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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가야 포트폴리오 ■/주거시설

< 함안 은하재銀河齋 >공사일기 -10 ( 에필로그와 변명 )













- 은하재 (동암 조철래 선생 글) -












 < 함안 은하재銀河齋 >공사일기

- 에필로그와 변명 -

 

 

 

 

새벽에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서늘한 공기는

마냥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여름이 물러나고

어느 틈엔가 가을이 여물어가고 있음을 분명히 알려준다

지난 여름은 위대했지만 이제는 가을에게 바톤을 넘겨주고

뜨겁던 태양의 결과물인 과실을 따야만 하는 수확의 계절이 되었다



함안 검암리의 <은하재> 집짓기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초여름,

약 두달동안의 건축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겨울의 끝자락인  2월말에 현장을 처음 방문했었고

                 철쭉이 한창이던 봄에 설계구상과 협의를 거쳐 건축 행정절차를 마치고

5월초에 착공하여 지난 7월초,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에 공사가 완료되었다

다섯달 동안, 근 반년동안 매달렸던 <은하재> 프로젝트는

한줌의 보람과 함께 또 다른 시행착오와 교훈을 남기고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우리 사무실에서

해마다 10채 내외의 주택을 설계하고 있지만

함안의 <은하재>가 나에게 특별했던 것은

주택 설계 초기 단계에, 건축주와의 협의과정에서

건축주가 보여준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건축가의 설계의도대로 별 수정없이 설계가 확정되었고

30평형 전원주택의 표준모델로 만들어 보고자했던 의욕과 열정 때문에

남다른 애정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1. 주택과 설계

 


일반적으로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건물의 설계의뢰를 하면 

수차례의 협의를 통해서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확정하게 되는데

그 협의과정에서 나타나는 건축주 스타일은

대략 3가지 정도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번 째는 건축주가 기본설계안을 제시하는 경우이다

그럴 경우에는 협의시간도 절약되고 뒷탈도 줄일 수 있지만

건축가는 한발짝 뒤로 물러앉아서 행정처리만 맡게 되는데

지방 소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진행되는 방식이다

더러는 감각이 있는 건축주도 있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마추어(건축주)

나무보다 숲을 생각하는 프로(건축가)와의 '사고 발상의 차이'는

결코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다가온다

 

두번 째는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모두 위임하는 경우이다

기본적인 조건만 제시하고 백지 상태로 위임하면

건축가는 책임과 의욕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듯이 열정을 쏟는다

건축가 입장에서 보면 가장 이상적인 경우이지만

런 양식있는 건축주를 만날 확율은 그리 높지 않다

 

세번 째는 위의 두가지 경우가 약간씩 혼합된 방식이다

처음,  설계 단계에서는 건축가에게 모두 위임하고

나중에 건물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게 되면 건축주가 직접 나서는 경우로서

건축주의 뿌리 깊은 '갑'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는데

요즘 우리 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겪고 있는 경우이다

 

<은하재>도 그랬다

그래서 주택 본채 공사는 흔들림 없이 진행되었지만

옥외공간 마무리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2. 건축주와 설계자



 < 좋은 건축주가 좋은 건축을 만듭니다. > 

 내가 좋아하는 후배건축사의 명함에 새겨져 있는 문구이다.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서는 건축주의 역할이 중요한데,

좋은 건축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

건축주도 같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순수예술이야 작가 혼자만의 산고로도 탄생하지만,

건축은 작가의 아이디어와 건축주의 자본이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현실화 될 수 있다는 특성이 있어서, 아무리 좋은 설계안이라도

건축주를 이해시키지 못하면, 휴지통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호주를 대표하는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요른 웃존) >는,

국제설계현상공모 1차 예선에서 이미 탈락했으나,

늦게 도착한 심사위원장의 혜안으로 당선작으로 부활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다.

이처럼, 건축주의 역할이 세계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


건축설계가 기존 건축물을 답습하거나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수용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소할지라도

기존의 틀을 깨고 수 년 뒤의 미래에 까지도 경쟁력이 생길 수 있는 

더 나은 설계(철학)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건축주의 이해와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해진다.


또한, 가족 구성원의 변동을 비롯하여,

자고나면 유행이 바뀌고 문화가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근간이 되는 주거문화도 그 흐름을 피해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집을 자기 평생에 두 번 짓는 경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검토하고 대비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하겠다.


이렇게 쉽지 않은 과정을 함께 헤쳐나가야 할

건축주와 설계자의 관계를

'용역의 관계', '갑과 을의 관계'로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이 짧은 사람이다!

건축주는 설계자의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설계자는 '건축주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밤을 새워서라도'예술혼'을 불태우게 된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건축주는 자기 생각이나 취향을 설계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그리고 주변의 훈수로 인하여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아울러 설계자의 역할을 이해하고 존중하여

설사 견해가 다를지라도 경청해줄 줄 아는 여유만 있다면

좋은 건축주가 될 수 있다.































