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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이야기 ■/현대건축 이야기

건축기행-05 통영 박경리 기념관 - 검박한 문인의 집 ( 2013. 02.)

 

 

 

 

 

통영 박경리 기념관

- 검박한 문인의 집 - 

 

 

 

 

지난 2월9일,

거제도 옛 구조라 초등학교 <춘당매>를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 동안 항상 숙제로 여겨 왔던,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을 들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설날연휴로 기념관이 휴관이라

내부는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반면에 기념관의 주변입지와 옥외공간 디자인

그리고 박경리 선생의 묘소까지

차분히 둘러볼 수 있었다.

 

 

 

 

 

 

 

 

 

 

 

 

 

 

 

 

 

 

 

박경리 기념관과 묘소는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9-9번지,

햇볕이 잘 들고 푸른 바다가 눈이 부시는

양지농원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기념관은 1,350평의 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건립되었고,

기념관 뒤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박경리공원과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 조감도 초안 (사진 출처 : 통영시)

 

 

 

 

 

기념관 조감도 수정안 (사진 출처 : 통영시)

 

 

 

 

 

 

 

박경리기념관은

2008년 8월 공사에 착공해,

2010년 5월, 박경리 선생의 2주기에 맞추어 개관되었지만

통영에 기념관이 건립되기까지는

숱한 어려움과 우여곡절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미래를 볼 줄 아는 행정가,

진의장 통영시장이 있었다.

 

 

 

 

 

 

 

 

건물 외벽의 돌출된 벽돌은 단조로움을 피하는 장식 효과와 함께 통영의 다도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진의장 시장은 통영을 수산업 중심 도시에서

문화예술 중심의 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키려는 커다란 꿈을 꾼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통영시가 고향인 윤이상,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김용익,

박경리 선생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기념관을 건립하여,

품위 있고 테마가 있는 문화예술 인프라 벨트를 조성하려는 구상을 세웠다

 

그래서 박경리 선생의 생가가 있었던 충렬사 인근에

‘박경리 기념관’ 건립을 위하여

2006년부터 토지매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주변의 지주들이 터무니없는 보상을 요구하였고,

이미 ‘박경리 문학관’을 보유하고 있었던 타지자체의 반대로

기념관 건립이 한동안 표류하던 중,

2008년, 박경리 선생이 지병으로 홀연히 세상을 떠나게 된다.

 

 

 

 

 

 

 

 

 

 

 

 

 

 

 

평소 원주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었던 선생은

통영 산양읍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잠들었다.

선생의 묘소가 통영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한 의로운 독지가(양지농원 대표 정창훈 옹)가

산소로 쓸 땅을 선뜻 내어놓음으로 해서

타지자체의 유치경쟁을 잠재우고

전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토지보상 문제로 난관에 부디 친

기념관의 위치도 산소 옆으로 변경하여

2008년 드디어 첫 삽을 뜨게 되었다

 

선생의 생가 터 인근 지주들의 탐욕때문에

물거품이 될 뻔했던 기념관이

아름다운 기부자와 혜안을 가진 시장 덕분에

빛을 보게 된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박경리기념관은 2011년

‘제9회 경상남도 건축대상’에서 대상으로 선정된 건물이다.

'경남으로부터 시작하는 아름다운 친환경 건축'이라는 주제로

대상을 받은 박경리 기념관은

친환경개념을 기념관에 적극 도입해

건물이 설계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뽑힌 설계자는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이공'의 류춘수 씨이다.

'이공'의 주요작품으로는

올림픽 체조경기장, 리츠칼튼호텔,

부산의 국립국악원과 누리마루, 서울월드컵경기장 등이 있고,

류춘수 씨는 원주에 있는 박경리 선생의 주택을 설계했던

특별한 인연도 있었다.

 

 

 

 

 

기념관 설계자 류춘수 씨

[출처] 建築師 류춘수의 閑談과 드로잉展 -예술의 전당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1층, 300평 규모의

단촐한 전시시설이다.

