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의 지식카페>‘세 잎 클로버’ 지붕이 거대한 밭… 유치원, 아이들의 ‘자연’이 되다
문화일보
입력 2020-03-18 10:20
뫼비우스의 띠가 세 잎 클로버처럼 엮인 듯한 지붕이 구조물 전체를 덮고 있다. ⓒ Hiroyuki Oki
■ 건축과 일상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풍경 - (29) 베트남의 ‘파밍 킨더가르텐’
옥상에 200㎡마다 5개의 다른 채소 심어 농사짓기 교육… 산업화로 줄어든 녹지공급 효과도 경사진 지붕으로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바람 순환 · 식물로 햇볕 차단… 다른 건물에 비해 에너지 25% 절감
유치원은 어린이들이 보고 만지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배우는 곳이다. 사람이 한 인간으로서 성장해 가는 기본적인 인격은 유아기에, 그것도 일정한 환경을 통해 얻은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1년에 30명이 좋은 유치원 건물과 환경에서 배운다고 하면 10년이면 300명 아이가 좋은 경험을 한다. 그런 유치원이 이 나라에 100개 있다고 하면, 우리 미래 사회를 짊어질 주인공이 10년이면 3만 명이 좋은 교육을 받고 성장해 갈 것이다. 이처럼 인생의 기초는 유아기에 정해지고, 유치원이라는 시설은 사회의 기초가 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스스로 가능성을 넓히는 미래의 유치원은 어떤 집일까? 해답은 단순하다. 자연 속에서 스스로 발견해 가는 유치원이다. 그러나 도시에 있는 거의 대부분 유치원에서는 동물은커녕 풀과 나무도 접하기 어렵다. 자연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부족하니 흙은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피해야 하는 것이라 여기고, 우유는 매일 마시면서도 그것이 소에게서 만들어진다는 것도 모르며, 콩이 깡통에서 자란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많아진다면 우리의 미래 사회가 어떻게 될까? 자연을 자기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세계에 대한 잘못된 인간관을 가질 우려가 크다. 그러나 반대로 아이들에게 흙이나 생물을 직접 경험하게 하면, 자신이 환경에 이어져 있고 지구에까지도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농사짓는 것을 경험하면 먹는 것, 자라는 것, 만드는 것 모두를 배울 수 있다. 농사짓기를 배우면 자기가 먹는 음식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있고, 얼마나 많은 농부의 책임과 노력으로 건강한 식재료가 얻어지는가를 배울 수 있다. 농사짓기를 경험하면 먹을 것을 둘러싼 자연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도 인식하게 되고, 자연이 베푸는 농산물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배운다. 그뿐인가? 농사짓기를 체험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 생명의 순환, 새로운 삶의 기쁨을 배울 수 있고, 수시로 변화하는 조건을 열심히 해결하면 소중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것도 터득하게 된다. 농사짓는 것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교육의 근간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이른바 ‘농(農)’을 느낄 수 있는 유치원이라 할 수 있을까? 제일 먼저 도시농업과 관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도시농업이란 도시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식물을 재배하고 생산물을 활용하는 농업활동을 말한다. 이러한 도시농업을 통해서 지역 주민은 교류하고 아이들은 식생활을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나라에는 유치원, 어린이집, 청소년시설 등에 생태 텃밭 강사를 파견해 텃밭을 가꾸며 친환경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환경교육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또 옥상 상자 텃밭 가꾸기로 어린이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유치원이 더러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농사짓기를 바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치원은 없다.
‘아우트 아우트 아키텍투라’라는 젊은 건축가들은 도시농업과 유치원을 묶은 새로운 교육환경인 ‘미래의 유치원 밭(Nursery Fields Forever, 2015)’을 제안하고 국제 아이디어 설계경기에서 1등을 했다. 그들이 제안한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작물을 키우고 자연의 순환을 배우며, 생산된 농작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도시농업을 통해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 지적으로 성장해 간다.
