자료 출처 :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

 

 

 

 

 

 

 

 

 

President Roh Moo-Hyun Memorial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

Museum

 

 

완공년도                              2022

위치                                    경상남도 봉하

대지면적                            119,287.00m2

건축면적                            4,049.27m2

연면적                                4,438.77m2

Structural engineer            더나은 구조

Mechanical engineer         디이테크

Electrical engineer            우림 전기

Contractor                         부성건설, 영조건설

Lighting design                  뉴라이트

 

 

 

Rising Land

 

일어서는 땅

 

 

기념관이라고 하면 대개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한 시대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관은 그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기념비적으로 세우는 게 또한 보통이었다. 예를 들면, 주변을 압도할 듯한 크기와 신전 같은 건축이런 건축을 가리켜 스펙터클하다고 하며, 미개한 사회일수록 그 위용은 더욱 크다.

스펙터클의 사회라는 책을 쓴 철학자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은 종교적 환상의 물질적 재구성이라고 단언한다.

또한, ‘기만과 허위라는 공통의 기반 위에 서는 이들은 역사와 기억을 마비시키는 사회 조직이라 평가하며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고 까지 비난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는 결단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은 기존의 관념을 떠나는 새로운 개념의 기념관이어야 했으며 이는 노무현의 가치를 먼저 거론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기념관이 들어서는 땅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가 이미 복원되어 있고, 짧은 기간이었다 해도 거주했던 사저가 있으며 마을 건너편에는 젊은 시절 공부한 마옥당도 있다. 거기에다가 우리 모두를 충격에 몰아넣은 부엉이바위의 절벽이 여전히 우뚝 서 있고,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기념적 장소와 시설이 있을까? 사실상

봉하마을 전역이 기념관인데, 여기서 새로운 기념관 건축은 그 형상을 아무리 기념적으로 만든다고 해도 더 큰 진정성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각기 존재하는 이 모든 시설을 새로 짓는 기념관이 매개하여 하나로 묶는 역할을 감당하게

한다면, 이는 기념관이 존재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전제가 있다. 봉하마을의 공간이나 기존 건물의 규모는 그 크기가 죄다 작은 조직으로 되어 있어,

1천 평이 넘는 기념관이 하나의 건물로 마을에 들어서면 주변을 압도할 게 틀림없다. 그래서 이 건물은 또 다른 건축이

아니라 전체 풍경의 일부로 만들어져야 하며, 혹시 시설로 나타나게 되는 부분은 그 크기가 크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당연하다.

 

 

현실적으로는 새로운 공간의 수요가 있었다. 원래 작은 마을이었던 이곳에 1년에 100만 명이 찾아오니 이들을 수용할 공간이 있을 리 없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묘역 위에 조성한 공원인데, 이곳은 녹지로 보존되어야 해서 평상시에 사람들이 자유로이 모일 적절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건물로서가 아니라 광장으로서의 기념관이 구상되었고 그 광장은

계단식의 경사진 형태로 나타나 여러 가지 행사에도 대응하게 하고, 그 하부에 필요한 내부 기능을 수용하게 했다.

 

이 경사진 광장의 가운데를 뚫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봉하 들녘이 펼쳐지고, 들녘 너머 뱀산이 부드러운 실루엣을 형성하며 달리고 있다. 한 층 아래에는 전시실이 있어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릴 것인데, 지면에서 내려왔지만 곳곳에 외부로 연결되는 정원이 있어 들녘의 공간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전시 관람을 마친 후에는 밖으로

나와 경사진 광장을 오르면 다시 봉하 들녁과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의 봉화산 줄기를 보게 되며 그 아래에 봉하마을이

이어진다. 경사진 광장의 여기저기에 솟은 매스는 내부의 공간이 확장된 것인데, 그 크기는 봉하마을의 기존 집들 크기와 비슷하여 마을이 연장되어 나타난 풍경으로 여겨질 터이다.