주요 공간으로는 지하 1층에 세미나실, 사무실,

지상 1층에 전시실, 영상실, 자료실 등이 있고,

 

 건물 주변에는 생전에 채소 가꾸기를 즐긴 고인의 뜻을 살려

채마밭과 장독대, 물이 흐르는 실개천, 추모의 길,

화단과 잔디정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은 얼핏보면 지상 2층의 건물로 보이나,

지상 1층처럼 보이는 부분이 실제로는 지하 1층에 해당된다.

 

지하층이지만 밝고 쾌적하여 이용하는데 전혀 불편한 점이 없고,

합리적인 동선계획에 의한 관람객동선의 부드러운 유도와

기존의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단면계획과

주변환경에 순응하여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 시킨 점 등은

설계자의 탁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관람객동선은 참 독창적이다.

차량동선과는 출입구를 완전히 분리하였고,

지하주차장에서도 관람객 주동선과 합류가 가능하고,

 

햇빛이 쏟아지고 소나무 3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중정과

건물하부 통로를 지나고,

건물 후원을 돌아 잔디광장으로 서서히 올라오면

그제서야 1층 전시실 출입구로 연결이 되는

스토리가 있는 즐거운 진입로이다.

 

 

 

 

 

 

 

 

 

 

 

 

 

 

 

 

 

 

 

 

 

전시실은 박경리 선생의 사상과 생애를 소개하는 코너를 비롯해

선생이 생전에 쓰던 유품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선생의 작품 연보를 비롯한 각종 작품 설명 자료와

작품을 썼던 서재의 실제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기념관 뒤쪽으로는 770평의 대지 위에 ‘박경리 공원’과

460평의 대지 위에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시비, 친필원고 동판 시비, 어록비 등의

전시물이 갖춰져 있다.

 

 

 

 

 

 

 

 

 

 

 

 

공원과 묘소로 가는 계단 - 백일홍나무를 피하여 계단을 만들었다

 

 

 

 

 

 

 

 

 

 

 

 

 

선생은

“고향이란 인간사와 풍물과 산천,

삶의 모든 것의 추억이 묻혀있는 곳이다.

고향은 내 인생의 모든 자산이며

30여 년간 내 문학의 지주요, 원천이었다. ”라고

술회했다고 한다.

 

 

 

 

 

 

 

 

 

 

 

 

 

 

 

 

 

 

 

 

 

 

 

 

 

 

 

 

 

 

 

 

 

 

 

 

 

 

 

 

 

 

 

 

 

 

 

 

 

 

 

 

 

 

기념관 앞 잔디정원에서

나무계단을 타고 약 5분정도 올라가면

선생의 묘소가 나온다.

 평소 검박했던 성품대로 그 흔한 묘비명 하나 없이

아무런 글씨도 없는 빈 상석 한 기만 놓여있고,

 

옆으로 수십 그루의 감나무 밭이 있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 <김약국의 딸들> 서문

 

 

 

 

 

 

 

 

 

 

 

 

 

선생의 묘소 좌로는 통영의 객산 미륵산이,

우로는 장군봉이 지키고 있고

전면에는 한산도 앞 바다가

은비늘을 반짝이며 수를 놓는다.

 

 

 

 

 

 

 

 

 

 

 

 

 

 

 

 

 

 

 

 

 

 

 

 

 

 

 

 

 

 

 

 

박경리 선생은

1926년 10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1955년 현대문학에 실린 선생의 단편소설 '계산'이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이래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선생의 대표작이자 한국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토지’가 시작된 것은 1969년이었다.

현대문학에 1부가 실린 것을 시작으로

문학사상, 월간경향, 문화일보 등 매체를 전전하며 연재를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출판정지를 당하는 등의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1994년 8월 15일, 마침내 원고지 4만장 분량의 5부작 16권의

대하소설 ‘토지’가 대장정의 마침표를 완성했다.

첫 연재 이후 무려 25년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2003년 현대문학에

장편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했으며,

최근에는 ‘까치 설’, ‘어머니’, ‘옛날의 그 집’ 등

신작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고향 통영으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 중이던,

2008년 5월 5일,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2013. 0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