3. 푸른 잔듸마당의 허상



<은하재>의 마무리공사가 한창이던 무렵,

건축주는 건축공사비 부족을 이유로

마당 조성공사와 담장 설치작업을 직접 발주하겠다고 통보해왔다

그래서 나는 아쉽지만 마당과 담장 조성공사에는 더이상 관여를 하지 않았고

마당의 포장재료와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대지의 디자인화'을 구상해 두었던 외부마당에는

영역구분없이 일률적으로 모두 푸른 잔듸가 깔리고 말았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듯이 근래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원과 마당에 푸른 잔듸가 깔린 전원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건물의 배경으로 푸른 색의 잔듸가 주는 휠링의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마당에 잔듸를 까는 방식은 서양과 일본의 조경방식이
그렇다고 서양과 일본의 것이라서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올 여름 휴가때 일본의 간사이지방 쪽을 다녀 왔는데
교토 천룡사 (텐류지)에서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정원의 진수라고 하소겐치(曹源池)와 석정을 

처음으로 대면하고 상당한 경이로움과 감동을 안고 돌아왔고

더 유명한 용안사(료안지)의 석정을 보기위해서 나는 빠른 시일 안에

일본을 다시 갈 것이다.

비록 일본이라할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마당의 공간조성 방법에 숨어 있는 

우리 선조들의 아주 과학적이고도 뛰어난 지혜를

우리들은 여태껏 잘 모르고 집을 지어왔다 

우리 한옥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인 대청마루의 원리를 살펴보면

 잔듸를 까는 서양과는 달리 한옥의 마당은 기본적으로 흙과 모래로 이루어진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앞쪽은 흙마당이고

뒷쪽은 나무가 심겨진 뒤란이나 산으로 이어지는데

여름철의 경우에

흙마당은 쉽게 데워지지만 나무가 많이 있는 뒤쪽은 항상 습하고 서늘하기 때문에 

결국 뜨거운 마당과 서늘한 뒤란 사이에는 온도차이가 발생하고

이것은 기압의 변화를 일으켜서 뒤쪽의 시원한 바람이 대청마루를 거쳐서

마당쪽으로 불어오게 만든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흙마당의 모래알갱이가 햇볕을 반사하여

햇볕이 대청마루와 방안 깊숙이 빛과 온기를 전달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실로 요즘 유행하는 '태양광 주택의 효시'라고 할 만큼

선조들의 발상과 지혜가  기발하고 놀랍지 않은가!

 









교토 천룡사 (텐류지)의

지천회유식 정원의 진수라고 하소겐치(曹源池)










































4. 사람이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사람을 만든다



 세계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 수상 처칠이 한 말이다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건물을 짓지만

그 건물은 사람의 생활양식의 변화를 반드시 일으키고

더 나아가 인생을 바꿀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꿰뚫어 본 말이다


그러면 좋은 집이란 어떤집일까?

건축가 <승효상>씨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를 원한다

좋은 집이란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걸어야 하는 집이다

그래서 예술적인 집, 기능적인 집이 아니라

'사유의 집', '인문학적인 집'을 설계하기위하여 노력한다

집은 불편할수록 좋다

기분 좋게 만들면서 불편한 집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럴 때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창조의 바탕이 된다



나는 주택의 친자연성과 친사회성을 말하고 싶다

서양의 사고방식으로 자연은

도전과 경쟁을 통한 극복의 대상이지만

동양적인 관점에서 자연은

존중과 보호를 통한 경외의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의 집이 좀더 자연에 가까워지려는

몸짓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주변과 이웃에 대한 책임의식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웃과 아예 담 쌓고 살려면 차라리 아파트가 편하다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다 한다.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원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隣)

- 멀리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하고,

멀리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도 못하다’

좋은 이웃을 만들려면 주택의 설계와 공사과정에서

이웃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꼭 필요하다

그렇게 내가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면

이웃은 나를 지켜준다


그래서 나는

"좋은 집이란, 자연과 대화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집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5. 변명




건축주의 전폭적인 지지로

설계 원안의 변경없이 순조롭게 출발했던 <은하재>는

그 모습이 점점 완성되고 구체화될수록

주변으로 부터 좋은 반응들이 많이 나왔었다


'<은하재> 때문에 마을 분위기가 확 바꼈고 마을을 살렸다!'는

마을이장의 칭찬이 있었고, 동네 노인들도

'모처럼 집다운 집을 본다!'며 구경꾼들을 몰고 왔었다

그런데 본채의 공사가 마무되어 가던 무렵에

그렇게 좋았던 현장분위기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발생했다


동측의 옆집과 영토분쟁이 생겼는데

나는 건축주에게 사용상의 불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양보하는 사람이 양반이다!'라고 조언을 했는데

그것이 건축주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건축주는 담장을 높이 쌓아버렸고

공사가 끝날 때까지 그 어색한 관계는 결국 풀리지 않았다

공사가 끝나는 날 현장 마당에서

시공자와 설계자 그리고 공사내내 불편을 감수해준 이웃들과

조촐한 삼겹살 파티를 내가 계획했었는데

그마저 실천하지 못하고 말았다

 

건축가의 역할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하나의 좋은 집이 완성되기 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배려가 필요하다

자금을 쥔 건축주의 좋은 건축주가 되기 위한 공부와 배려,

유능한 시공자의 양심적이고 성실한 공사,

철학있는  건축가의 설계 외적인 부분까지도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열정,

그리고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이웃의 보이지 않는 후원들이

모여서 좋은 집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좋은  건축주는 좋은 건축을 만들고

좋은  건축은 좋은 이웃과 좋은 사회를 만든다>

라고 말하고 싶다



추석이 내일 모레 앞으로 다가왔다

검암산 아래 <은하재>에도

밝고 큰 보름달이 환히 비추기를 빌어본다

 

 

 

2015. 0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