 

 

계단식으로 경사진 이 광장은 녹지도 있고 나무도 심어져서 편안히 앉아 쉴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관람석이기도 하다. 

이 공간은 길가의 평탄한 광장과 이어져 있으며 건너편 사저와 생가의 영역을 아우르며 매개한다. 같은 포장으로 된

차도까지 포함하면 이 광장은 넓은 크기가 되어, 큰 행사를 할 수 있는 무대가 되고 마당이 된다. 수많은 모임과 행위가

수시로 펼쳐져 봉하마을의 중심 광장 혹은 한마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새롭게 건축된 기념관은 마당에 이어진 경사진 광장의 풍경이다. 마치 땅이 일어선 듯하다. 그래서 이 기념관 프로젝트를 일어서는 땅”(Rising Land)라고 이름하였다. 일어선 땅. 우리 사회의 기층을 이루는 시민들이 깨어나 조직된 힘을 갖추는 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역설하며 기층 민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대통령의 가치와 같은

것이라고 믿었다.

(이상, 글 및 자료 출처 :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

 

 

 

 

 

 

 

 

전시관 주 출입구

 

 

2층 주 현관

 

 

기획 전시실

 

 

세미나실

 

 

가족쉼터

 

 

 

 

썬큰 가든(sunken garden)

 

 

수유실

 

 

 

다목적 홀

 

 

 

 

 

 

 

 

 

 

1층 로비

 

 

 

 

 

제1전시실 ‘재의 역사-탄생’

 1949 9월1일 봉하마을에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잿더미처럼 황폐하고 척박한 땅에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과 닮았다는 뜻에서

 ‘재의 역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2전시실 낮은 땅에서 올라오는 싹-성장

학창시절을 지나 군복무, 마옥당, 사법고시 준비, 판사 노무현이 되기까지

여정을 서사적으로 만나는 공간이다

 

 

 

 

 

 

 

3전시실 아스팔트 위의 불꽃-인권 변호사, 정치인

잘 나가는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나아가 시민운동가, 

합리적인 법 제정을 꿈꾸는 국회의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4전시실 육성의 방-노무현의 연설

노 전 대통령의 연설을 통해 당시 상황을 알아보는 공간이다

 노 전 대통령의 많은 연설 가운데 시민들이 특히 좋아하는

 12개 연설을 다시 들을 수 있다

 

 

 

 

 

 

 

 

5전시실 바보 노무현, 그리고 노사모-대통령 선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노사모 관련 이미지와 활동 영상, 

응원글을 통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공감하는 공간이다

노사모 회원들과 시민들이

'소액정치자금 기부문화 조성''음성적인 정치자금 근절'을 위하여 직접 모금한

희망돼지저금통이 전시되어 있다

 

 

 

 

 

 

 

 

 

 

 

6시실 우람한 나무-당선

무현 대통령을 사람의 시선을 먹고 자라는 당산나무에 비유하며

서민 대통령이 탄생했음을 웅장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공간이다

 

 

 

 

 

 

 

 

 

 

 

 7전시실 참여정부의 대한민국, 있었던 그대로-국정운영

참여정부의 기록과 발자취를 사실에 근거해서 전시열람하고

당시 상황에 공감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이다

참여정부의 공적뿐만 아니라 한계점과 실패한 정책도 소개된다

 

 

 

 

 

 

 

 

 

 

 

 

 

8전시실 대통령의 귀향-봉하마을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이 펼쳤던

봉하프로젝트를 만나는 공간이다

 

 

 

 

 

 

 

 

 

 

 

9전시실 천둥 속에서-검찰 수사 

<한겨레> 등 언론보도를 통해 검찰 조사 과정을 담담하게

마주하는 공간이다

 

 

 

 

 

 

 

 

 

 

 

 

10전시실 너무 슬퍼하지 마라-서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따라가며 슬픔과 희망과 애환을 마주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생각해보는 공간이다