이 건축가들은 먹을 것을 가르치는 교육 기능을 ‘자연에서 배운다(Learn from nature)’ ‘실천에서 배운다(Learn from practice)’ ‘기술에서 배운다(Learn from techniques)’ 등 세 개로 구분하고 이를 하나씩 배우게 했다. ‘자연’에서는 불, 흙, 공기, 물이라는 기본 요소와 네 계절의 변화 속에서 생명의 왕국을 배운다. ‘실천’에서는 흙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기르며 수확하는 것을 배운다. 또 친환경 ‘기술’로 물, 땅, 해, 바람의 자연적 요소를 중수, 비료, 전기로 바꾸는 것도 배운다. 하나하나 나누어 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간단한 사실이다. 그러나 농사짓기가 가능한 유아교육의 갈래를 건축적 환경과 함께 묶어 보여주었다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트남에는 농사짓기를 실제로 교육하는 유치원인 ‘파밍 킨더가르텐(Farming Kindergarten, 2013)’이 있다. 번역하면 ‘농사짓는 유치원’이다. 호찌민 중심에서 북동쪽으로 버스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동나이성 공업도시 비엔 호아의 교외에 있다. 이 유치원은 베트남의 유명한 젊은 건축가 보 트롱 니야(Vo Trong Nghia)가 설계한 것으로 설계경기를 통해 당선됐다. 이 지속가능한 ‘농사짓는 유치원’은 2015년에는 아키데일리(ArchDaily)가 수여하는 올해의 건축상을 받았으며, 2016년에는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가 선정한 세계 30대 건축물의 후보로 추천되는 등, 세계가 주목하는 유치원이 돼 많은 나라에서 견학하러 찾아오고 있다.
대지 1만650㎡에 연면적 3800㎡인 2층 건물에 500명의 유치원생이 다니고 있는데, 최대 700명까지 공부할 수 있다. 이 유치원은 대만계 대규모 신발 제조업체인 ‘파우첸 베트남’의 공장 노동자들이 아이들을 맡기고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게 공장에 인접한 삼각형의 대지에 지어졌다. 베트남에서는 대부분 아이를 공립 유치원에 보내는데, 이 공장은 조립 라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선정한 우수 노동자의 아이들을 이 유치원에 다니게 하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가 세 잎 클로버처럼 엮인 듯한 지붕이 구조물 전체를 덮고 있다. 지붕은 놀이터를 향해 낮아져서 편리하게 위아래 층을 오르내릴 수 있다. 옥상을 녹화한 지붕에는 아이들에게 농업을 가르치기 위해 200㎡마다 5개의 다른 채소를 심은 실험 채원이 있다. 아이들이 이런 옥상을 빙빙 돌며 달리는 사이에 어제는 보지 못했던 채소를 보고 기뻐하기도 한다.
이 유치원의 목적은 베트남의 주산업인 농업을 어릴 때부터 체험하면서 먹을 것에 대한 지식을 친근하게 배우게 하는 데 있다. 밭에서 직접 따온 채소로 아이들 점심 식사의 30∼40%를 조달하고, 나머지는 그들 가족에게 나누어준다. 월평균 180달러인 베트남 노동자의 임금을 생각하면 이것도 제법 적지 않은 보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자기들이 유기농을 하고 있다는 기쁨도 느끼지만, 이와 함께 어린 자신도 가족에게 무언가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바로 이런 것이 ‘농(農)’을 느끼고 ‘자연에서 배우고’ ‘실천에서 배우는’ 유치원이 아니겠는가?
‘농사짓는 유치원’은 아직은 지붕의 일부를 실험 채원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이 유치원의 교육 목적은 농사짓기라는 유아 교육을 통해 농업이 쇠퇴하고, 녹지가 줄어들며 안전한 놀이터가 부족한 현실을 바꾸어 보자는 데 있었다. 또 다른 목적도 있다. 열대 기후에서 지속가능한 건축물이 비엔호아와 같이 지역의 산업화 도시에 부족한 녹지를 공급할 수 있음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겠다는 것이다. 젊은 건축가들이 ‘미래의 유치원 밭’에서 제안한 ‘기술에서 배운다’와 같은 맥락이다.
