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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전 남

화엄사 구층암 (2019.03.23.)












    


구례 화엄사 구층암

 

      

화엄사 대웅전 뒤 산 속에 있는 구층암.

화엄사에 딸린 암자 가운데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앉음새가 소박하기 그지없다. 전각도 마당도 단출하다.

본래 화엄사 선방이었다는데 절에 선원이 생기면서

 지금은 요사채로 쓰이고 있다.

 단순소박한 건물은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구층암은 스님들의 수행 장소로, 보이기 위한 장식을 하지 않았다.

 수행을 위한 자리가 있을 뿐이다.

      

허나, 수행 공간인 암자는 일반 가람에서 보기 힘든

 건축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건물을 짓기도 한다.

수행하는 스님 개인의 취향이 자유롭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세속적 기준과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스님의 마음 씀씀이가

 건축물에 덧씌워진 결과다.

구층암에서도 이러한 묘미를 찾을 수 있다.

 ‘아름다운 내용을 읽을 수 있다.

       

구층암에는 천불보전과 수세전, 그리고 두 요사채가 있다.

천불전 안에는 작은 불상 1000구가 봉안되어 장관을 이루는데

무엇보다 눈길 가는 것은 천불전 앞 대방채의 기둥이다.

 한아름 안기는 큰 덩치의 모과나무 두 개가 건물을 받치고 있다.

울퉁불퉁, 살아생전의 모습 그대로 기둥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움푹 파인 나무의 결과 옹이까지 생생하다.

모과나무의 더딘 생장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지 않은 생이 흐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쪽 모과나무는 살아생전 품고 있던

 큼직한 돌덩이까지 그대로 품고 있다.

구층암 모과기둥처럼 철저하게 손을 대지 않은 기둥은

 어디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국건축의 아름다움 하나는

자연을 그대로 빌려오는 데 있다고 한다.

휘어진 나무는 휘어진 대로 쓰고, 북사면에서 자란 나무는 건물의 북쪽에,

 남사면에서 자란 나무는 남쪽에 쓰는 것.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은 이러한 점에서

한국 자연주의 건축의 절정으로 볼 수 있다.

 밑둥은 주춧돌에 다시 뿌리를 내리고 가지는 서까래로 뻗었다.

 즉 나무의 밑둥은 기둥이 되고 줄기는 보가 되고

잔가지는 서까래와 지붕이 되었다.

한 채의 승방은 곧 두 그루의 모과나무인 셈이다.

건너편 요사채에도 또 하나의 모과나무 기둥이 있다.

       

기둥으로 쓰이는 세 그루의 모과나무는

본래 이곳 구층암 천불전 앞에서 잎을 틔우고 노란 열매를 맺었던

 나무였다 한다.

 200여 년 동안 달콤한 향기로 천불전 부처님께 공양을 하다가

 요사채 기둥으로 쓰이며 100여 년을 또 살아온 것.

       

오랜 풍상을 견디며 자란 나무일수록

그 지역 풍수나 기후에 오래가기 때문에

 목재는 건축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얻는 게 좋았다.

구층암 모과나무도 그러하다.

전쟁으로 암자가 소실되자 한 스님이 중창할 것을 염두에 두고

법당 앞에 모과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중창을 하게 되자 남쪽에 있던 두 그루 모과나무는 남쪽 건물 기둥으로 쓰고

북쪽에 있던 모과나무는 북쪽 건물 기둥에 썼을 것이다.

      

천불전 앞 양쪽에는 두 그루의 모과나무가 성성하게 자라고 있다.

구층암 요사채를 지을 당시 심은 것이니 100여 년을 살고 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부처의 성품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구층암 모과나무들은 생과 사가 둘이 아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화엄사 구층암에는 모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달디단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