 

 

 

 

 

 

 

 

 

 

 

 

1층 외부 출구

 

 

 

 

 

 

 

 

 

 

야외 공연장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은 승효상 건축가가

대통령 묘역 설계에 이어서 봉하마을에서 맡은 두 번째 작품이다

승효상 씨는 당시의 묘역 설계에 있어서도 우리의 장례문화의 형식과 추모공간의 본질 등에서

우리사회에 커다란 빈향을 일으켰었는데 이번 대통령 기념관 설계에서도 잔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경남 고성의 <제정구 커뮤니티센타> 설계에서 승효상 씨는좋은 기념관은 찾아간 사람으로 하여금

찰하고 사유할 수 있게 인도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아울러, 이번 대통령 기념관 설계에서는

새롭게 건축된 기념관은 마당에 이어진 경사진 광장의 풍경이다

경사진 광장의 여기저기에 솟은 매스는 내부의 공간이 확장된 것인데,

그 크기는 봉하마을의 기존 집들 크기와 비슷하여 마을이 연장되어 나타난 풍경으로 여겨지기를 바랬다

 

설계자는 새로운 신축건물이 사람이 모이는 광장으로서의 기능을 겸하면서

덩치가 커서 전망을 가리고 동네에 부담이 되는 기념관보다는

마을에 어울리는 작고 소박한 전시나 편의시설로서 마을 속 풍경으로 스며들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은 건물 주출입구가 있는 도로 쪽이 건물의 전면부분에 해당되지만

정면에는 특별히 정형화된 건물 형상이 없다

다소 투박하면서 단순하기 그지없는 계단처럼 이루어진 이 건물은

진짜 좋은 건축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설계자의 평소 건축관에 따라

화려한 기술이나 치장보다는 건물 용도와 본질에 집중하고 대통령의 삶과 정신이 투영된 소박한 건물이 되도

록 노력한 설계자의 의도라고 보여 진다

 

전시관은 독특한 단면 구조를 지닌 지상 2층 규모의 기념관으로서 모두 10개의 독창적인 전시실과

세련된 옥외공연장까지 갖추고 있다

각 전시실들은 흥미보다는 관람객들이 성찰하고 사유하게 인도할 수 있는 공간구조와

요소들로 세심하게 배려되어 있다

 

건물의 지붕에 해당하는 옥상광장 좌측에 장애인과 어린이, 노약자를 위한 경사로가 있다

그 경사로를 처음 봤을 때, 그 면적이 너무 넓고 디테일에 공을 너무 많이 들였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어느날, 아주 어린애 두 명이 엄마 도움도 받지 않고 그 경사로에서 너무 재미있게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고 난 후,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전반적으로, 기념관은 비록 반지하식 건물이지만

건물의 기능성과 공간의 활용도가 뛰어나면서도 전망은 막힘이 없다.

마찬가지로 동선도 거침없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봉화들녁 건너 남쪽에 야트막한 산이 있는데

길게 드러누운 뱀 형상을 닮았다 해서 뱀산이라 불린다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뱀이 화포천에 있는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앞 쪽에서 날개를 양쪽으로 쫙 펼친 학 모양의 봉화산이 개구리를 지켜 주고 있다'라고

주변 산세를 설명해 주시곤 했다 한다

 

이 뱀산에는 부모님이 경작하던 감나무 밭이 있었는데

어릴 때 대통령의 별명도 인사 잘 하는 감나무집 둘째 아들이었다고 한다

이 산 중턱에는 대통령 부친이 마옥당(磨玉堂)이라 이름 붙여준 토담집이 있었는데

대통령은 이곳에서 사법고시 시험을 준비했었다

마옥당은 옥을 갈고 닦듯이 학문에 정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시 공부는 생각처럼 수월하지 않았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다 다치기도 했고

1968년에는 현역병으로 입대해 군복무를 하느라 3년 동안 공부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1973년에는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1975년 제17회 사법고시에 합격을 했다