이 밭에서 직접 따온 채소로 아이들의 점심 식사의 30∼40%를 조달하고, 나머지는 그들 가족에게 나눠준다. ⓒ Hiroyuki Oki
외부 공간은 뚜렷이 구분되는 중정 3개로 이뤄져 있다. 둥그런 마당은 면적의 70%가 나무와 녹지로 덮여 있고, 대지 안에 건물이나 나무로 그늘이 지는 장소를 많이 두어서 아이들이 시간대에 따라 시원한 장소를 찾아가 놀 수 있게 했다. 바로 이런 것이 자연을 즐기면서 이용하는 일상적인 방법이다. 중정이라지만 완전히 에워싸인 게 아니다. 경사진 지붕이 곡선을 이루며 연속해 있는데다가, 나무를 많이 심은 마당에 담겼던 시원한 공기가 적게 심은 쪽으로 빠져나가도록 배치해서 바람을 자연스럽게 순환시킨다. 18개의 교실, 음악실, 미술실, 양호실 등이 한쪽 복도에 붙어 있어서 방의 통풍이 아주 좋고, 열대 기후인데도 에어컨 없이 교실 등이 운영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건물이 되려면 에너지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늘리지 않는 것이다. 먼저 지붕과 일체가 되게 녹화된 옥상의 표토가 태양열의 부하를 크게 줄였다. 무더운 베트남 학교에서는 대부분 커튼을 쳐서 햇볕을 막지만, 그렇게 하면 밖의 자연이 안 보이고 마당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유치원에서는 모든 방에 수직의 콘크리트 루버를 촘촘히 달아 그늘을 주고, 그 루버를 따라 열대산 칡의 일종인 리아네를 자라게 한 자연의 커튼이 한 번 더 햇빛을 차단해 실내 온도를 낮춰준다. 이것은 베트남 농업학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인데, 건축가는 이것을 응용했다.
지붕과 마당의 녹지를 관리하려면 많은 물을 소비해야 하는데, 이 유치원은 인접한 공장의 처리된 배수를 재이용해 살수로 사용해 40%의 물을 절약하고 있다. 완공된 후 10개월이 지난 다음 측정해 보았더니, 보통 건물에 비해 25%의 에너지를 줄여 연간 5400달러가 절감됐다고 한다.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건축물이 자연과 기술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게다가 보육비를 낮추려고 건설비도 상당히 낮춰 설계됐다.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의식으로 벽돌이나 타일 등 이 지역의 로테크 재료를 사용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마감이나 설비를 포함한 건설비를 1㎡당 500달러 수준으로 낮췄다.
이렇게 좋은 점도 있는 반면, 이 유치원의 교사들은 그렇지 않은 점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유치원이 자연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아이들이 벌이나 뱀과 같은 동물의 왕국에서 온 이웃들과 놀이터를 나누어 써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는 옥상이 점점 채소로 다 덮이겠지만,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어른처럼 생산적인 농부가 못 돼서 지금은 당장 옥상의 대부분이 잔디로 덮여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치원은 실제로 도시에 실현하기에는 크고 작은 문제점이 있고, 그것이 제 가치를 나타내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저 하나의 이상일까?
물론 건축물은 성능이 중요하다. 그러나 성능이란 아무리 잘돼 있어도 공간에 매력이 없으면 건물의 가치는 오래지 않아 사라지게 돼 있다. 우리는 이 ‘농사짓는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성능을 올리면서도 건물을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건축주와 건축가, 유치원 교사와 아이들 모두가 당연해서 잊어버리기 쉬운 자연의 가치를 건축물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아교육이란 소중한 아이들을 미래에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키우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그런 미래를 위해 어른의 사정에 맞춰 어른이 결정하고 해결하려고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유치원 건물이다.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 용어설명
옥상녹화의 효과: 옥상녹화는 건물 표면에 그늘을 만들고, 식물이 자라는 토양이 태양 빛으로 인한 표면 온도를 낮춰 준다. 그러면 대기로 다시 방출되는 열이 감소하고 실내와 건물 주변의 온도도 낮아진다. 녹화가 되지 않은 일반적인 옥상은 태양복사에너지의 95%를 그대로 대기로 방출하지만, 옥상을 녹화하면 유입된 태양복사에너지의 58%를 감소시켜 도시 전체가 뜨거워지는 도시열섬 현상을 완화해 준다. 100㎡ 정도의 옥상을 녹화하면 200ℓ의 물을 저장해 여름철 옥상 표면 온도는 26∼27도로 유지되며, 겨울에도 안정된 온도를 유지한다. 또한 매년 이산화탄소 2㎏의 대기오염이 감소한다. 식물의 기반이 되는 흙이 비를 머금어 짧은 시간에 빗물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 빗물유출량도 줄여준다. 그 대신 방수를 잘해야 하고 적재하중을 줄이기 위해 경량 토양 등을 사용해야 한다.