 

재단에서는 근래에 이 감나무 밭을 매입하여 실제로 단감을 경작해 판매도 하고 있고,

미래세대의 교육을 위해 마옥당을 이번에 기념관과 함께 복원하게 되었다

조그만 공부방 하나에, 더 조그만 창 2개,

그리고 불 때는 아궁이만 있는 아주 간단하고 단촐한 구조이다

복원된 마옥당은 부인 권양숙 여사 등의 고증을 거쳐 예전 위치에 그대로 복원했는데

다만 크기는 원래보다 조금 커졌다 한다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묘역을 설계했던 승효상 건축가는 디자인 컨셉과 공사 과정을 정리하여  

<노무현의 무덤>이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서 승효상 씨는 대통령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노무현은 우리 사회에 생소한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가 기성 사회에 진입한 것도 보편적 방법이 아니었으며,

그가 획득한 포지션으로 사회의 여느 기득권자처럼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곧 마다하였고,

그는 늘 경계 밖으로 자신을 내몰았다.

리고 경계 안의 사람들을 향해 질타했다.

 

......

 

스스로를 제도권 밖으로 추방하는 자,

노무현 대통령은 길지 않은 삶을 사는 동안 거의 항상 자발적 추방인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세계 밖으로 스스로를 영원히 추방하고 말았다.

노무현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

대통령 묘역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씨를 쓴

신영복 교수는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또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의 무덤>을 출간한 건축사 승효상은 서문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글을 인용하며

노무현을 '스스로를 추방한 자'라고 썼다.

그렇다.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추방한 자가 바로 노무현이었다.

지식인은 자신의 계급을 선택하는 계급이라고 한다.

노무현이야말로 '사람다운 삶'을 자기의 삶으로 선택했다.

변호사,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이라는 정점에 서 있는 동안에도 언제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변방으로 추방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하여, 망국의 지역감정을 극복하기 위하여,

지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죽음마저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추방이다.

 

<운명이다>에서 밝히고 있듯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꿈을 짓밟는 상황으로 몰리고

그 꿈을 함께 꿈꾸었던 사람들에게 누가 되는 상황으로 떠밀리자 자신을 던진다.

자신의 삶 자체를 추방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변방의 작은 고인돌 하나로 남아 있는 이곳에

해마다 100만이 넘는 추모객이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봉하 묘역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해후의 자리이면서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는 도약의 자리였다"

 

 

 

 

 

 

 

 

 

 

 

일요일 밤에,

건축기행-036. 김해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 - 일어서는 땅

블로그의 글을 정리하고 있는데

지금 TV에서는 코로나 재발과 경찰국 신설 문제로 밤늦게까지 시끄럽고

요새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새삼,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에 완성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합니다.

우리 민주주의도 선진국 수준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뤄 가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대화와 타협, 관용, 통합을 실천해야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민주주의의 완전한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대통령이 20년 전쯤에 당부하신 말씀인데

오늘날에도 우리 국민들이 결코 잊지말아야 할 진리이다

 

 

처칠 수상이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이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사람을 만든다

 

신영복 선생도 봉하마을의 대통령 묘역을 다시 둘러보고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이런 소회를 남겼다

 

"오늘 멀고 먼 봉하의 작은 비석에서 깨닫는 것은 이 변방의 작은 묘역이

바야흐로 새로운 '시작'을 결의하는 창조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 사는 세상''좋은 정치''좋은 대통령'을 공부하는 교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봉하를 떠나오면서 생각했다.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이 봉하에서 우리가 받는 위로이며,

세상의 모든 변방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희망이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오는 9월에 개관하는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도

'사람 사는 세상''좋은 정치''좋은 대통령'을 공부하는 교실이 되고

그것이 봉하에서 우리가 받는 위로가 되고, 우리에게 약속하는 희망이 되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

 

 

 

                                                                                                                 2022. 0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